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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Jul 16. 2024

덕택에 옷 한 벌 사 입었다

참나리

도무지 집중을 못하고 세월만 흘러 보내고 있다.

이유는 잘 알고 있지만 생각대로 고쳐지지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처럼 긴시간 일탈을 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브런치에 들어와 본 지도 참 오랜만 인것 같다. 그래서 브런치에 들락거리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는데 텅 비어 버린 머릿속만큼 이 아까운 세월도 구멍이 나 버렸다.


친절한 브런치는 왜 안 들어오냐고 성화를 해댄다. 친절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한테 왜 그리 정신을 못 차리고 있냐고 호통치는 사람이 없는데 브런치의 재촉이 반갑기도 하다. 몇 개월 만에 글을 다시 쓴다.


초복이라고들 삼계탕 집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는 어찌 보면 조상님들의 현명한 건강관리 방식 때문에 지금껏 몸보신으로 자리 잡고 있을 거다. 직원들과 점심시간에 줄지어 서있다가 삼계탕 한 그릇을 사 먹었다. 나만 혼자 반짝거리는 사금팔이의 반짝 거림 같은 눈부심에 실눈을 뜨고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7월이 넘어가니 여름 꽃들이 지천이다. 요즘은 온난화로 식물 자신들의 리듬이 깨져 버렸다. 배롱나무와 같이 여름 끝무렵에 피던 무궁화도 각각의 단심을 자랑하며 정원을 꾸미고 있다. 울타리가에서 자라던 그 옛날의 무궁화가 아니다. 떳떳하게 정원 한가운데에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자랑스럽다고 매번 눈인사를 해주며 지나다닌다.



노란 하늘바라기도 화단 가득 피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고,  바늘꽃도 긴 키를 휘젓으며 춤을 추고 있다. 남부지방에는 집중호우로 피해가 많다고 하는데 이곳은 아직 장마 피해 없이 잘 피해 가고 있다. 덕분에 한창 작은 열매들은 부지런 떨고 있다.  작은 빈틈으로라도 햇살을 더 받아 살 찌우기 위해 부스럭거린다. 영글지 못할 열매들은 솎아내진다. 바닥에 수북이 떨어진 파란 열매들은  자라보지도 못하고 어미를 떠나가고 있다. 산짐승들이 건강치 못한 새끼들을 버리듯이 말이다, 발에 딱딱하게 밟히는 복자기의 열매는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다.


덥다는 핑게를 대며 핸드폰으로 넷플넥스 보려고 벤치에 앉았다. 커다란 참나리가 옆에 서 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가져간다. 수술과 암술이 잘 생긴 아이를 골라 찍어 본다. 나리는 종류가 참 많은 백합과 식물이다. 나리는 약간 노란빛을 띠고 있고, 하늘을 보고 피는 하늘나리. 땅을 보고 피는 땅나리,  잎이 줄기를 한 층으로 돌려나는 것을 말나리, 잎이 솔잎 같은 솔나리, 털이 달린 털중나리 등 등.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이 보이는 것은 가장 아름답다는 참나리이다.  보통 원래 꽃보다 조금 부족하다는 뜻으로 '개'를  붙이지만 나리보다 못하다는 개나리와는 다르다.  개나리는 물푸레나뭇과의 나무이다.  


참나리는 얼굴에 잔뜩 주근깨를 붙이고 살짝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얼마나 센지 꽃잎을 뒤로 휘어져 하늘을 향하고 있다.  갈래꽃으로 꽃잎은 6장, 수술은 6개, 가운데에 암술이 달려있다' 빨간 머리 앤'이 생각나는 꽃이다. 요즘은 갈수록 키가 더 커가는 것 같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아이들도 많아 보인다.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 콩 같은 까만 주아를 달고 있다. 식물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은 이것이 씨앗인 줄 안다. 주아는 영양생식체이다. 이는 씨앗과 달리 개체증식을 한다, 즉 복제품이 되는 것이다. 씨앗과 다른 번식을 한다. 주아로 싹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들이 땅속에서 인내해야 복제가 될 수 있다. 대부분 인편번식을 한다.


벤치에 앉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아서 요즘 내가 빠져 있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요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지 넷플레스에서 철 지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중독이 됐는지 밤이 새도록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니 하루가 피곤하다. 오랜된 영화나 드라마가 맘에 들었던 것을 보통 서너 번은 보는 듯하다. 대부분 한번 본 것을 왜 또 보냐고 해서 찾아보니 나처럼 본 것을 재탕 삼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 싶어 위안은 됐다. 요즘 여러 번 본 드라마는 정은궐 원작이었던 '성균관의 스캔들'이라는 20부작 드라마이다. '해품달'을 지었던 뛰어난 정은궐 작가의 동명소설이다. 그의 소설은 모두가 다 재밋다. 틈만 나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박유천, 박민영, 송중기, 유아인이다. 공교롭게도 박유천과 유아인은 여러 스캔들로 요즘은 보기 힘든 탤런트가 되어버렸다. 저렇게 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아이들이 그런 유혹에서 빠져나오고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정말 아쉽다.  박유천의 살짝 웃는 모습은 정말 멋진데. 내가 드라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매번 넷플렛스에 헤매고 있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남만 어리석다고 탓하고 있다.


참나리꽃을 몇 컷 찍고 벤치에 앉아 드라마를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서둘러 정신없이 돌아오다 보니 뭔가 이상한 싸한 느낌이 들었다. 자꾸 나를 보는 듯했다.

옷을 흩어보는 순간 알았다. 내 옷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참나리 옆의 벤치에서 넋이 나가 드라마를 보다가 참나리의 커다란 수술밥이 온 하얀 바지에 다 범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수건에 물을 묻혀 닦았더니 더 멍망이 되어버혔다

맙소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다행히 카드 한 장이 들어있다

옷가게에 들러 새 옷을 사 입고 들어왔다

드라마에 폭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참나리가 호댄 꾸지람을 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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