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정성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낙엽진 가을 공원을 걸으며

by 배초향

벌써 60회가 훨쩍 넘는 가을을 맞이했지만 올해 가을처럼 뒤숭숭한 해는 드물었던 것 같다. 벌써 바닥은 푹석거리도록 낙엽들이 쌓여간다. 훨훨 자유 찾아 떠나는 나그네 마냥 뒹굴거리며 머물다 사라져 간다. 올 가을 낙엽 떨어지는 소리는 유난히 서글프게 들린다. 어이없이 희생된 이태원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뒤에 나온 뉴스를 보면 아마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한다. 어떤 말로 위로가 되겠는가. 살아있음이 지옥일 수밖에 없음일 것이다. 수많은 자식 잃은 부모들의 울부짖음이 낙엽 속에 묻힌다. 이별을 고해야 하는 찢어지는 가슴을 어떻게 위로한단 말인가. 올해는 가을의 낭만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아프다. 매년 울러 퍼지던 ‘시월에 마지막 밤’을 이란 노래처럼 정말 마지막 밤에 되어버린 그들의 영혼에 고개를 숙인다.


추위가 빨리 찾아온 가을 탓에 낙엽들이 예쁘게도 물들어있다. 유난히도 붉게 물든 복자기 나뭇잎도 파란 하늘 아래 붉게 채색을 이룬다. 노란 은행나무 잎들은 짝 펼친 아기 손바닥 같은 모습으로 익어가는 열매를 두고 혼자 땅으로 내려와 공손하게 앉는다. 오랜만에 친구가 전화가 왔다. 시간이 괜찮으면 점심 먹자고 한다.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 우리 사무실 쪽으로 맞춰 자주 온다. 봄에 쑥을 캐서 쑥떡을 한 것이라고 인절미를 예쁘게 만들어서 담아왔다. 배즙도 샀다고 겨울철에 기침할 것 같으면 얼른 먹으라고 한다. 오래된 친구들은 편해서 좋다.



사무실 근처에서 보리비빔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우린 이런 나물에다가 된장국 같을 걸 먹으면 속이 참 편한 것 같다’며 둘이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친구도 밥이 조금 많은 것 같다고 하면서 먹는다. 조금만 과식을 해도 몸이 불편함을 느낀다. 맛있다고 많이 먹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다. 마음대로 먹으며 금방 살이 찌고, 몸이 둔해 움직임이 느려지니 또 그것은 싫다. 먹는 것에도 욕심을 내려놔야 함을 알려주는 것 같다.


가로수에 달려있던 플라타너스 커다란 잎이 신발 위를 스쳐지나간다. 하나를 주워 얼굴에 대본다. 내 얼굴을 다 가릴 듯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도 나뭇잎은 수많은 친구를 거느리고 달려있다, 올봄 몽땅 전지 했던 가지들에서 싹이 자라 이렇게 무성하게 다시 잎을 달고 있는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플라타너스 나무는 가로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양식을 먹고 아무 불만도 없이 잘도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동그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내년까지 기약하며 살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근에 있는 공원길을 걸었다. 다행히 같이 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지나가는 나무마다 다 인사해주며 아는 채도 한다. 복자기도 있고, 산딸나무도 있고, 모과나무도 있고,.... 없는 나무가 없다. 그렇게 주렁주렁 달려있던 덩굴들은 다들 정리해버려 하나도 안 보인다. 여름이 되면 나팔 같은 꽃을 달고 인사하며, 가을이 되면 노란 열매로 익어가던 계요등도 깔끔하게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남겨졌는지 내년이 되면 계요등은 울타리 사이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별처럼 화사한 꽃을 피우던 박주가리도 배 같은 누런 열매를 매달고 있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하나의 씨앗이라도 제대로 익었다면 자손 번성에는 성공했을 것이다.



한적한 공원길을 거닐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전에는 하지 않던 얘기들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었다. 안 아픈 것이 애들한테 도와주는 것이 되어버린 나이가 되었다는데 공감을 한다. 인제 욕심낼 일도, 화낼 일도 거의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조금만 이해하면 소리칠 일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자신의 분신들을 다 내려놓는 나무들처럼 내려놓으면 그렇게 편하다는 것을 인제야 피부로 느낀다. 친구들끼리 모여 다시 30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하면 거의 다 싫다고 한다. 지금이 가장 좋다고 한다. 지금같이 편안한 삶이 주어진 것에 감사드리고, 가장 좋은 지금을 더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에 정성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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