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죄인입니다.
향이 진한 뜨거운 커피 한 잔은 언제나 나를 갈등하게 만든다. 커피 한 모금을 혀로 감싸 안았을 때 느껴지는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씁쓸한 그 맛과 모든 감각을 깨우는 향기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두근거림과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나에게 충분한 커피양은 정말이지 단 한 모금이다.
며칠 전 남편이 좀 옅어 보이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길래 슬쩍 뺏아가 홀짝홀짝 마셔댔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내 몸의 신경체계는 카페인에 늘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눈만 감았지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그날 밤을 지새웠다. 여름날의 불면의 시간은 강렬한 여름 일출 덕분에 더 안타깝다. 해가 뜨면 새소리까지 너무도 경쾌하게 울려서 감은 눈으로 온 세상이 기상한 것을 애석해하며 바라보는 것 같다.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아침에 아이들 등교 준비를 위해 몸을 일으키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잠을 좀 잤겠지. 그래, 괜찮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나님, 사랑하는 자에게 잠의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
역시나 나의 이런 류의 투정에 묵묵부답이시다.
잠이 부족한 상태는 혼이 건강치 못한 상황이다. 나는 꼭 그렇다.
평소에는 괜찮았던 일들에 예민해지고 살면서 잊었던 아픈 기억들도 모두 소환하게 된다. 한 마디로 내 인생의 잡것들을 모아놓은 쓰레기통을 내 손으로 가져다가 고이 소중하게 뒤집어쓰는 격이다. 그러면 당연히 모든 감사의 제목들은 신기루 같고 예수님의 십자가도 복음의 의미도 내 삶을 생동케 하던 모든 것들을 나는 일시에 모두 잃어버린다. 나는 이것이 죽음 같다. 숨 쉬고 있어도 마치 임사체험을 하듯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장 좋을 테고, 아주 가끔 일어난다 해도 참 다행일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단지 커피 한 잔으로 영적 침체감을 경험한다는 것이 거룩을 향한 신앙생활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이런 나의 모습을 때로는 부정하고 억압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저 이런 나를 받아들인다. 물론 영혼의 어두운 외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나를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빈번해지면서 알게 된 비법이라면 비법인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그래요!! 하나님!! 제가 이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속성을 가진 인간입니다!"
침체된 나의 걸음을 옮겨 걷게 하는 것은 언제나 죄를 인식하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는 아주 빈번하게 만나는 나의 이야기 같다.
나는 자신은 한 끗 잘못이 없다고 철저하게 방어하는 사람을 보면 그 당당함이 기괴해 보인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자기 연민과 자기 동정에 빠져 있는 사람을 봐도 그가 만든 견고한 보호막에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에게서는 오히려 그의 용기에 선뜻 용서를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내 영혼이 어두운 골짝에 빠져 갈 때, "그래요!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소리치면 바로 그때, 성령의 불씨 하나가 내 속에 지펴지는 것 같다. 빛은 어둠을 이기기에 삽시간에 내 영혼을 환하게 급반전시킬 수 있다. 내가 죄인임을 인식하면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사건으로 나의 모든 죄를 지신 구원 사건이 연속적으로 떠오르기에 어둠의 결박에서 헤쳐 나올 수 있게 된다.
정말이지,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다. 이 엄청난 구원의 역사를 머리로 알아도 내 삶의 한 자락과 맞닿아 나와 연결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구원의 감격이 복음의 능력이라면 복음 안에 완전히 푹 담기기 않으면 우리는 두더지 게임 마냥 어둠의 방망이로 한 대 맞아야 '뿅~' 소리를 내며 복음 안에 잠길 수 있다.
커피 한 잔으로 잠 못 이룬 다음 날, 내 마음이 잡다한 쓰레기를 뒤집어쓰고 있을 바로 그때, 아직도 여전히 죄와 씨름하는 나를 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예수님의 보혈이 나를 덮으시기를 기도할 때 나는 다시 생기를 찾고 내가 있어야 할 원래의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가장 완벽한 환희의 시간은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시공과 만물의 현존이 무의미해지고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순전한 고백에 이르는 것이다. 그 길에서 멀어질 때, 나를 리셋시키는 인풋 언어가 바로 "그래요, 나는 죄인입니다."인 것 같다. 어둠 속, 길을 헤매더라도 출발점에 다시 설 수 있다면 종착지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여정에 어떤 나날들을 숱하게 보낼지라도 결국 나는 그곳에 이르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죄인에서 승리자로의 대반전, 복음 안에 살기에 누리는 기적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