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 친구의 이름조차 외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몸에 남아있는 약기운 탓인지, 아니면 흘러버린 시간 탓인지는 스스로 진단하기가 힘이 듭니다. 때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던 학기 초였습니다. 여느 새내기들과 다르지 않게 궁핍했던 우리는 학교 옆 고기 뷔페에 자주 들렀습니다. 그곳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불판 위 지나치게 익어가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 술에 절어 꼬부라지는 혀를 힘겹게 놀리며 설명했습니다.
‘희망은 인간을 주체로 미래에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을 뜻하고 소망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주체로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설명하던 친구는 모태신앙이었습니다. 모태신앙임에도 술과 담배와 남자를 찬양했고요. 회개하면 다 용서받는다나 뭐라나. 어쩌면 제가 기독교를 혐오한 시발점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야기한 사이비 종교의 집회부터가 아니라 모태신앙인 친구의 모순된 됨됨이를 보았던 때부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제게 스무 살 한여름 밤의 쾌감을 재현하는 것은 희망보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술과 담배와 남자를 찬양했던 것처럼 저 또한 소망을 이뤄준 J를 찬양했습니다.
창밖 야경이 덮치듯 달려들고 전구색 호텔 조명도 그에 질세라 침대 위 우리를 짓누르듯 덮었습니다. 빛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J도 그렇게 느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J의 적당히 중후하고 밝고 명쾌한 목소리가 영화 속에서 절대자나 신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연출을 한 것처럼 우렁우렁 들려오면, 그것이 징조였습니다. 이미 이뤄주신 소망을 재현해 줄 것이라는 징조.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랬던 것처럼 J는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저는 성기를 다 드러내고 체취가 밴 찢어진 스타킹을 신은 채 침대 위에 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사타구니에는 전날 흘렸을 애액이 허옇게 굳어 눌어붙어 있었습니다. 침대가 아직 축축한 것으로 보아 제가 잠에 든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피곤하기는커녕 도리어 말짱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당시 저는 J를 인간 된 존재가 아닌 근 10년간 그려온 소망을 실현해 준 절대자, 신, 메시아, 주님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그 앞에서 부끄럽다는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마땅히 견뎌야 한다고 저 자신을 다그쳤습니다.
탁자 위에는 예외 없이 현금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실 이제 현금은 없어도 되었는데 말이지요. 목적은 오직 J, 그였으니까요.
쾌감에 허우적대는 밤을 보내고 나면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붕 뜬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J의 연락을 받았고 토요일이 되면 우리는 다시 만나 몸을 섞었습니다. 저는 매번 스타킹을 신고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제는 새로 산 것이 아닌, 출퇴근할 때 신던 것을 신고 말이지요. 그리고 J가 건네는 술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마셨습니다.
타인의 눈에는 호텔을 드나드는 우리가 젊고 돈 많은 연인으로 비추어졌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를 신적인 존재라고 찬양하면서도 연정을 아주 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연애를 해본 적은 없지만, 오래된 연인들은 서로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고, 어느 종교에서는 신을 자처하는 교주를 향해 여보, 낭군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들었거든요. 절대자의 존재를 연애 상대로서 소유하고자 함이 마냥 모순됨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J는 외모도 준수함과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풍족했습니다. 물론, 그의 진가는 밤에 있었고요. 그를 수컷으로 보자면 가장 우수한 종일 것이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당시에는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메신저 계정을 제외하고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휴대전화 번호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했습니다. 만족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관계가 가장 진화된 연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해 설 명절 연휴 -이렇게 적으니 먼 과거 같지만, 바로 작년인 2023년입니다.- 에도 호텔에서 만나 난생처음 듣는 이름의 샴페인을 마셨고, 정해진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수요일, 저는 J의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 인내심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토요일 오후 J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J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낸 건. 그뿐만 아니라, 남자가 간절해서 메시지를 보낸 건. J는 제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날이 갈수록 예민해졌습니다.
그 무렵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간다는 위드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다고 뉴스는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얼어붙었다던 경제가 차츰 회복되어 가는지 회사 업무가 다시 늘었습니다. 줄곧 해왔던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화하기가 벅찼습니다. 당시엔 마냥 늘어난 업무량에 적응이 덜 되어 그런 줄 알았습니다.
선임들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으면, 설사 그것이 마땅한 지시 일지라도 짜증이 났습니다. 업무 중 저지른 실수로 지적을 받거나 구박을 받으면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참아 내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분명 J를 만나기 전에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보내곤 했는데 말이지요. 결국 사건이 터졌습니다.
명품 가방을 운운하며 저를 구박했다는 선임을 아직 기억하고 계실까요? 그 선임은 가방뿐만이 아니라 저의 사사로운 것 하나까지도 트집을 잡곤 했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날 저는 회의실에서 갓 입사한 막내 사원과 단둘이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의 준비라고 해 봐야 회의에 참여하는 인원수만큼 음료, 간식거리 등을 조달해 자료와 함께 각 자리에 분배하는 것뿐 일이라고 할 것은 못됩니다. 준비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문제의 선임이 회의실로 들어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또 제가 사 온 음료수와 간식을 두고 구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취향이 어쩌네, 입맛이 어쩌네 하면서요. 저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선임은 팀장에게 부축을 받으며 회의실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남자 직원 두 명이 제 양팔을 잡고 무어라 소리치며 저를 진정시키고 있었고요. 후에 후임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었습니다.
선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가 손에 쥐고 있던 음료수를 그녀에게 던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일 듯이 선임에게 달려드는 저를 후임이 말렸다고 그러더군요. 저는 멈추지 않고 주저앉아 우는 선임에게 알아듣기도 힘든 욕설을 뱉어 댔고요. 미친 사람처럼, 침을 튀기면서. 아, 제가 던진 음료수는 빗나갔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갑작스럽게 드러난 폭력성의 원인이 평생을 억누르고 있었을 뿐 원래는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 탓에 쌓인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J를 그리며 발병한 상사병 때문이었는지는 굳이 적지 않겠습니다.
사건은 사내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징계 위원회는 엄청나게 대단한 처벌을 내릴 것처럼 굴더니 상해를 입은 사람이 없고 기물 또한 파손된 것 하나 없다는 이유로 경위서와 반성문만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그 후로 선임이 저를 구박하는 일은 다시 없었습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어떤 후임에게도 말이지요. 사건이 있고 난 뒤, 저를 말리던 후임이 제게 말하더군요. ‘하경 주임님, 음료수 던졌을 때, 너무 멋지셨다. 속이 다 시원했다.’라고요. 선임의 험담을 늘어놓으면서요. 이 철없는 녀석, 잘 지내고 있을까요?
선임에게 음료수를 던졌던 그날, 퇴근길에 맥주 네 캔을 사서 오피스텔로 돌아왔습니다. 그 네 캔을 다 비우고도 부족해서 네 캔을 더 사 와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언제 잠에 들었는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토사물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 냄새를 참지 못하고 침대 위에 속을 게웠는데 입에서 떨어지는 토사물 아래에는 이미 굳어 되직해진 토사물이 있었습니다. 두 겹의 토사물 옆에 쓰러지듯 다시 누웠습니다. 침대 옆 방바닥에는 찌그러진 맥주 캔 여덟 개와 바닥을 구르는 빈 소주병 두 개가 보였습니다. 잔뜩 취해서 기억도 못 하는 새, 소주를 또 사 왔던 것입니다. 결국 병가를 내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화장실을 오가며 속을 게웠습니다. 침대 위 토사물과 전날 마신 술병을 치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도 저녁에는 또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술도 마실수록 는다고 했던가요. 그 말이 참이었는지 연달아 닷새를 들이붓자 숙취의 강도가 줄었습니다. 그만큼 간이 알코올에 무뎌진 탓이기도 했겠지만, 나름의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요령이란 도중에 속을 한 번 게우고 다시 음주를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저지른 하극상도 있었겠다, 갑작스러운 병가를 연이어 써가며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 덕에 병가를 내야 할 정도로 숙취에 시달리는 일은 다시 없었습니다. 의식이 끊길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취한 상태로 침대에 누우면 몽롱한 정신이 J를 향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습니다.
토요일이었고 노을이 질 무렵부터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마시다가 술이 떨어져 편의점을 가려고 나섰을 때 해는 지고 없었습니다. 맥주와 소주를 사서 오피스텔로 돌아와 현관을 열자 밤거리보다 어두운 방이 보였습니다.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상태로 마시고 있었던가 싶어서 불을 켤까 했으나 아니, 그대로도 좋아 그만두었습니다. 사 온 술이 든 편의점 봉투를 옆에 두고 앉아 봉투 안으로 손을 넣어 가장 먼저 집히는 것 하나를 꺼내 캔이 잡히면 캔째로, 병이 잡히면 병째로 술자리를 이어갔습니다. SNS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술안주 삼아서요.
알고리즘이라고 하던가요? 제가 만든 SNS 계정이 조건 만남을 목적으로 둔 탓인지 추천하는 게시물들이 모두 살색이었습니다. 영상 속 여자들은 나체로 또는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리는 천 쪼가리만을 걸치고 작위적인 신음을 내며 절정을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작위 덩어리라고 생각했던 포르노를 볼 때와 다르게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개중에 진짜인 몇몇이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들은 J와 몸을 섞을 때 저와 같이 꾸민 신음이 아닌, 어린 짐승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손에 든 맥주 캔을 내려놓고 팬티 위로 다리 사이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숨이 가빠졌고 기분 또한 그러한 것 같아 입고 있던 팬티 속으로 손을 넣었을 때는 역시 그랬습니다. 제 성기는 여느 때처럼 메말랐습니다. 가쁜 숨과 그러한 것 같던 기분은 오롯이 저의 바람에서 비롯된 착각이었습니다.
왜 혼자서는 젖을 수 없을까.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J와 만나고 나서는 윤활제가 필요 없었습니다. 버리기는 아까워 어딘가에 넣어 둔 그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화장실을 뒤지고 찬장을 열어 헤집었습니다. 윤활제는 찬장 아래, 싱크대 서랍에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지와 속옷을 벗었습니다. 싱크대와 마주 보는 식탁, 그 앞에 놓인 의자 위에 한 쪽 다리를 올리고 성기에 윤활제를 치덕치덕 발랐습니다. 그리고 손을 넣어 헤집었습니다.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넣을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저는 다시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마시려고 사 온 소주를 들고 와 내용물을 비웠습니다. 한 손으로 싱크대를 잡고 기마자세를 했습니다. 반대 손으로는 병을 성기에 가져다 대고 힘을 주었습니다. 병은 미끄러지듯이 손쉽게 들어왔습니다. 몸속에서 차가운 이물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몸속에 들어온 병을 앞뒤로 움직이고,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돌려도 봤지만, 차가운 이물감 외에 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몸속에서 병을 빼내었을 때 병목에는 윤활제와 섞여 색이 옅어진 묽은 피가 묻어있었습니다. 그 병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비명이 아니었습니다. 분노와 증오 또 자신을 향한 혐오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격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신상을 물으니 경찰이라고 하더군요. 현관의 안전 고리 장치를 잠근 상태로 문을 열었습니다. 문틈 사이로 제복을 입은 남자가 얼굴을 비쳤습니다. 소음 신고가 들어왔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그의 뒤에서는 저를 향한 여자의 타박이 들려왔습니다. 현관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던 그녀는 오피스텔 입주민 중 한 명이었을 테지요. 그들을 돌려보낼 방법이 사과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있었을까요, 저는 사과하고 또 사과했습니다. 그들은 협박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엄한 경고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현관을 닫고 돌아섰을 때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직도 바지를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센서 등이 켜지고 또 한 번 경악했습니다. 흐트러진 침대 주변으로 맥주가 새고 있는, 터진 캔이 보였고 깨진 소주병 파편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붙박이 식탁은 다리가 부서져 상판이 주저앉았고 아끼던 몇십만 원짜리 드라이어도 바닥을 뒹굴고 있었습니다. 찬장의 문짝은 조만간 떨어질 듯 겨우 붙어 있었고 싱크대 서랍도 빠져나와 바닥을 뒹구는 드라이어 옆에서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현관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습니다. 난리를 피우는 동안 긁혔는지 팔과 허벅지에는 피가 고인 생채기들이 보였습니다. 피부가 워낙 하얀 탓에 빨간 사인펜으로 그은 것 같은 생채기들이 도드라졌습니다. 눈물이 터졌습니다. 근 10년을 들여 이루어 낸 소망마저도 금세 거두어 가버리는 인색한 팔자가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밖은 아직 어둡고 현관으로 스미는 추위에 언 몸은 떨렸습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현관 센서 등이 켜졌습니다. 잠결에 난장판이 된 방안을 잊고 있었습니다. 센서 등이 없었다면 저는 뭣도 모르고 오피스텔 안으로 발을 들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러기 전에 바닥에 깔린 소주병의 파편들이 눈에 들었고 그것들을 피해 침대로 향했습니다. 시큼한 토 냄새가 밴 침대에 누워 가시지 않은 술기운에 몸을 맡겼습니다.
김 대리 사건 이후로 알게 된 처방전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질염 약은 효과가 대단합니다. 제게도 지인이나 친구랄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물론, 여자인 지인이나 친구를 말하는 겁니다. 남자들에게는 알려줘 봐야 쓸모가 없을 테니까요.
소주병으로 몸 안을 헤집고 난 후 당연하게도 저는 질염에 걸렸습니다. 이번에는 증상이 훨씬 더 심했습니다. 분비물의 양이 많았는데 그 때문에 속옷이 젖을 정도였으니까요. 냄새와 가려움도 전보다 더 했습니다. 여성용품 중에 팬티 라이너라고, 혹시 들어본 적이 있으실까요? 생리대는 아시리라 생각하고 적겠습니다. 라이너는 생리대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 얇고 가볍습니다. 평소 분비물이 많은 여자들이 주로 사용합니다. 업무 도중 새어 나오는 분비물은 라이너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냄새와 가려움이었습니다. 숨길 수도 없고 대놓고 긁을 수도 없어 얼마나 난처했던지 삼, 사십 분에 한 번은 화장실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아마 여자 사원들 몇몇은 제가 질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부끄럽습니다. 아무튼 이런 지독한 질염도 김 대리 사건 이후로 알게 된 질염 약을 사용하니 일주일을 가지 못했습니다. 주말까지 질염이 낫지 않으면 어쩌나 굉장히 조마조마했었거든요. J로부터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연락을 받은 수요일, 노트북에 그럴싸한 화면을 띄워 놓고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온 신경이 아래, 다리 사이에 향해 있었거든요. 다리를 꼬고 허벅지를 비비며 애써 가려움을 참던 중에 의자에 걸어둔 가방 안에서 울리는 미세한 진동을 느꼈습니다. 가방 안을 보니 구형 휴대전화에 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서서 선 채로 휴대전화를 가방에서 꺼내 잠금을 해제하는 데 얼마나 마음이 급했던지, 하마터면 변기에 빠뜨릴 뻔했지 뭐예요? 오랜만에 온 연락을 허무하게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럼에도 손은 떨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메신저 열어 확인한 J의 메시지는 간결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가능해요?
이 한 문장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동안 연락을 기다리며 썩어 문드러진 마음을 넌지시 비춰 볼까 싶었지만, 냉정히 보아서 우리는 어디까지나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 연정은 분명 저 홀로 품었을 테니까 그만두었습니다. 연락을 기다렸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답장을 미루어 퇴근 시간쯤 J의 애가 탈 만큼 탔을 때, 느지막이 답장할까도 잠시 고민했습니다만, 손이 멋대로 ‘좋아요.’라고 메시지를 적은 후 전송 버튼을 눌렀습니다.
토요일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초등학교 때 소풍이나 운동회 전날 밤에 다음날을 생각하면 너무 설레서 아랫배가 사르르, 마치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요. 그 느낌을 기억하실는지요? 이미 서른을 앞둔 처녀가 칠칠찮게도 J와 만날 토요일을 생각하면 그런 느낌이 들어 화장실을 오갔습니다. 적기에 부끄럽지만, 이제 와서 그러는 것도 웃기니까 적겠습니다. 실제로 설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채운 것도 없는 속이 무얼 그렇게 쏟아내던지. 양변기에서 일어서기가 무섭게 변의가 찾았습니다. 토요일을 기다리는 이틀이 꼭 이 년 같았습니다.
토요일 오전에는 시간과 장소를 전하는 J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그간 만나던 지하철역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그렸으니까요. 오후쯤 해가 다 지기 전에 오피스텔을 나섰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20 데니어 커피색 팬티스타킹을 신고 백화점 앞에서 두 시간이나 줄을 서서 산, 경조사 때 들려고 모셔둔 명품 가방을 손에 들고 말이지요. J에게 연락이 다시 온 건 경사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J와 만나기로 약속한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땐 이미 어둠이 깔려있었습니다. 휴대전화로 그가 알려준 주소를 검색했습니다. 휴대전화의 안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눈에 익숙한 검은색 세단이 보였습니다. 삼십 분 정도 이르게 도착했음에도 시동이 걸려 있더군요. 마치 제가 이르게 도착할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배가 아팠습니다. 엉덩이 사이가 살짝 젖어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별수 있었을까요? 참아야 했습니다. 약속된 수순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밟으려면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조차 아껴야 했습니다. 세단을 향해 걸었습니다. 저를 본 J가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습니다. 멀리서도 그의 치솟은 입꼬리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