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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Nov 21. 2023

위내시경이 부릅니다. 침과 콧물과 눈물과 분비물. -1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일단 깔 건 좀 까고 시작하자.

고풍스러운. 때로는 단연 현대적인 기구들로 커피를 볶아내고 추출하는 커피 업계는 언뜻 보기에 한없이 감성적이고 단란하지만 그 속은 지극히 배타적이고 허세에 찌들어 있다.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커피 한 잔은 복잡하게 생긴 기구들로 여러 가지 공정을 통해 대단한 정성을 들인 듯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보일 수 있지만 그 실상은 기구 사용법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성 들인 공정 또한 단순함의 극치라 할 수 있겠다. 업계에 뛰어든 신입이나 다른 곳에서 이직해 온 경력직을 향한 텃세는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적었듯 커피 업계의 일이라는 것이, 일이라 칭하기도 부끄럽지만, 노하우라고 할 것도 없는 단순노동의 연속이기에 경력이 딱히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기존 직원들은 본인이 업계에서 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려는 또 살아남으려는 수단으로 새로 입사한 직원들에게 마땅히 알려주어야 할 것들을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본인들이 알고 있는, 이를테면 기구 사용법이나 단순한 공정 등의 지적 가치를 높인다. 그리고 시작되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는 등의 가스라이팅에 새로 입사한 직원들은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아주 질 낮은 방법임과 동시에 한없이 비효율적이지만 놀랍게도 이 업계에서는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 내가 적었지만 진짜 냉철하게 잘 깠다. 이왕 까는 거 확실하게 까야지.



아무튼 스물두 살 커피 업계에 뛰어들어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근 육 년 가까이 몸담아온 업계를 나는 떠나고자 했으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종로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었다. 곪은 염증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듯 몇 달 뒤 정해진 일자리도 없이 나는 퇴사를 감행한다. 그들의 되지도 않는 허세를 눈에 담기가 더 이상은 벅찼다고 적어 두겠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는 업주에게 협박을 받았다. 그 방법 또한 그렇게 간사할 수가 없는데 퇴사 의사를 밝힌 당일 직원들과 업주가 속한 단톡방에서 업주는 퇴사 통지를 너무 일찍 했다며 민사 소송을 걸겠다고 법령을 캡처해 올렸고 이튿날 매니저는 나를 테이블에 앉혀 놓고 이런 경우에 우리가 민사 소송 걸 수 있는 거 아시죠? 라며 은근한 협박성 말들을 지껄였다. 결국 이틀 더 일해주는 조건으로 비교적 원만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팔 월. 결론적으로 나는 업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다. 커피 로스터로서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는데 다만 바리스타가 아님에 감사했다. 그때 내 면접을 담당하셨던 대리 님, 지금은 승진하신 과장 님과 연이 되었는데 이 분에 대해 소박하게나마 적어 보자면 그는 내게 귀인이요, 또 이 미천한 생의 인도자이시며, 숭배의 대상이라 해도 부족할 것이 없다.


입사 당시 나는 지나쳐 온 커피 업계에서 몸에 벤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당연히 텃세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매달 청구되는 자취방 월세를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강경하게 대처하자는 계획을 품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본가에 계신 아버지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이 무렵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실수는 늘고 그 탓을 돌리고자 자기를 변호하는 태도는 혐오스러웠다. 그럼에도 과장님은 나를 내쫓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품으셨다.


어떤 날. 그 월급으로 서울에서 자취하기 힘들지 않아? 라고 물으시는 과장님의 말씀에 날이 잔뜩 선 나는 무시하시지 말라는 투로 답을 했었다. 그런 답변을 듣고도 과장님은 나를 특진 후보로 팀장 놈 아니, 님에게 추천하셨다.


또 어떤 날은 댁에서 쓰지 않는 전기 인덕션을 들고 와 건네시며, 안 쓸 거면 팔아. 몇 만 원은 받을 걸? 이라고 경제적 원조를 아끼지 않으셨고 그리고 어떤 날에는 굳이 나를 차에 태워 유명한 식당에서 밥을 사주시는 등 마지막으로 어떤 날에는 여자 친구와 가라고 십만 원 상당의 유명한 호텔 애프터 눈 티 세트를 예약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 외에도 회사로 선물이 들어오면 다른 직원들은 다 제쳐두고 내가 제일 먼저 고르게 하셨고 내 실수를 윗선에 보고하지 않으시고 속에 묻으셨으며 막무가내로 그만둔다는 나를 그래도 버텨 보라 격려해 주심과 동시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호텔 숙박권도 가장 좋은 시기에 이용할 수 있게 힘써주셨다. 미국 대장의 말대로 하루 종일도 적을 수 있지만 반전을 위한 복선은 이 정도로 충분하기에 이만 줄인다.


아무튼 이런 과장님이지만 내가 그를 향한 증오에 사무쳐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때는 입사 후 이 년이 지났을 무렵일 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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