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현실이 된다. 사회복지학과에는 사회복지사 국가자격증 취득을 위한 법정 과목으로 사회복지현장실습이 있고, 학생들은 학제에 따라 빠르면 2학년, 대체로 3학년이 되면 실습지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현타가 맞이하는 것이 꽤 이른 편이다.
뭘 먹고 사느냐는 광활한 질문이다. 포부가 크고 긍정적이라면 전공을 기반으로 한 직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니 사회복지기관에 취업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사가 되란 법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의정활동(정치)을 하며 사회복지학에서 배운 원칙들을 근간으로 입지를 다질 수도 있고, 사업가적 마인드로 혁신적인 복지서비스 제공자가 되는 꿈을 가져볼 수도 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교수님, 제가 최근에 사회서비스원이 좋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처음에는 진지한 학생의 질문에 이런저런 객관적인 정보들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찾아왔다.
"교수님 공무원과 사회복지사 중에 뭐가 낫다고 생각하세요?"
또 한 두 달이 지나 지나가듯 가볍게 질문해왔다.
"복지재단이 급여가 좋다던데 이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일단 어떤 질문이든 받으면 궁금해하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성의껏 답을 해준다. 이 친구의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해 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는 나도 넌지시 질문과 조언을 했다.
"너는 좋아하는 게 뭐니? 취업해서 이런 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드는 무언가가 있니?"
그 학생의 답인즉슨
"아! 그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취업준비를 할 때 직장의 근무환경, 급여와 복리후생, 심지어 통근시간 등등 모두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취업희망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취업전략에 있어 중요하다. 그러나 모래 위에 성을 쌓을 수 없듯, 자기에 대한 인식 없이는 그 어떤 중요해 보이는 것들도 부수적인 것들일 뿐이다. 근무여건이 아무리 좋아도 막상 일하면서 만나는 복병들을 가볍게 걷어차며 지내기 쉽지 않다. 위험요인이 지뢰발처럼 깔려 있는 직장생활에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별 탈 없이 살아낸다는 건 정말이지 녹록지 않다.
그래서 외부요인보다는 나라는 내부 요인을 먼저 집중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요즘 신입생이 되면 온 갖가지 심리검사를 한다. 우리 집 초등학생들도 MBTI, 스트롱 검사쯤은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 대학생들에게는 여러 심리검사와 결과지에 대한 경험은 넘치도록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뭐가 좋으니?"라는 질문에 무엇이 좋고 왜 그런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답을 찾지 못한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질문인데 말이다.
다시, 내게 세 번 찾아왔던 학생의 예로 돌아가서 그 질문들을 살펴보자. 사회서비스원, 공무원, 복지재단, 사회복지기관 이곳들의 주요 특성을 설명할 순 있지만 그 학생에게 그 어떤 장왕한 설명도 개운한 답은 아니었을 테다.
세 번에 걸친 그 친구의 질문을 종합하면 교수인 내게 했던 질문의 의미는 이것이다.
"제가 남들 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취업준비를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요?"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남들 보기에' 좋은 직장을 왜 고려해야 하나?내가 다닐 곳인데 내가 좋아야지 남의 시선이 왜 중요하냐 말이다. 그래 좋다.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 엄친아, 엄친딸이 되고 싶은 바램이 있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 틀에서 속히 벗어나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다. 남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부모에게도 자식 자랑이 주는 기쁨은 잠시다. 넉넉히 100번을 했다면 넘치도록 많고 더 이상 들어줄 사람도 없을 게다. 혹시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을 드릴까 걱정이라면 답은 간단하다. 그런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부모 목소리와 기대에서 벗어나야 성숙해진다. 그 틀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만약, 이 결정이 어렵다면 병아리가 될지 삶은 계란이 될지 선택하길 바란다. 병아리가 되어야 닭도 되어 보고 꼬끼오~ 크게 울어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둘째, '좋은' 것에 대한 판단은 자기 몫이지 남이 할 수 없다. 이건 누구도 단 번에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적성, 성격, 역량, 가치관, 경험의 내용 등 너무 많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가설이라도 세워볼 수 있다. 20년 이상 '나'로 살았는데도 '나'를 고려하여 '좋은' 것을 떠올릴 수 없다면 여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친구들과 점심 뭐 먹을지, 어느 카페에서 만날지 등등 일상의 소소한 결정들에 주도권을 갖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떨 때는 좋을 수도 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행착오에 책임지는 경험이 축적되면 오류가 줄고 그다음에는 괄목할 창의적인 선택과 도전까지 가능해진다. 나의 작은 생각, 행동에 시간이 바람처럼 개입해서 우주까지 연결되게 한다. 그래서 바로 우리들, 각자는 세상과 우주의 중심이 되어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