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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어작 Apr 04. 2022

살사댄스의 시간여행

춤알못 몸치가 살사댄스에 빠져들게 된 이유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나니 '라이킷'메시지가 뜬다. 기분이 좋다. '라이크유'가 아니라 '라이킷'인데, 막 애정받는 느낌이 든다. 정신 차려야지)


외적 내적 탈진을 경험한 '살사댄스 초급 강습'이 끝나고 자연스런 뒷풀이(술자리)에 대한 기대와 달리, 뭐 배운게 있다고 '실전'을 하러 간다고 했다. '그래, 실전을 하러 "간다"고 했으니 이동 중에 슬그머니 빠져야지'라는 꼼수를 두었으나 수를 쓸 기회가 없었다. 강습장에서 작은 문을 열고 나가니 바로 실습장이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살사빠의 모습>

이미지출처 : 네이버 블로그_메뚝남매님 블로그 "홍대이색데이트 : 살사댄스 바차타? 직장인 동호회 후기"


화려한 조명이 사람들을 감싸고, 락카페나 명월관 못지 않은 음향이 바닥을 울리고 있었다. 락카페나 홍대 클럽과 다른 점이라면 사람들이 다 커플로 춤을 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음악의 비트감도 다소 달랐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춤을 추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매우 밝았다는 것이다. 락카페나 클럽은 대부분의 컨셉이 '쿨멋짐'이었기 때문에 흥이 나도 밝게 웃는 법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살사빠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고, 한번씩은 서로 바라보며 크게 웃기도 했다. 내가 살사빠에 적응된 후에 새로운 친구들을 꼬셔서(?) 데리고 가면 그 친구들도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즐겁게 춤을 춘다'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삼십몇평생 생각도 못해본 장면이었다. 


그녀의 시간여행

그리고,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넓디 넓은 플로어를 쓰으으윽 스캔을 하던 중....어? 응? 음?? 저 저 저 여자분...............? 낯이 익은데 낯선 모습의 그녀가 있었다. 그녀, 그녀는 그날의 모습 하나로 내 인생의 트랙을 바꾸게 만들었다. 

그녀는 일로 알았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다른 업종에 취업한 후 연락이 끊겨가던 사람이었다. 학구적인 스타일이었던 그녀였으나 건너건너 춤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은 같으나 거기서 그렇게 딱 마주칠 줄이야. 마주쳤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당시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그녀는 5년 전 기억하던 모습에서 최소 5년은 더 젋어진 모습이었다.
살집이 있는 편이었던 그녀가 이십대의 몸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피부, 표정, 활력 모두가 내가 알았던 5년 전 당시보다 5년에서 10년은 더 젊어져있었다. 혹시 시간여행일까?


한 곡이 끝나고 그녀에게 다가서자 그녀도 단번에 날 알아봤다. 그래 이게 착각이 아니구나.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축축한 고등어고 나발이고 나도 이 춤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즐겁게 살사댄스생활을 소개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확신이 들었다. 삼십대 후반을 맞이하며 내가 할 일은 건강보험이나 노령연금을 들 게 아니라 살사댄스의 시간여행에 몸을 싣는 것이다.


나의 시간여행

갑자기 강습을 같이 들었던 초급반 고등어 동지들이 귀하게 느껴지고, 미남미녀가 아니라서 실망했던 동호회 강사 선생님이 멋져보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의 실습...이라고는 했지만 살사빠 구경을 마치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뒷풀이(술자리)에 갈 수 있었다. 뒷풀이에 가보니 초급동료들과 선생님, 나의 그녀 외에 살사빠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간만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기분을 느끼며 권해주는 술을 마시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이십대의 망나니 같던 음주가무 이력과 잠시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회사 일에 치여 참다 못해 들이붓는 직장인 회식성 음주만 반복하여 알콜의 섭취량은 적지 않았으나 회사 선배들과의 술자리는 흥보다 말이 많아 다음날 숙취에 항상 후회가 남는 시간들이었다. 회사 밖 친구들도 각자의 일에 자리를 잡아가면서 '내일 없이 마실 수 있는 친구'의 시대가 끝났다고 인정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삼사오십대가 모인 살사 동호회는 1차로 춤을 달리고, 2차로 술을 달리더니, 3차로 또 술을 달리고, 4차로 노래방을 가는 거시었다!!!!!!!!!!!!!!!!!!!!!!!!!!!!!!!! 무려 새벽 3시 반까지 음주가무를 씐나게 달리고 나이 어린 선배들의 배려를 받으며 신입생의 마음으로 새벽귀가를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숙취와 피로가 몰려왔으나, 왠지 아깝지 않았다. 이 숙취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것은 내 스스로의 십여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시간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 나 자신의 시간여행이 매료된 것인지 나는 그 후 초급 수업을 성실하게 참석했고, 춤은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매 주말을 불태우고 새벽이슬을 맞고 다니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처럼 음주를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새벽까지 들이부어서야 그녀와 같은 회춘의 시간여행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정말, 정말, 정말 즐거웠다. 근데, 그래서 춤은? 글쎄.... 춤....그때 내가 춤을 추긴 췄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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