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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Aug 20. 2024

외동놀이의 시작


나(엄마) : 시온아, 지금 기분이 어때?

시온 : 음...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게 뭐가 있죠?

나(엄마) : 냠냠샨숀이지(세 아이들을 한 번에 부르는 우리말의 약속 언어).

시온 : 사람 말고요. 물건 중에서요.

나(엄마) :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면 엄마 연구자료 담긴 USB

시온 : 저의 지금 기분은 엄마가 소중히 생각하는 그 USB가 망가졌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거예요. 내가 엄청 열심히 만든 레고가 박살이 나버린 거죠.

나(엄마) : 너무 안타깝고 속상한 거네.




늦깎이 중학생이 된 형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 막내 시온이와 나눈 대화이다.


나는 냠냠이와 샨, 숀. 세 아이를 키우는 일하는 엄마다. 냠냠샨숀이란 말도 아이 셋이 모여 앉아서 어느 날 만든 말이다. 이제 9학년(중3)이 된 딸아이는 먹는 걸 좋아한다며 샨과 숀이가 뚝딱 만든 이름이다. 첫째 이름이 나빈이라서 냠냠과 첫 이니셜이 N이니 기억하기도 좋다며 누나의 별칭을 장난스레 대충 지어준 것이다. 샨과 숀은 자기네 이름을 줄임말이다. 둘째 시안은 샨, 막내 시온은 숀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이들 셋을 한 번에 부를 때 "냠냠샨숀!!" 단방에 소리를 질러대면 제 각각이던 세 아이들이 엄마에게로 다가온다.


아이들이 기독교대안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4학기에 접어들었다. 지난 주일, 공교육의 나이로는 올해 3월에 중학교에 입학했어야 하는 샨이가 드디어 중등과정으로 접어들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오늘로 고작 3일째다. 


하지만 샨은 서너 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시콜콜 밥상머리 교육을 엄청나게 챙겨대는 부모님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해방감에 처음에는 기대하는 기색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3주간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엄마가 해주는 집밥도 없고 편안한 집을 떠나서 낯설게 적응해야 하는 기숙사 생활에 대한 걱정도 올라오는 듯했다. 급기야 마지막 한 주 동안에는 모든 것이 기숙사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며 온 가족들에게 소소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들어 하룻밤 사이에도 키가 자라는 듯하더니 엄마 키를 훌쩍 넘어버린 의젓한 청소년 아들이지만 엄마와의 따뜻한 허그는 언제나 환영해 주었고, 산책을 나가면 다섯 손가락의 틈 하나 없이 깍지를 끼고 걷자던 아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샨의 특유의 귀여운 표정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 역시 언제든 보여주었다. 늦은 시간 분리수거를 해달라는 요청 외에는 거절이 없는 아들이었기에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자이기도 했다.


아들이 기숙사로 입소하기 일주일 전부터 '마지막'이라며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요청했다면, 나는 순간순간 아들과 함께한 모습을 담고 싶어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물론 아들은 비슷한 표정, 비슷한 포즈지만 엄마가 원하니 그저 응해 주었다. 샨은 별 감흥 없이 사진을 찍었겠지만 나는 찍은 사진을 되돌려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참 많이 컸네.'

'아기 때 모습 그대로네.'

'이 녀석 비염으로 고생하면 어쩌지? 약을 챙겨 줘야겠네.'

'으휴~ 매일 나쁜 간식 신나게 먹으며 알레르기가 심해지겠지!'

'어쩜, 참 반듯하게도 생겼네. 도대체 누굴 닮았지?'

'고 녀석 앉으면 아이고, 서면 엄마보다 크네. 비율 한 번 좋구먼~'


샨의 기숙사 입소를 더 불편한 마음으로 준비한 사람은 막내 숀이었다. 이제 9살이니 5살 터울의 형은 숀의 든든한 뒷배이자 친구이자, 돌봄자였다. 세수하는 법, 샤워하는 법, 끈 운동화 빨리 신는 법, 멀리뛰기, 탁구, 자전거, 부모의 손이 닿지 않아도 형을 따라 하거나 조언을 들으며 자라온 것이다.


"엄마! 이제 시온이는 외동도 아니면서 외동놀이를 하겠네요?"


외동놀이를 제대로 시작해 보지도 못한 채, 막내 숀이가 형을 기숙사로 보내고 돌아오면서 경험한 첫 마음은 '공들여 만들어 놓은 레고 작품이 산산이 조각난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었다. 둘째와 헤어지는 엄마의 마음보다 막내 시온이의 마음이 무거웠던 같다. 


아들 둘의 저녁을 준비할 때는 가뿐했는데, 어제는 숀이와 나, 두 사람의 저녁상을 차리는 데 뭔가 어색했다. 하루는 샨, 하루는 숀을 생각하며 차렸던 메인 음식의 메뉴에 혼란이 왔다. 저녁을 먹으며 숀에게 다시 물었다.

"시온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꼽아볼까? 짜장밥, 꽁치, 김치찌개, 훈제오리, 된장찌개..."

시온이가 거든다.

"그리고 조기도 좋아하고요. 간장 두부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내가 응수했다.

"그래, 매일매일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엄마에게 말해줘. 우리 같이 하자."

엄마의 말에 시온이가 묻는다.

"엄마! 오늘 밤에는 엄마랑 같이 자도 돼요?"


주말 부부인 나에게 찰떡 같이 붙어 지낼 시온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이제, 진짜 외동아들을 키우는 또 다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걸 냠냠샴숀은 시온이의 '외동놀이'라고 한다.

덕분에 나의 힐링 타임이었던 저녁 산책도 물 건너갔지만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시온이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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