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우리 부부는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 자차를 소유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살았다. 아이 둘이 될 때까지는 대중교통도 나쁘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가 연년생으로 태어난 지라 어딜 나가더라도 두 사람이 움직이면 한 명씩 담당하면 지낼만했고 꼭 필요하면 베테랑 기사님이 운전하시는 택시를 타면 되는 일이었다. 인간의 몸에 두 팔이 있다는 것도 아이 둘을 키울 때까지는 감사한 일이었다. 양쪽에 한 명씩 잡고 가면 마음먹고 요령을 부리면 지낼만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셋째가 태어나면서도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제야 우리 부부는 자차를 사기로 결정하고, 수원에 있는 중고차 매장에 가서 2014년식 SM5를 처음으로 장만했다. 막상 집에 자동차가 생기자 더 자주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나였다. 원거리 여행을 가더라도 80%는 내가 운전을 한다. 일단 남편은 운전은 필요할 때만 할 뿐, 운전의 재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나는 평생 멀미를 달고 살았는데 운전을 하면 멀미를 하지 않아서 조수석에 앉는 것보다 운전대 잡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가족의 첫 차는 아이들에게도 '엄마차'라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
남편에게도 '아빠차'가 생겼다. 시아버님께서 칠순이 되시면서 20만을 탄 2008년식 SM5를 출퇴근할 때는 그래도 쓸만하다며 가져가도 좋다고 하셨다. 시부모님께서는 가져가지 않으면 폐차를 할 예정이었던 터라 남편은 그 차를 시아버님께 폐차비를 드리고 가져왔다.
아이들은 아빠차의 엔진소리가 '엥~~~~' 요란스럽다며 흉내를 내며 깔깔 웃으면 남편은 아이들이 낸 소리의 한 10배쯤은 더 큰소리를 '엥~~~' 내며 이 정도는 돼야 아빠차 소리라며 맞장구를 치곤 했다. 내가 보기에는 운전하기에도 불안해 보였지만 남편은 정비소에 자주 들러 관리하고 기계식 세차를 정기적으로 해가며 앞으로 10년은 더 탈 듯이 정성스럽게 관리를 했다.
2년 정도 잘 타더니, 이번에는 남편의 형인 아주버님이 새 차로 바꾼다며 연식은 오래됐지만 20만이 넘은 차보다는 나을 거라며 18만 인 산타페를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도 셋이나 있으니 조금 더 넉넉하게 탈 수 있는 SUV이니 남편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거기다 실운전을 해보더니 20만이 넘은 차보다는 소리도 깨끗하다며 기분 좋게 차를 받아왔다. 이번에도 폐차값을 주고 차를 바꿔왔다.
남편은 자기 소유인 물건들은 정성을 다해 관리하는 편이다. 아주버님께 받아왔을 때에 비해 낡고 해어진 부분들은 되돌릴 수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깔끔하게 정돈되어 갔다. 아이들과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아직도 연식이 오래된 남편의 차와 같은 차들이 꽤 많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빠차 친구차가 간다!"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남편은 친구차를 만나면 진심으로 반가운지 "역시 아빠차는 디자인도 여전히 싫증 나지 않게 잘 나왔고 튼튼하다"며 2008년식 산타페에 대한 애정을 쏟아놓는다.
그런 여담에 나는 종종 찬물을 끼얹곤 한다. "똥차인데도 그렇게 좋아요?" 이 말의 속뜻은 '우리도 이제 새 차 한 대 삽시다' 정도로 해석해 주면 좋으련만, 남편은 나의 장난스레 전하는 말에도 '똥차'라는 단어는 맞지 않다고 응수하며 '똥차'라는 단어의 사용금지령을 내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차에 '똥'이라는 단어는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의중이다.
차란 이동수단으로써 충분히 기능하면 되는 것이지 기호품으로 바꿔가며 탈 필요는 없다는 것에는 우리 부부는 일치된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나는 안전을 위해서 차를 바꿨으면 하지만, 남편은 안전을 위해서 자주 관리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기 영역의 물건이든 사람이든 잘 챙기는 특성이 남편에게 있기에 그러려니 늘 넘긴다.
그러면 꼭 따라오는 말이 있다.
"여보, 토마스 J. 스탠리가 쓴 이웃집 백만장자 책 내용 기억나지 않아요? 그 책에 보면 진짜 부자는 작은 중고차를 타고 적절한 집에서 살며 부자인 것을 티 내지 않아요. 하지만 부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좋은 차에 부담스러운 집에서 소비적으로 살잖아요. 나는 그 책을 보면서 아주 공감했어요."
남편이 중고차를 기쁘고 즐겁게 애지중지하면서 탈 수 있는 이유는 사실은 여기에 있다. 허울만 번지르르하지 않은 진짜 알짜배기 이웃집 부자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삶의 양식 중 하나이다. 가끔 '아빠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르면 아이들은 2008년식 산타페 속에서도 고급차들의 이름을 부르고 디자인 품평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에도 남편은 비슷한 레퍼토리를 읊는다.
"겉만 부자가 아니라 속이 알찬 부자가 되어야 한다."
"진짜 부자는 열등감이 없어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
"아빠도 저런 고급차 살 수 있지만 원하지 않아서 안 사는 거야. 돈을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줘야 한다."
등등 남편만의 돈 철학이 줄줄 나온다.
벌써 폐차할 차만 두 번째 소중하게 차고 다니는 남편을 가진 아내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고 아내나 가족들에게 구두쇠처럼 굴지도 않고, 낡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차를 가져다 반짝반짝 광을 내며 타고 다니는 이 남자는 남들에게(심지어 아내에게조차) 똥차로 보일 수 있는 차를 갖고도 자기 철학이 있어서 꿈쩍하지 않는다.
남편의 자기 철학을 내가 '개똥철학'이라고 하면 과연 뭐라고 응수할까? 갑자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