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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단 Feb 06. 2023

찬란한 청춘의 기록

라이언 맥긴리 Ryan McGinley



누구에게나 공평한


우리는 누구나 사회 속의 한 개인으로 살아갑니다. 탄생이라는 출발선을 지나, 시간과 죽음이라는 공평한 조건을 부여받은 뒤, 인생이라는 긴 도로를...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는 거죠. 음,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길이 꼭 일직선일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어쩌면 이건 탑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일 수도, 오븐 속 수플레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한 반복을 또다시 반복하는 중이거나 어떤 좌표 위에 정지된 채 영원히 표류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하나 확실한 ,  안엔 모두가 공유할  있을 만큼의 어떤 보물 같은 순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간을 청춘이라 부르죠.




Purple Beacon (2012)  ⓒRyan McGinley
Sam, Ground Zero (2001) ⓒRyan McGinley





미국의 포토그래퍼,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레  이 ‘청춘’이라는 순간을 떠올릴 것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드넓은 평야를 질주하고, 가파른 절벽에서 푸른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며, 트럭 짐칸에 옹기종기 실려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의 궤적을 뒤따르면서 말이죠. 자유로움, 질주, 무모함, 불안함. 그의 사진 속엔 청춘을 가리키는 긍정과 부정의 상징들로 가득합니다. 비록 늦여름의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고 시원한 감촉 만을 남긴 채 금세 사라져 버릴 순간일 테지만, 그 아련한 흔적을 더듬으며 우리는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죠.





Tree No. 3 (2003) ⓒRyan McGinley




살결의 느낌, 빛이 몸 위에서 부서지는 방식을 사랑한다.
Ryan McGinley, W Korea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누드입니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전혀 섹슈얼한 느낌이 없죠. 오히려 태초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무사히 동화되기 위한 만만의 준비를 마친 듯 보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을 옭아맨 옷가지들을 벗어던지고 맨 몸으로 수풀과 꽃밭, 바다와 동굴 속으로 돌진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대자연의 광활함을 온전히, 온몸으로 마주합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불안에 맞서, 어떤 편견도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죠.







Dakota Hair (2004) ⓒRyan McGinley






낙하하는 사람들


‘자유 낙하’는 라이언이 꿈꾸는 완전한 자유를 닮아있습니다. 허공에 떠 있는 동안에는 신체를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게 되지만, 오히려 그는 이 ‘통제 불가능의 순간’을 인간이 신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점으로 여깁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인정한 뒤, 결국 놓아주게 되는 것이지요. 중력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잠시나마 그 절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의 작품엔 이런 아름다운 낙하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포착함으로써, 완전한 자유의 상징을 획득하게 되죠.







 ⓒRyan McGinley






하지만 낭만적인 추억들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그의 현실은 예상외로 혹독 했습니다. 청년 시절엔 가까운 친구들의 약물 중독으로 인한 죽음이 빈번했고, 반쪽 같던 형제를 에이즈로 잃기도 했죠. 또한 9/11 테러를 직접적으로 겪은 세대이자, 그 끔찍한 순간에 중심에 있던 뉴욕의 시민으로서,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깊은 혼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역시도 불안과 슬픔만이 가득했죠. 그러나 그는 그 공포 속에 침잠한 채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희망을 외치고 증명하려 끝없이 노력했죠. 이윽고 그는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들을, 어쩌면 너무 비현실적이라 영영 닿을 수 없을 거라 여기던 환상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이를 향해 과감히 셔터를 눌러 기록하는 쪽을 택합니다. 자신이 ‘겪었던’ 순간이 아닌 ‘원하는’ 순간들을 피사체 삼아 사진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한 것이죠.   








Fireworks (2002) ⓒRyan McGinley  







그의 작품은 다소 이른 나이에 빛을 발하게 됩니다. 2003년, 26살의 나이에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 것이지요. 사비를 들여 개인적으로 제작했던 그의 사진집이 우연히 휘트니 소속의 큐레이터에게 전달된 것이 그 계기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지닌 독특하고 신비한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작품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촬영되는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의 작업엔 어떤 특별한 테크닉은 없었습니다. 그저 흔한 필름카메라가 전부였죠.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은 사진 속 화면의 비결은 기술이 아닌 꾸준하고 집요한 관찰과 분위기를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 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였습니다.  







Whirlwind (2003) ⓒRyan McGinley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


그와 협업한 아티스트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와의 작업입니다. 수많은 브랜드와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했던 그였지만, 이것이야말로 라이언의 고유한 분위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대자연의 숭고함을 떠오르게 하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네 명의 젊은이가 드넓은 평원을 맨 몸으로 질주하는 라이언의 사진의 만남은, 역대 최고의 앨범 재킷으로 손꼽힐 만큼 훌륭합니다.







이후 라이언은 시규어 로스의 뮤직비디오 작업에까지 참여하며 이 둘 사이의 예술적 신뢰를 몸소 증명했습니다. 라이언의 친구인 제시카 탕이 뉴욕 곳곳을 뛰어다니는, 자칫하면 단순하고 지루해질 내용일 수도 있었지만 라이언만의 감각적인 색감과 연출, 편집은 회색빛의 뉴욕을 자유롭고도 신비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이 작업에 대해 라이언은 인상 깊은 한 마디를 남깁니다. “나는 꿈과 현실이 같은 곳에 공존하며 함께 어우러지길 바랐습니다.” 




https://youtu.be/t_NriRCUaXg

라이언 맥긴리가 참여한 시규어 로스의 Varúð 뮤직비디오





청춘의 기록. 라이언의 작품들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을까요? 그의 작품 속의 풍경들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영원히 찬란하게 빛날 소중한 순간들의 감촉들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당신의 주단단으로부터.


추신: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청춘,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문학과 지성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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