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잔뜩 피었고 버짐만큼 또 잔뜩인 것이 색 잃은 입술에 일어난 각질이었다. 홑꺼풀 눈에는 황색 눈곱이 엉겨 붙었고 그 눈은 지방 낀 눈두덩이에 조만간 매몰될 듯했다. 살이 올라 전진한 앞 광대와 뚱뚱한 콧방울이 나란했고 질끈 묶은 머리칼은 언제나 감았는지 기름이 끼어 번들거렸다. 비염을 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숨을 쉴 때마다 쉭쉭하고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의 숨소리가 났다. 날숨에는 단내가 묻어 나왔다. 교복 치마는 단추와 단춧고리가 닿지 않아 방편으로 지퍼를 최대한 올려 걸치듯 입었고 그런 탓에 치마 안에는 항시 학교 체육복을 입어야만 했다. 블라우스의 깃과 소매에는 독한 세제를 넣어 삶아도 지지 않는 기름때가 누렇게 찌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교복을 새로 사지 않은 이유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일 년이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013년 11월 7일. 2014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하경은 손에 쥔 펜을 놓았다. 학교와 집을 그저 오갈 뿐, 어느 곳에서도 내리 잠만 잤다. 공식적으로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나서는 아예 등교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서 덜 먹고 더 자고, 보다 자주 씻으며 지냈고 대학교 입학식까지 그럴 계획이었다.
해가 바뀌고 좋은 소식이 들렸다. 하경이 원서를 접수한 모든 대학으로부터 합격을 통보받은 것이다. 배움에 뜻이 있는 학과를 선택할지, 학교의 명성을 선택할지가 고민이었다. 결국 후자를 택했다. 학교는 서울에 있었다. 지방에 거주하는 딸 가진 부모들이 그러하듯 하경의 부모님 또한 그녀가 통학하길 바랐다. 하경도 타지에서 홀로 산다는 것이 막연했고 겁도 났기에 부모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같은 반 또래들과 담임 선생님은 졸업식에 나타난 하경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전과 다르게, 창백했던 얼굴에는 홍조가 돌았고 마른버짐과 입술의 각질은 모습을 감추었다. 황색 눈곱이 엉겨 붙었던 홑꺼풀 눈에는 아직 붓기가 다 빠지지는 않았지만 퍽 어울리는 쌍꺼풀이 자리 잡았고 콧방울과 나란했던 앞 광대는 제 위치를 되찾았다. 살이 빠지면서 비염은 호전되었고 그에 따라 가축 같은 숨소리와 입에서 나던 단내도 사라졌다. 잠기지 않던 교복 치마를 잠그고 체육복 바지 대신 살색 스타킹을 신었다. 그 위에 새하얀 양말을 덧신었다. 블라우스의 깃과 소매에 찌든 누런 기름때는 보이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의 호들갑이 시작이었다. 이내 같은 반 아이들이 그 호들갑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하경에게 다가와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고 하경은 상호 무관심했던 그들과 번호를 교환했다.
하경에게는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또래가 생겼다. 하릴없는 스무 살들은 매일 같이 시내로 나와 어울렸다. 그 틈에 하경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어설프게나마 화장을 배웠다. 처음 얼굴에 분을 칠한 날, 자신에게 쏟아지던 그 또래 여자들 특유의 과장된 칭찬을 잊지 못한다. 하경은 화장품과 옷을 사들였다. 하경의 부모님은 딸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에 감격해 마지않아 그녀의 용돈에 상한을 두지 않았다.
2월의 어느 토요일 밤.
하경과 친구들은 가격대가 저렴한 포차의 철제 식탁에 둘러앉았다.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안주. 하나, 둘 늘어가는 빈 소주병. 그 또래 여자들의 술자리가 으레 그렇듯 정답게 오고 가는 이년, 저년, 무슨 년. 포차에 입장할 때는 고등학교 이 학년 때 촬영한 하경의 주민등록증 사진이 지금 그녀의 모습과 너무 달라 사소한 실랑이가 있었다. 생애 처음 입에 댄 술은 쓰고 역했다. 그럼에도 어렵게 사귄 친구들을 잃을까, 눈치 보며 꾸역꾸역 밀어 넣길 수 잔 째.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슬슬 메슥거렸으나 자리는 무르익었다. 빈약한 술안주는 곧 있을 신입생 O.T 이야기로 채웠다. 각자는 나름의 계획과 포부와 바람을, 꼭 정해진 순서라도 있는 것처럼, 한 명씩 돌아가며 장황하게 떠들었다. 어느새 순서가 되었다. 하경은 신입생 O.T에 참석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불과 얼마 전 자신을 끔찍하게 여겼던 타인의 시선과 태도가 기억에 남았다. 또 당장은 새로운 환경에서 만날 새로운 사람들 보다 한때 자신을 끔찍하게 여겼을지언정, 이제는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된 친구들이 더 소중했다. 하경은 이유는 함구하고, 불참할 것이라는 계획만 조심스레 밝혔다. 그에 친구들이 보인 반응은 가지각색으로 그녀들의 표현을 빌려 적자면, 다짜고짜 그동안 미안했다고 우는 년, 세상 이성적인 척 O.T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는 년, 그 와중에 한 년은 하필 이런 순간에 합석을 제안하러 온 눈치 없는 오빠들에게 ‘저희 진지한 얘기 중이라서요.’라고 단호히 얘기해 쫓아냈다.
친구들의 취기 어린 위로와 응원에 하경은 참석을 결심했으나 O.T 전날 밤, 걱정이 앞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간밤의 걱정이 무색하게 O.T 당일, 누구도 하경을 홀로 두려고 하지 않았다. 대체로 남자들이 그러했는데 그들은 어떻게든 하경과 한마디 섞어보려 애썼고 하경이 어떤 답을 하든 과장되게 반응했다. 하경의 짐을 서로 들려고 다퉜고 술자리에서는 하경의 술잔을 낚아채 대신 마셔가며 남성성을 뽐냈다. 선배라는 여자들은 하경을 자기들 방으로 불러들여 미성년의 티를 벗지 못한 하경의 미숙한 화장을 자기들 입맛대로 고치고,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물론, 입학도 전에 특별 대우를 받는 하경을 시기, 질투하는 극소수의 무리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하경을 호감으로 대하는 절대 다수에게 가려졌다. 하경은 고등학교 졸업식을 변곡점으로 완전히 달라진 타인의 시선과 태도를 겪었다. 그 변곡점이 수년간 노력해 얻은 명문대 합격증이 아닌, 수능이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고작 몇 달간의 외모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학기가 시작되었음에도 하경의 관심은 전공이나 실습이 아닌 화장법과 머리 손질을 배우는 등 외모를 치장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매일. 주말에는 특히. 새로 사귄 친구들은 하경을 찾았다. 대부분 술자리였다. 그 술자리에서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학교가 집에서 먼 하경은 막차 시간을 신경 써야 했다. 시간이 되어 자리를 뜰 때, 자신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매번 아쉬웠다.
첫 학기가 끝나고 확인한 성적은 고등학교 때와는 달랐다. 성적을 확인한 하경의 부모님은 그녀를 나무랐고 하경은 장거리를 통학하느라 책을 들여다볼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고 변명했다. 그 어설픈 변명이 통해 2학기부터는 자취를 시작했다. 더 이상 막차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늦은 새벽 진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현관을 열 때, 뜬 눈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하경은 매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술자리가 좋았다. 그곳에는 가져본 적 없는, 자신을 향한 타인의 관심과 그들이 베푸는 대가 없는 호의가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2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즘, 하경이 들어서자 소란스럽던 강의실이 마치 짠 듯이 고요해졌다. 달라진 분위기를 진즉에 눈치챘음에도 하경이 어울리던 무리에게 구태여 인사를 건넨 이유는, 확인하고 싶었다. 모질지 못한 친구 몇으로부터 마지못한 답이 돌아왔을 뿐 나머지 모두가 무시했다. 그들은 등을 보이고 고쳐 앉았다. 곁눈질이 느껴졌다.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전화를 꺼내 메신저를 열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 있던 단체 채팅방에는 홀로 남아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술자리에서 알게 된 다른 과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내 교수님이 들어오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하경은 앞만 바라보았다. 강의는 들리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메시지 1 알림’
확인했다.
- 앞으로 연락하지 마. 걸레년아.
다시 읽었다.
또 한 번 읊조리며 읽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가방을 들고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 걸음이 눈치 보며 화장실로 향하는 걸음은 누가 봐도 아니었는지, 강의하던 교수님이 하경에게 말했다.
“학생, 강의 아직 안 끝났는데?”
무시했다. 어차피 다시 볼 일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