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떨고 있는데....
별내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집 앞을 나오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불암산이다. 경산에서 살면서 창문을 열면 나무가 빡빡한 성암산이 있었지만 불암산을 바라보면 큰 바위로 보여서 산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마음이 사뭇 달랐다.
남편과 연애시절 내가 등산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김밥을 싸서 불암산에 올랐던 추억이 있다. 산에 오를 때는 씩씩하게 오르더니 정상에 올라서는 바위를 올라 멋스럽게 인증사진을 찍는 건 실패했고, 찍어둔 사진을 보면 웃고 있지만 두려움을 감추려는 기색이 드러난다.
시온이에게 엄마 아빠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아이는 아빠는 해외로 파견 나가 계시고 형과 누나는 지방에서 기숙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오롯이 엄마를 벗 삼아하고 싶은 일을 물으면 "등산가요!!"를 몇 주째 외쳐댔다.
이사하고 새로운 학교에 부임해서 적응하랴 마음이 뭔가 분주한 터라 등산은 왠지 내키지 않아 두 주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었다. 드디어! 미룰 수 없는 금요일 밤이 되었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우리 내일은 뭐 할 거예요?"
살짝 피해 가볼 요량으로 답했다.
"하고 싶은 게 있어?"
아이는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등산가요! 늦으면 안 되니까 일찍 가요!"
지난주는 오후 4시가 넘어서 등산을 가자고 하길래 해가 지면 위험하니 아침부터 가야 한다고 얘기해 둔 터였다.
"그래, 그럼 내일은 아침 든든하게 먹고 김밥집에 가서 김밥을 한 줄 사서 올라볼까?
아이는 기쁘게 답했다.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몇 주만에 불암산을 오르게 된 기대에 각자 채비에 나섰다.
나는 순두부를 하나 풀어서 든든한 떡국을 만드는 동안 아이는 자신의 피크닉 가방을 갖고 와서 물과 초콜릿 3개(엄마 하나, 시온이는 두 개)를 챙겨 넣고 등산 스틱에 장갑까지 챙겨 넣는다.
아이가 묻는다.
"이 가방은 누가 들죠?"
냉정한 엄마가 답한다.
"네가 챙겼으니 네가 책임지는 거지!"
우리가 시작한 지점은 불암사 주차장 쪽에서 올라가는 길인데 안내판 앞에 선 시온이는 코스 중에 가장 긴 코스를 가자고 했고(그저 많이 놀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나는 시간이 가장 짧은 코스로 가자고 했다(여긴 산! 정상까지 가는 길이 짧다면 분명 힘든 난관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올라가면서 어느 길을 가던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길로 가는 게 안전하겠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가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산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돌봉우리가 나왔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 있었고 우린 이제 막 산을 올랐으니 친절해 보이는 한 분께 정상을 가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물었다. 바로 옆에 있는 애기봉도 좋으니 어린 아들과 그쯤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주셨다. 바로 그 찰나에 또 다른 한 분이 우리의 대화에 들어오셨다.
"이 길로 가면 암벽을 오르는 길이에요. 물론 길에는 등산객이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잘 되어 있어요. 아이도 갈 수 있어요. 처음 가면 오르면서 좀 무섭긴 하지만 안전하니까 차근차근 오르면 오를 수 있어요."
시온이는 그 말을 듣자마다
"엄마 저는 암벽을 올라보고 싶어요. 어서 가요!"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사실 아이와 산을 올라보면 알게 된다. 부모는 자신들의 몸만 챙기면 된다. 아이들은 산다람쥐가 되어 거침없이 오른다. 특히, 고된 몸 쓰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양육을 받으며 자란 삼 남매들이라 그런지 매번 산을 오르면 아이들은 엄마의 거친 호흡을 걱정할 뿐 즐기며 놀며 산을 탄다.
아이가 가자고 하니 나는 내 몸만 잘 책임지자는 생각에 같이 오르기로 했다. 시온이가 앞서고 내가 뒤를 따르며 위험한 곳을 지날 때면 "정신을 집중해야 해! 손과 발 모두 마음을 모아서 집중!" 줄곧 정신집중을 외치며 차분히 걸음걸음을 옮겼다.
산을 바라보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산속에 있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뭔가 모를 동류애를 느끼게 된다.
암벽을 타고 오르는 것이 더 힘이 든 이유는 하나였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두려움. 실족하면 어쩌나 하는 그럴 리 없는 공상을 사실처럼 느끼는 두려움이 문제였다. 어쩌다 용기를 내서 뒤를 보면 펼쳐지는 비 온 다음 날 깨끗한 날씨로 펼쳐지는 경치는 가슴을 시원케 할만했지만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순간에 압도되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모두 두려움이 때문이다.
중간쯤 올라 큰 돌바위 위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간식을 나누고 계셨다. 시온이와 나도 잠시 앉아서 싸운 김밥을 먹고 오르기로 했다. 엄마와 어린 아들이 조촐하게 앉아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시더니 먼저 와서 거한 나눔을 하시던 분들이 우리를 챙겨 주시기 시작했다. 방물토마토와 참외 하나, 맛난 시루떡까지 그야말로 풍성한 간식들이 시온이와 나 사이에 차려졌다. 김밥을 다 먹더니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온이는 챙겨 온 작은 초콜릿 3개 중 두 개를 꺼내 일행들에게 향했다.
"저는 갖고 있는 것이 초콜릿이에요. 이거 좀 드셔 보세요."
이 아이는 참 넉살도 좋다. 넘치도록 풍요로워 보이는 그분들께 자신이 가진 것의 작은 것들 중의 대부분을 드리기로 한 것이다. 엄마인 나도 생각하지 못한 멋진 행동이었다. 그 모습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해석한다면 이 아이는 풍요에 마음이 작아지지도 않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더 많이 상대에게 나누어 주면서 받은 것에 보응하는 당당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일행들은 시온이가 건네는 작은 초콜릿을 즐겁게 감사의 인사로 화답하며 받으셨고, 그분들도 갖고 있었던 다른 종류의 초콜릿까지 하나 더 받아왔다. 아이는 이번에도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하고 받아와서는 가방에 챙겨 넣어둔다. 아마도 나중을 위한 비상식량쯤 되었나 보다.
나와 시온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한 분이 축복의 인사를 건네셨다.
"정말 좋은 일들이 가득하실 거예요!"
나도 감사와 축복의 인사로 화답하며 자리를 털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산은 정상에 가까울수록 힘들어지는 법! 인생도 그렇다. 정말 힘들어서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을 지난다는 건 곧 그 고난이 끝나간다는 의미일 때가 있다.
이전보다 더 가팔라진 느낌이었다. 힘차게 앞서 가고 있는 시온이를 향해 주의를 줬다.
"정신집중!"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순간 마음을 다해 집중하면 답이 생긴다는 교훈 밖에 줄 것이 없다.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은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무사히 정상에 올랐고 불암산 정상에서 이번에는 남편이 아닌 막내아들 시온이와 인증샷을 찍었다. 정상에 가 보니 산을 오르며 만났던 중년의 부부가 우리를 반기며 어린 시온이를 대견해하며 먼저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청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귀한 사진을 얻었다.
내려올 때는 암벽이 아닌 산길을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발걸음에 여유가 좀 생기니 시온이는 이 멋진 등산의 경험을 형과 누나와 아빠도 꼭 알아야 한다며 다음에 꼭 다시 올 거라며 다짐을 했다.
'꼭 그러렴! 그땐 엄마는 빠지고 싶어!'
혼자 생각을 했는지 나도 모르게 뱉어버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아들의 오전 등반은 무사히 끝났고 평온한 토요일을 잊지 못할 추억의 하루로 눈부시게 만들어주었다. 시온이는 힘든 모든 시간들을 스스로 책임졌고 자신이 챙기고 간 가방마저 나에게 맡기지도 나 역시 맡아줄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 시온이는 눈부신 추억은 첫 암벽을 탄 경험이었을 테고, 엄마인 나에게 눈부신 추억이 된 건 대견한 아들과 함께한 것 때문! 모두 시온이 덕분이다! 우리는 같이 있어도 서로 다른 경험을 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