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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Feb 21. 2024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39

이방인들의 추수감사절





지난번 같이 하이킹을 갔던 친구가 다시 한번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길었던 한 해의 농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여유가 있었던 그는 추수감사절이었던 월요일, 단체 채팅방에 있던 인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삼삼오오 모여 각자 준비한 음식과 음료를 챙겨 캘거리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던 장소에 모인 20명 남짓 되었던 사람들. 약간의 어색한 기류가 잠시 흐르기도 했지만 이내 모두 한두 모금씩 맥주를 들이켜고 나서부터는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것처럼 금세 가까워졌다.



이미 두 차례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경험해 보았던 그였지만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와닿았다. 기본적으로 '가족행사'의 개념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한 가정의 게스트로 방문해 그들과 자리를 함께했었던 이전과는 다르게, 올해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이 고향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각기 다른 도시, 문화, 나라에서 넘어와 뿌리를 내렸거나, 혹은 현재 이 주변에 머물며 언제 다시 다른 곳으로 움직일지 모르는, 소위 말하는 '디지털 노매드'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이 그들의 삶을 이런 식으로 바꾸어 놓았던 건지, 아니면 이런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사진이라는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러한 것들로부터 나오는 보이지 않는 모종의 유대감을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느끼는 듯 보였다.







이 날의 호스트였던 친구의 와이프는 취미로 말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관심이 있던 몇몇 친구들은 그녀의 도움을 받아 말을 타고 주변을 같이 둘러보았고, 다른 일행들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꽤나 넓었던 이곳을 어떻게 다 관리하나 싶을 정도로 길이 끝없이 나 있었는데,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보행로는 상당히 잘 정돈이 되어 있어서 한편으로는 그가 왜 볼 때마다 그렇게 지쳐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쪽에는 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제주도에서 보았던 말들과 비교해서 체급이 훨씬 컸던 아이들이었지만 오랫동안 사람 손에 길들여지다 보니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울타리 너머로 먼저 고개를 갖다 대는 등의 친근한 표시를 보였다. 산만한 덩치를 감당하기 위해 곧바로 다시 풀을 뜯는 데 집중하는 그들을 뒤로하고서 일행들은 다시 집 앞마당으로 향했다. 







"밥 먹고 이따가 또 둘러보자고~" 



마련되어 있던 테이블에 각자 가져온 음식들을 풀어헤쳐 놓고 그들은 한데 모여 조금 늦은 점심식사를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을 대표하는 칠면조 요리가 빠진 것이 약간의 옥의 티로 느껴졌지만, 남자가 가져왔던 한국식 닭강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던 덕분에 그 빈자리가 크지는 않았다.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인기가 좋아 그릇이 순식간에 비워졌고, 몇몇 친구들은 그에게 다가와 나중에 같이 또 먹으러 가자고 설득하기도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다음날이 평일이어서 서서히 한두 명씩 자리를 떠났고, 남아있던 사람들끼리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 간이 의자에 앉아 잠시 가득 찬 배를 소화시키고 있던 때, 이렇게 있지 말고 아까 보여주지 못한 곳들을 마저 구경시켜 주겠다는 주인장의 말에 최근에 자신의 본가였던 인도에 갔다 와 시차적응이 덜 되었던 형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따랐다. 







철조망 틈 사이를 넘어 있던 공간은 아까와는 다르게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사이사이 있던 구덩이들과 가시덤불들 때문에 다리가 따끔거리고 신발이 더럽혀졌지만, 계속되는 친구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보였던 비버들이 만들어놓은 댐과 강줄기는 겪었던 고통들을 충분히 보상해 주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본인 기준에서 남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 데려왔다는 그의 말에 모두가 좋은 선택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한동안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들은 아까처럼 말들이 있던 장소로 되돌아와 먹고 남았던 사과들을 먹이로 모두 던져주고 나서 특별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가을의 끝자락을 제대로 즐긴 것 같아."


"나야 와줘서 고맙지 뭘. 우리 가족은 다음 주부터 온타리오 주로 여행 가. 돌아와서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시즌이 마무리 됐으니 너도 이제 즐겨야지. 조심히 잘 갔다 와~" 




일행들은 차에 올라 타 다시 캘거리로 향했다. 음악소리와 함께 후에 있을 다른 이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그 잠깐의 시간 속에서 남자는 동시에 이제 이 친구들을 볼 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남은 4개월 동안 얼마나 더 그들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최대한 같이 많은 추억을 쌓고 돌아갔으면 했던 그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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