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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Mar 23. 2024

아직도 나는 그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사랑이 변해도 기억이 남아 다행스러운 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그 남자가 손색이 없어서도 그 여자가 품어주는 넓은 마음을 가져서도 아닌 것 같다. 또 다른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두 사람의 그 어떤 특성들을 뛰어넘는 그저 '신의 가호'라고 밖에 더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녀도 완벽하지 않기에 부족한 두 사람이 부딪혀서 갈등을 겪는 것은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러기에 부부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용납할 거라는 요량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모든 인간이 의지대로 살아낸다면 세상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테고, 나의 삶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내의 마음과 남편의 마음이 잘 맞는 두 퍼즐처럼 아귀 맞아지는 것은 그야말로 신이 선물한 운 중에도 대운이라 생각한다.


세월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나마도 인간이 자연에 매료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아름다움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꽃샘추위가 있는 날에 작년에 좋았던 벚꽃길을 걸으면 기대감에 이른 설렘이 찾아든다. 꽃나무를 보며 곧 꽃잎이 맺히겠지? 그러면 꽃눈이 내리겠지? 주책없이 비가 주룩 내려 벚꽃이 주는 설렘을 앗아지는 말아야 할 텐데. 별별 생각에 상상 속 벚꽃길을 걷게 된다.


아무리 심지 굳은 사람이라 해도 사람은 일단 변하면 쉽게 돌이켜지지 않는다. 나의 남편 인로씨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내가 사랑하기 시작했던 사람은 2007년 만난 그 시절의  그 사람이다.


첫 만남 이후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던 듯하다. 내가 좋아하던 인사동 사과나무에서 만나 점심을 하고 인사동을 거닐며 갤러리를 들러 데이트를 했다. 인로씨는 그날 나의 손을 잡아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왔었던지 열심히 틈을 살폈다. 알지만 모른 척, 도저히 아는 채 할 수 없는 두근거리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쩌다 그런 건지 아니면 인로씨의 섬세한 살핌이었는지 모르지만 두 손이 불꽃 튀듯 서로의 손을 낚아챘을 때 의외로 그저 덤덤했던 그날은 잊히지 않는 우리 둘의 추억이다. 인로씨는 손을 잡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땀으로 손이 촉촉해져서는 손을 바꿔 잡아도 되겠냐고 머쓱하게 물어왔다. 그날 데이트는 손을 잡는 데에만 온정신이 가있었던 것 같다.


언제든 데이트 장소에 나가면 만나기 전 20미터 전부터 두 팔을 활짝 벌려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나는 그와의 만남에 초대되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만나면 우리는 참 많이 걸었다. 걷고 또 걷는 연애였다.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기만 해도 시간은 아쉽도록 빠르게 지났다. 그 당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고, 십여 년 전과 요즘의 직장 문화는 많이 달랐다. 걸핏하면 야근이지만 회사가 있는 강남에서 퇴근을 하면 당시 내가 있던 아현동을 5-10분이라도 들러 막차를 타고 영등포에 있던 자기 집으로 갔다. 내가 인로씨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주된 이유가 그의 이런 일관된 정성과 헌신이었다. 물론 나는 언제든 피곤하니 집으로 곧장 가서 일찍 자라고 했고, 그는 오늘은 그러겠노라고 낮에 통화를 했어도 막상 퇴근길은 잠시라도 보는 게 좋다고 그의 진심을 행동으로 표현해 주었다.


1년 여의 연애기간을 거치고 결혼을 했을 때 서울 유학으로 자취생활을 오래 하던 우리 두 사람이 마련한 거처는 용산 후암동의 다세대 주택 2층이었다. 나는 늘 먼저 퇴근을 했고 대부분 남편의 귀가가 더 늦었다. 퇴근하는 남편은 언제든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게 집으로 향해 오던 그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상상하게 해 주었다. 어느 날에는 그렇게 크게 부르면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잠깐 이름 부르는 건데 어떠냐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의 퇴근길의 설렘 가득한 우렁찬 목소리는 둘째가 태어날 때까지 수년간 계속되었다.


요즘도 가끔 나는 남편에게 말하곤 한다. 인사동 갤러리를 돌 때 손에서 흘렀던 그 땀을 고이 간직해 두었다면, 만날 때마다 두 팔을 활짝 펴고 나를 환영해 주었던 그때의 장면들을 모두 사진으로 저장해 두었다면, 퇴근길 집 앞 10미터 전부터 우렁차게 나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던 그 목소리를 녹음해 두었다면 참 좋았겠다고. 내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그때가 나는 여전히 참 그립다. 내가 그때의 남편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해주면 그는 완벽한 현실주의자가 되어 지금은 또 다른 인로가 있다는 듯 가벼이 지나간다.


오늘 새벽에는 일찍 잠에서 깼다. 마침 남편이 옆에서 자면서 잠꼬대를 해댔다. "그러면 그럴 수도 있다며, 그건 그런 거다"라며 후임들에게 알려주는 꿈을 열심히 꾸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 갑자기 '뿡~'하고 거센 방귀를 한 방 날리더니 잠을 자면서도 놀랬던지 "아이고~" 감탄사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놀람도 잠시고 그는 이내 이불을 감싸 안고 깊은 잠으로 향해갔다. 꿈속에서도 회사일을 할 만큼 일하는 게 만만치 않나 보다 싶다가도 갓난아기가 자기 방귀에 놀래서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듯 꿈속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자기 방귀에 놀래서 감탄사를 보이나 싶어 귀여운 마음에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물론 혹시나 고약한 방귀 냄새가 전해 올까 나 역시 이불로 코를 가리는 건 자연스러운 방어행동이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2007년의 그를 현실에서 다시  찾을 수는 없다. 막내아들은 엄지 척을 했다가 엄지손가락을 내리면서 방귀를 "뿡~" 날리며 아빠와 깔깔 웃으며 방귀놀이를 한다. 둘째 아들은 방귀는 자신이 없는지 트림으로 바꾸어 아빠와 똑같은 장난을 하며 깔깔대며 웃는다. 봄꽃의 향기가 평생 가득할 것 같은 인로씨와의 만남은 십여 년이 흘러 상상하고 싶지 않은 온갖 냄새들이 가득한 천국이 되었다. 그래, 인생에 꽃길은 없다. 그저 인생은 꽃길을 걷듯 기쁘게 걸어가는 걷는 자의 태도가 중요하듯, 상상하고 싶지 않은 냄새 천국인들 어떠랴, 웃음이 가득하면 충분한 거다 싶다.


"여보~ 아직도 부인이 이쁩니까?"

"세상에서 제일 이쁘지요."

"여보~ 아직도 부인이 사랑스럽습니까?"

"나는 세상에서 부인이 제일 좋습니다. 제일 소중합니다. 쟤네 셋은 커서 떠나면 그만이고 우리 둘이 잘 살아야 합니다."


나의 남편 인로씨는 나를 신념과 믿음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사랑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에게 허락된 나를 향한 넉넉한 사랑은 나에게 그 이유가 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의 앙칼진 속내의 끝을 알고, 내 마음의 온갖 상처와 악취를 맡아본 사람이지만 요동 없이 그저 나를 사랑하는 그가 나의 남편 인로씨다. 그래도 아주 가끔, 나는 손에 땀을 흘리며 내 손을 잡고,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하던 그가 그리울 때가 있다. 따뜻한 봄날의 설렘이 전해오는 오늘 같은 날에는 더욱 그렇다. 그때의 그가 세월이 지나 나에게 다른 사랑을 보여주지만 내 사랑의 시작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기에 그리움의 유효기간은 아직도 넉넉히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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