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기 2. 김만덕이 올랐을 사라봉에서

멋진 광경을 보려면 힘들게 오르는 노력이 있어야 해

by 자유인

제주행 비행기는 새벽 6시 15분이었다. 대구에서 제주로 향하는 첫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주어진 1박 2일의 여정을 알차게, 아주 지독하게 보내겠다는 엄마인 나의 야무진 다짐 같은 것이었다. 첫날의 일정은 제주공항에서 머지않은 올레 18코스를 걷는 것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가 내려준 곳은 동문시장 근처였다. 8시도 되지 않아 오후가 되면 관광객으로 번화할 시장통은 한적했다. 혼자 세운 계획으로는 오늘 저녁은 이곳에 와서 저녁을 해결할까 했는데 아마도 아이들이 내켜하지 않아 일정이 변경될 것 같았다. 그 정도는 충분히 수락할 생각이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18코스 시작점까지만도 900미터 이상을 걸어야 했다. 나는 요즘 점점 노안이 심해져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는 것도 조금씩 귀찮아진 40대 후반이다. 해서 첫째에게 시작지점을 켜놓은 폰을 건네며 길 안내를 맡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설렘에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벼운 듯 보였다. 공항에서 기다리며 평소에 쉽게 사주지 않았던 컵라면을 새벽부터 사준 넉넉한 엄마를 보며 오늘 우리 엄마가 우리를 너그럽게 수용해 줄 것이라 기대했을는지도 모르겠다.


18코스는 건입동에서 시작되는데 사라봉이라는 아름다운 동산을 만나게 된다. 사라봉 초입에 들어설 때만 해도 첫째와 둘째는 책에서 읽은 거상 김만덕에 대한 자잘한 일화들을 소개하며 이야기꾼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첫째에게서 먼저 빨간 불이 켜졌다.


"아! 너무 습해요!"

"계단이 너무 많아요!"


거상 김만덕의 얼이 살아 숨 신다는 건입동의 안내도를 따라 사라봉을 오르려던 차였다. 얼핏 보기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아침 운동길로 보이는데 열 다섯 딸아이는 헉헉 거리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볼멘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속에서는 전열을 가다듬게 된다.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앞서 힘차게 걷고 있는 두 아들 녀석들의 속도에 맞춰 습하고 땀이 나도 열심히 걷기로 했다.

.trashed-1757683398-20250812_090940.jpg


계속될 것만 같은 오르막 길이 끝이 나자 평온한 평지가 나왔다. 마침내 옆에서 손을 잡고 걷던 막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높은 산에 올라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오르막이 지나면 능선을 따라 평지를 만나게 돼.

우리가 산을 오르며 힘이 든다는 건 곧 높은 곳에 올라 장관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야. 기대해 봐!!"

열 살짜리 수다쟁이 막내는 통틀어 10년 자기 인생 경험을 탈탈 털어서라도 자기 경험을 이야기한다.

"맞아요. 우리가 성암산에 올라가면 꼭대기에서 멀리까지 다 볼 수 있잖아요."

"그랬지. 꼭대기에 오르면 멀리까지 볼 수 있어. 오르고 난 기쁨이 그런 거지!

그 멋진 광경을 보려면 힘들게 오르는 노력이 있어야 해."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며, 고된 과정을 거쳐야 다디단 열매 하나를 입속에 머금을 수 있다는 것.

열 살짜리 막내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투덜대던 첫째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역시 엄마 말씀은 틀린 적이 없어!"

"엄마가 조심해라 다친다 해서 그냥 내달리면 꼭 다쳐! 조심해야 해!"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한 이야기다. 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절정에 이르면 반드시 주의를 준다. 그 순간을 지나면 다음 순서는 다치거나 싸우거나 무슨 일이 생긴다. 아마도 자기 통제가 부족한 아이들이다 보니 경계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즐거움에 빠져 있을 때라도 엄마는 지켜야 할 경계선을 그어주고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항상 100%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경계지점에서 훈육과 훈계를 하는 것은 아이들의 조망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확실하다. 부모의 눈을 피해 경계를 슬쩍 넘어가더라도 어느 지점에서는 스스로 만나게 되는 어떤 의미심장한 시그널을 대할 때 엄마의 메시지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나의 엄마와 딸이었던 나 사이에서 있었던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50816_182919580.jpg 푸른 초장을 보면 폴짝 뛰어보고 싶은 엄마와 함께해 준 딸


위로 오르는 가쁜 길을 지나자 역시나 장관을 만날 수 있었다. 푸르른 풀밭이 펼쳐져 있었고 눈앞에서는 넓은 바다가 엄마와 세 자녀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듯했다. 이제는 뛰어봐야 할 시간이다. 우리가 얼마나 기쁜 지 우리의 마음을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을지라도, 심지어 지금의 마음이 어떤 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몸으로 먼저 표현해 보는 건 마냥 행복한 일이다.


사춘기 큰 딸은 하자고 한다고 모두 수락하지 않는 발단단계를 특권을 행사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의껏 임해주었다. 나는 잊지 않고 딸에게도 한 마디 건넸다.

"이것 봐! 힘들었지만 멋있지?"

엄마인 나는 언제부턴가 대답을 기대하면 말하지 않는다. 부디 잘 듣기라도 해 주기를 바랄 뿐.

"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다 힘에 부칠 때 나를 위로하며 되새김질하는 말이 있다.

'그래!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것과 다름없다.

주었던 물이 죄다 빠져나오는 듯해도 자고 나면 자라 있는 콩나물처럼

나는 열심히 물을 줄테다. 아무 성과 없어 보여도 아이들은 자란다.'


거상이자 가난한 자를 생각한 착한 마음을 가졌던, 왕의 얼굴을 대면했다는 최초의 여성 김만덕은 어떤 생각으로 그녀의 삶을 살았을까? 아이들과 길을 떠난 엄마인 나는 내 삶의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가득이었던 듯하다.













이전 11화제주도 여행기 1. 나는 지독한 엄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