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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단 Nov 03. 2023

무용성의 유용성

팀 노블 & 수 웹스터, 제임스 커윈



쓸모없는 것?


우리는 수많은 가치들 속에서 살아간다. 물론 상황과 경우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것에 가장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가치는 아마 '유용성'일 것. 특히 사물과 공간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엔 더욱 그러하다. 애초부터 쓰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들이니까. 하지만 예외도 있다. 한때 '예쁜 쓰레기'란 말이 유행처럼 번져갔던 시기가 있었다. 외관은 쏙 마음에 들지만 제 기능을 수월히 수행하지 못하는 제품들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예쁜 쓰레기에 기꺼이 비용을 투자했다.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면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감수해 내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면서 말이다.  



Tim Noble and Sue Webster, Cheap & Nasty (2000) (출처: www.yatzer.com)



그렇다면 버려지는 것들은 어떨까? 쓰레기나 폐허처럼 더 이상 그 어떤 쓸모도 발견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아마 그 누구도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에 더 매달릴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아티스트들은 어떤 가치도 작용하지 못하는 것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낸다. 바로 남들이 버리는 것들을 재료로 하여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다. 멋진 재료들로 멋진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작업일 텐데도, 그들은 이에 과감히 도전했다. 




팀 노블 & 수 웹스터 Tim Noble and Sue Webster 버려진 그림자


누군가의 쓰레기는 다른 누군가에겐 보물일지도 모른다. 


(출처: www.yatzer.com)


 

영국의 아티스트 듀오인 '팀 노블 & 수 웹스터'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으로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들은 쓰레기, 동물과 곤충의 시체들을 재료로 하여 조각상을 만든 뒤 그 조각상에 조명을 비추어 마주한 벽에 나타난 그림자로 자신들이 원하는 형상을 재현해 낸다. 골칫덩이로만 여겨지던 폐기물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어찌 보면 신비로운 마법 같은 작품들이다. 




Miss Understood & Mr. Meanor (1997) (출처: www.artworksforchange.org)



이 듀오는 1986년, 한 미술학교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연을 맺게 된다. 이후 스튜디오를 같이 쓰면서 작업에 대한 구상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 쓰레기와 그림자라는 신선한 발상은 우연한 계기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빛을 사용한 조각품을 만들던 중 재료값이 부족했던 것이 착상의 순간이었다. 그들은 스튜디오 주변의 쓰레기 더미까지 뒤지며 재료를 찾아다녔고, 이윽고 둘은 정말 다양한 형태의 쓰레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캔이나 비닐, 담배꽁초는 물론 가구와 옷들까지. 원래의 형태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손상된 물건들은 더 이상 어떤 쓸모도 갖지 못할 것이었지만, 그들은 이것으로부터 귀중한 영감을 얻었다.




Dirty White Trash (With Gulls) (1998)
Wasted Youth (2000)
Wild Mood Swings (2009-2010) (출처: www.artworksforchange.org)



1998년 작인 ‘Dirty White Trash (with Gulls)’는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대표작이다. 마구잡이로 쌓인 쓰레기 조각에서 우리는 과자 봉지, 치약, 휴지와 종이컵 등 친숙한 이미지들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한때는 쾌락과 편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으나, 이젠 그 명을 다하고 남겨진 흔적들을 말이다. 하지만 곧 이 조각상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형상이 눈앞에 뒤이어 출현한다. 바로 그림자. 두 사람이 등을 기대어 앉아 담배와 와인을 즐기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은 비록 검은 실루엣만으로 표현되었지만, 마치 사진처럼 섬세하다. 머리카락과 신발끈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재현되어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의 자세에선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 어지러운 세상의 산물들 속에서 가장 만끽하고 싶었던 이상적인 휴식의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무용함으로부터 유의미한 것들을 산출해 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필요에 의한 유용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명과 죽음’이라는 좀 더 무거운 의미에 시선을 고정한다. 박제된 동물들과 금속으로 도금된 곤충의 시체들은 작가의 손에서 인간의 초상 혹은 시신의 일부로 다시 태어난다. 온기를 잃어버린 것들로부터 비롯된 형상들은 경이로울 정도로 또 다른 개체의 완벽한 부활로 거듭난다. 부패 역시도 생명의 일부라는 그들의 말은 이로서 그 의미를 충분히 획득한다. 



(출처: http://muybridgeshorse.com)




제임스 커윈 James Kerwin : 폐허의 숨결



영국의 사진작가 제임스 커윈은 독특한 목적의 여행을 계획한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의 정보 대신 아무도 찾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내 훌쩍 떠나는 것이다. 몇십 년 동안 방치된 교회나 수도원, 극장과 궁전이 바로 그가 원하는 장소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그의 작품이 탄생한다.

 

그는 폐허만을 골라 촬영을 진행한다. 더 이상 아무 의미도, 효용도 없는 공간이 그의 사진 속에선 놀라운 생기를 머금은 풍경으로 변한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에, 관리는커녕 언제라도 허물어질 듯 보이지만 때문에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광경을 드러낸다. 곳곳에 남겨진 과거의 흔적들은, 비록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흘러가는 시간에 끈질기게 맞서며 장소의 역사를 증명한다.



(출처: olivergrand.com)



작가는 이처럼 버려진 장소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어떠한 소음도, 차도,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폐허 속에서 그는 고독에 대한 불안보다는 고요함과 평온함을 발견한다. 마구잡이로 자라난 푸른 넝쿨과 잡초들은 누구의 손질도 받지 않아 오히려 자유로워 보이고, 허물어진 벽 틈으로 스며든 볕은 예상치 못한 형태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는 그저 이러한 광경들을 포착할 뿐이다. 화려한 가구들, 벽에 그려진 다채로운 무늬와 벽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기둥들은 비록 본래의 모습을 잃었어도, 그 어떤 인공적인 조형물보다 인상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출처: thespaces.com)



그는 폐허만이 갖는 공통의 질감과 디테일을 선호한다. 또한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흐름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포착한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곳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정지가 시간의 흐름을 아무런 제약 없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연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인공 조형물의 어우러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때문에 그는 폐허로의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곳에 가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을 장면들을 필름에 담아내기 위해. 



(출처: mymodernmet.com)



버려진 사물과 공간을 꿈의 원천으로 삼았던 두 아티스트의 작품. 모두가 외면하는 것으로부터 그토록 갈망하던 영감을 찾아냈던 이 소중한 가능성은 어쩌면 불가해한 이 세상을 무사히 작동하게 만드는 근원 일지도 모른다.  




필자: 주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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