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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Mar 13. 2024

네가 너를 포기할 때라도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나는 너의 아빠니까

금요일 저녁에 경산역에 도착하면 마중을 나간 나에게 남편은 늘 같은 말을 건넨다.

"아이고~ 한 주간 잘 지냈습니까?"

그럼, 나는 또 매번 비슷한 답을 한다.

"수고 많았어요. 또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주말부부 3년째다. 금요일 저녁 남편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한 주 간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이제 캡터 '휴식'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우리 집에서 가장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남편이자 아빠까지 합체한 완전체가 된 느낌이 든다.


아빠를 만난 아이들도 반가운 기색으로 열렬히 아빠를 환영한다. 말수가 유독 많은 막내는 아빠에게 다정한 인사말들로 아빠의 귀염을 사고, 요즘 사춘기에 들어간 듯 보이는 둘째는 엄마가 아빠를 마중 나간 사이에 정리정돈으로 아빠를 환영한다.



# 공부력보다 체력이 먼저라는 남편


그렇게 평온한 금요일 밤이 지나면 토요일 아침 9시가 되면 남편은 아이들의 아침밥을 챙기며 아이들의 수영강습 일정에 맞추어 분주한 주말 오전을 맞이한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공부력보다는 체력을 강조하는 것 같다. 기숙사 생활 중인 딸아이도 발레로 코어 근육을 일찍이 만들어 주더니, 이어서는 수영강습을 시켰다. 보통의 아이들이 학원셔틀을 이용할 때도 남편은 자전거 타는 법, 내리는 법, 코너 도는 법, 방어운전하는 법 등을 소상히도 가르쳐주며 셔틀버스 대신 자전거로 이동하며 운동이 되도록 훈련을 시켰다. 둘째도, 셋째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이들도 아래 두 가지 사항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 자전거는 내 몸처럼 자연스레 다룬다.

둘째, 수영은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체력이 좋아야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운동은 한 종목이라도 끝까지(스스로 잘한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하게 되면 다른 어떤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자신의 몸을 잘 쓸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자전거도 어리바리, 몇 번의 수영강습을 받았지만 음파만 하다 끝난 나와는 남편은 기본적으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다. 물론 이런 남편이라서 참 다행스럽다. 자녀 양육에서 내가 잘할 수 없는 영역을 남편이 잘 커버해 주기 때문이다.



# 그러나 공부력도 포기하지 않는 남편


토요일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남편은 몸을 쓰는 모드에서 공부모드, 정확히는 숙제점검에 들어간다. 남편의 성격 유형은 ESTJ, 나는 ENTJ. 내가 평일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는 방법은 설거지하면서 잔소리하기, 숙제가 뭔지 확인하고 다 했는지 물어보며 확인하는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그러나 남편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아이들과 테이블에 앉아서 알림장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훑어보며 글씨체까지 점검하며 꼼꼼하게 살핀다. 글씨는 마음의 표현이랬던가? 숫자의 쓰기 방식까지 점검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남편의 지도는 이미 세 아이의 학습지도를 하면서 아주 숙련되었을 뿐 아니라 전문적이고 요즘은 예지력까지 발휘한다. 예를 들어, 숫자를 쓸 때 '6'은 '0'과 구분되게 정확한 모양을 갖추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걸 대충 하면 나중에 잘못 써서 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남편의 학습지도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건드린다. 중2가 된 첫째 딸아이는 동생들이 이런 류의 훈계가 지당한 말씀이라는 걸 안다. 어려운 수학적 논리를 갖고 있어도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잘못 써서 오답을 쓴 경험이 딸아이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도 아빠가 딸의 풀이 과정을 보며 원인을 같이 찾아준 것이다.


첫째가 초등 저학년일 때까지는 남편과 내가 비슷한 역할을 해서 우리 부부의 숙제지도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에는 내가 좀 빠른 편이라 아이들이 읽을 책을 선정한다거나 굵직한 교육의 방향을 먼저 제안하는 것은 엄마인 내가 먼저 한 것 같다. 그러나 디테일을 잡아가며 꾸준하게 지속하는 힘은 남편을 따라갈 수 없다. 나의 용량으로는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지도할 수가 없었다. 어느 담임 선생님도, 어느 학원 선생님도, 심지어 과외교사도 남편처럼 치밀하게 멘털관리를 기본으로 한 학습의 기본기의 잡아가는 지도를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난 학기였다. 아이들이 인터내셔널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수업의 특정 과목들은 모두 영어로 진행이 된다.  둘째가 영어 원서로 수업하는 역사와 과학 수업을 어려워하는 눈치가 보였다. 이런 상황 파악은 엄마인 내가 잘한다. 이럴 때 나는 방법을 설명하고, 설명한 방법으로 적용해보라고 하고, 어땠는지 물어보는 것이 고작이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한다면 한 두 단락 원문을 읽고 해석하며 이해정도를 점검해 보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남편은 역시 나와는 다르다.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는다. 반복해서 확인하고 학습한 방법이 다음에도 익숙하게 적용되는지 재확인한다. 솔직히 아이가 어떻게 학습을 진척시켜 나가는지 세밀하게 지켜보는 것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한석봉 어머니도 한석봉에게 글쓰기를 시키고, 본인은 떡을 썰지 않았나? 나도 나의 시야 안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설거지나 음식 준비를 하며 아이들을 감독한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함께 살펴본다. 아이가 암기할 때면 시간이 좀 지나면 어느새 남편이 그걸 다 외우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면 남편의 지도가 엄청나게 빡빡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알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부방식이나 태도는 비슷한데, 엄마는 널널해서 피해 갈 수 있고 아빠는 확실히 알 때까지 함께 있어준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아이들의 학습력은 이제 나의 손은 벗어난 거이라 봐야 한다.


역사와 과학을 영어로 공부하려면 일단 어휘도 중요하지만 문장구조를 알고 해석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남편은 둘째가 수업 중에 헤매는 지점은 단어보다 문장구조라는 것을 파악하더니 그때부터 3주간 토요일 오후만 되면 마치 특훈을 하듯 둘째와 치열한 학습훈련에 들어갔다. 영어교과서를 학습하려면 어쩔 수 없이 주어와 술어를 찾고 문장구조를 알아야 한다며 3주간 이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첫 주는 남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정신 바짝 차리라는 훈계와 강압적인 목소리에 집안 공기마저 서늘해졌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빠의 치밀하게 밀고 들어오는 학습지도에 마음을 열지 않은 듯했다. 첫째와 셋째는 아빠가 모르는 부분을 가르쳐 주면 쉽게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둘째는 조금 느리고, 설사 잘못된 방식이라 해도 쉽게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공부력의 점프가 필요한 어느 단계가 되면 아빠와 쟁쟁한 기싸움을 벌인다.


2주 차 토요일이었다. 남편이 둘째를 매섭게 바라보며 톤을 높여 얘기했다

"너는 너를 포기해도,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나는 너의 아빠야. 지금 너는 네가 이걸 잘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고 이 시간이 지나길 바라고 있어. 그런데 네 마음을 고쳐먹을 때까지 아빠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남편의 이 말에 주변을 지키던 나의 마음마저 요동치는 듯했다. 누구든, 어떤 공부든 성장을 하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공부가 재미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산을 굽이굽이 넘어가면서 느끼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째 아들 녀석은 올라야 할 산을 만나면 언제든 관성에 따라 주변을 맴돌며 오르려는 결심을 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중요한 차이가 바로 여기 있는 것 같다. 두뇌의 차이보다 태도의 차이인 것이다.


아이를 앉혀 놓고 가르치다 보면 부모가 인내력이 부족해서 공부에 흥미가 없다거나 공부할 머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해서 제 갈 길을 가라고 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남편과 나는 그런 생각을 실제 자녀 교육에 적용시키지 않는다. 아이는 마음의 장벽을 만난 것이고 그 장벽이 새로워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뿐이다.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시켜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가다듬고 가야 할 길에 새 마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너는 포기해도 아빠이기에 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남편의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이 담긴 말이었다. "너는 지금 할 수 있는데 머뭇거리고 있어. 이미 방법은 알고 있어. 집중해. 다시 한번 차근히 가보는 거야.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어. 믿어봐. 괜찮아. 어서!" 이쯤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남편의 몇 마디 말이 있은 후,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남편의 놀라운 탄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지! 잘하고 있어! 바로 그거야!"

아이의 마음의 정곡을 찌리는 말이 순식간에 아이의 마음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 후, 3주 차가 되었을 때 남편은 둘째에게 전수한 학습방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아~주~ 잘하고 있어!!" "훌륭해~"

물론 아들도 아빠의 칭찬에 신이 난 듯하다. 어려워하던 교과서도 술술 읽어 나갔다.


1. 둘째가 공부하다 난관을 만난 것을 확인한다.

2. 아빠는 아이와 함께 손잡고 돌파에만 몰두한다.

3. 모든 집중력이 먼저 아빠에서 시작되어 그 에너지가 아들에게로 옮겨갈 때까지 계속된다.

4. 아빠가 모든 것을 컨트롤한다. 하지만 그 흐름에 익숙해지면 아빠는 아이의 손을 놓고 응원자로 태세를 전환한다.

5. 아이는 스스로 있다는 늦게 깨닫고 기뻐한다.

6. 한 달만 지나도 아이는 아빠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웬만하면 잊는다.

7. 수년이 지나면 아들은 원래 능력이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라 착각(확신)한다.


이것이 우리 집 둘째 아들 녀석이 공부력을 키우는 일련의 과정이다. 아내의 입장에서 아들보다 남편이 더 대단해 보인다. 남편은 아무래도 아빠로 살며 괴력을 갖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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