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결혼의 선결조건은 다르다. 대개는 사랑일 테고, 더러는 조건일 수도 있겠다. 내가 나의 남편 인로씨와 결혼을 할 때도 사랑이 컸다. 둘 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직장인이었던 터라 조건이라는 건? 글쎄,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둘 다 매우 독립적인 성향이었던지라 사랑한다는 의미는 부모의 그늘에서 완전히 떠나도 괜찮을 정도로 서로에게 매력을 갖고 있다는 뜻 정도로 해석하는 게 당시의 우리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가령, 서로의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 둘은 아마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연애시절 나는 사회복지사였다.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건 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에 비해 연애시절 인로씨는 절제된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보였다. 거기다 어디서 배운 듯 살짝 어색하게 "머플러가 잘 어울리는데요?", "오늘 한 귀걸이는 못 보던 거네요." 정도로 자신의 호감을 섬세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학습한 바를 최선의 노력으로 실천하는 듯 보였다. 별 것 아닌 그의 표현들에도 속으로는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 정도로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시절 심리학 관련 교양과목에서 교수님이 주셨던 팁과 연애 잼뱅이였던 룸메이트가 책에서 배운 연애 비법 중에 그런 내용들이 좀 섞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는 나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관계의 기술을 최선을 다해 적용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몸에 배어있지 않았으니 그렇게도 어색했나 보다.
배운 것이 체화되어 그 사람의 인격으로 드러나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인로씨의 학습된 언어들보다 나에게 호감을 주었던 말은 그저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것들이었다. 그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그래요. 좋아요. 그렇게 해요. 괜찮아요." 정도였다. 이런 말들에는 상대가 어떤 말을 했든 간에 긍정하고 수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용납의 언어들이 그가 부드러운 인력을 드러냈다.
내가 인로씨와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he)'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내 마음의 확신은 '이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던 어떤 찰나가 있었다. 이것이 남편과의 연애가 이전의 연애와 달랐던 지점이었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연애든 결혼이든 두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신비로운 것은 내 속에 이는 어떤 생각이나 마음이 단지 나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소소한 그의 말들이 마법을 부린 듯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음은 분명하다. 그의 언어들, 나의 마음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나는 남편에게 더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는 가끔 가족 모두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다섯 식구가 먹을거리를 사다 보면 기호에 따라 하나씩만 골라도 집으로 돌아올 때면 종이박스에 한 두 박스 채우는 일은 으레 있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트렁크에서 짐을 내릴 때면 나는 무거운 짐들도 서슴지 않고 내려놓으려 한다. 그때마다 남편은 "하지 말아요. 잘 못 들면 다쳐요. 내가 할게요." 손사래를 친다. 남편의 말과 상관없이 성질 급한 나는 해야겠다 싶으면 후다닥 해치워야 되는 성미를 가졌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우리 부부에게 너무도 오래됐다. 남편은 그러지 말라고 하고, 나는 매번 해왔다.
얼마 전에 나는 남편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었는지 오랫동안 물건을 옮길 때마다 들어왔던 그 말의 진짜 진의를 알게 된 일이 있다. 마트에서 생수 2리터 한 묶음을 사던 차였다. 마침 남편은 막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가져오고 있었고, 나는 우리가 사려던 물건들을 계산대 레일에 올리려 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무거운 거 함부로 들지 말라'는 메시지는 잊은 채, 힘차게 생수를 계산대에 턱 하니 올려놓으려 했다. 멀찍이 걸어오던 남편이 이번에도 늘 하던 같은 말을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남편의 말보다 행동이 빠른 성질 급한 사람인지라 남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이미 계산대 레일에 생수 묶음을 힘차게 턱 하니 올려놓았다.
계산대 가까이 당도한 남편은 한 번 더 같은 말은 반복했다.
"무거운 건 함부로 들면 안 돼요."
그날은 특별한 한마디가 더 불었다.
"귀한 사람이 무거운 걸 그렇게 들면 안 돼요."
우리가 사려던 물건들이 계산되는 수 초간 짧은 시간에 나는 공중부양되어 붕~하고 들뜬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귀한 사람인가?'
'내가 그렇게 귀하다고?'
'그래, 나는 그렇게 귀한 사람이야.'
결혼 17년 차가 되도록 남편의 언어가 관계의 정석 책에나 나올 듯한 학습된 표현들이었을 리 만무하다. 우리는 그야말로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이가 되었다. 때로는 불쾌감, 짜증, 화도 내고 서로를 신랄하게 비판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남편은 나를 배려하고 아끼는 언어들을 더 자주, 더 깊이 있게 써왔던 것 같다.
매번 트렁크에 있던 무거운 짐을 옮길 때면 나에게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하게 했던 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아내를 진심으로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실려 있었나 보다. 생활을 함께하는 부부 사이에 같은 일상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로를 아끼는 사랑의 언어나 배려의 말들도 반복되다 보면 가치를 잃어 성가신 언어들이 될 수 있다.
사실 평소 허리 통증을 더 빈번하게 호소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그는 자신이 허리가 약하기 때문에 허리를 무리하게 쓰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고, 아는 대로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허리 아픈 고통을 알기에 그는 성질 급한 아내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는 다칠 위험이 자신보다 높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번 해주었던 말이 아내를 귀하게 여기는 그의 진심이라는 생각이 내가 '귀한 사람'이라는 걸 그가 알게 해 주었을 때 완벽하게 이해됐다.
남편, 그가 전하려던 바로 언어들이 아내인 나에게 의미나 무게가 그대로 전달되려면 먼저 그에게 아내인 내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생일 축하카드에 사랑의 인사를 전하고, 결혼기념일에 서로의 존재를 의미 있게 전달해도 특별한 날의 언어들은 안타깝게도 평범한 일상까지 파동 치지는 않는다. 일상에는 일상의 다른 언어들이 필요하다. 특별한 날과는 다른 가벼운 터치감으로 새로이 채색되어야 부부 사이의 관계는 더욱 따뜻하고 신뢰로워 진다.
마트에서 집으로 돌아와 나는 남편이 마트에서 사용했던 '귀한 사람'이라는 두 어절에 감동의 찬사를 보냈다. 남편은 나의 찬사에 좋아서 방긋 웃었다. 그 후로 며칠간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아~ 사람아~ 이 귀한 사람아~ 그래, 그게 바로 나야." 그리고 방긋방긋 웃었다. 무심코 건 낸 그의 진심어린 말 때문에 나는 단숨에 아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나의 남편 인로씨의 언어는 이렇듯 나에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