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아무나 되니?

이것부터 알자.

by 자유인

몇 해 전 3월 첫 주, 신입생들을 수업에서 처음 만나는 시간이었다. 꼰대 교수인 나는 학생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대뜸 꿈에 대한 질문을 꺼내 놓았다. 전공 교수의 수업이다 보니 눈치껏 답하는 친구는 '사회복지사'라고도 했지만, 한 친구가 '건물주'가 꿈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어린아이들도 건물주를 꿈꾼다며, 꿈 많을 나이에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세상의 단면이 걱정스레 회자되던 때였다. 실제로 건물주가 꿈인 친구를 만났으니 기회다 싶어 이유와 방법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물어보았다.


# 이유는 자유에 있었다. 누구에게도 이래라저래라 구속받지 않는 상황을 원한다고 했다. 늦게 일어나도 되고,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방법은 부모님은 안될 것 같은데, 조부모님께 혹시 물려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백수 건물주가 꿈인 것은 인간의 삶에 중요한 '돈'과 '시간', '자유'에 관한 열망의 다른 표현이다. 코로나 상황을 지나며 사람들이 주식, 코인, 부동산 등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컸다. 소액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코인과 주식에 투자하는 대학생들도 꽤 많았다. 서넛이 모여 누군가는 투자 방법을 전수하고, 다른 친구들은 그걸 경청하는 진지한 모습을 캠퍼스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의 이 모습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직장인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근무시간에도 틈틈이 주식시황을 모니터링하고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모여 앉은 식당에는 저마다 투자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은 열망은 대한민국 전 국민의 꿈이 되었으니, 대학생이라고 그 꿈을 갖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존중한다.


이제,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정말 '나 때'를 이야기하는 진짜 꼰대가 되어보려고 한다.



1.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2003년 석사학위 졸업을 앞두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사회복지사로 받은 첫 월급은 90만 원도 되지 않았다. 수습기간이라 월급이 작기도 했지만 3개월 수습 이후 받은 금액도 고작 120만 원이었다. 당시 연봉이 꽤나 높다고 하는 금융권에 취업한 절친의 초봉과 비교했을 때 절반 수준이었고, 석사과정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 원이 넘었으니 교육 투자금을 생각했을 때도 급여는 낮아도 너무 낮았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전공을 선택한 나의 선택은 되돌릴 수 없고, 나의 선택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덜 벌기 때문에 덜 쓰는 것! 어렸을 때부터 저축의 재미를 알고 있었던 터라 돈을 아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직장생활을 하면 뭔가 더 많은 선택권을 갖게 될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한창 멋 부리기 좋아했던 20대였지만 나름의 소비 통제 방법을 찾아갔다. 쓰는 것을 통제하는 경험은 욕망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하고, 우선순위를 가려내고 선택하는 법과 가볍게 포기하는 법도 배우게 한다. 이것은 결국 자기 통제 능력과 연결되어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을 갖고 나면 백수 건물주가 갖고 있을 것 같은 자유가 더 이상 대단해 보이지 않고, 갖고 싶어지지도 않는다. 물론 건물주 백수가 한가로울 거라는 건 부러운 자들의 억측일 뿐이겠지만.


전공 수업 시간에는 이런 돈 이야기를 학생들과 자유롭게 하지 못하지만, 지도학생들 중에는 내가 '당장 저축, 소비 통제'를 강조한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 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나중에 내 것이 될 많은 돈을 상상하며 그 돈을 관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 시작은 '자기'를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2. 돈은 합리적인 선택에 동조한다.


돈에도 눈이 달려 있다. 사실 이 말은 오래전 택시 기사님이 내게 하셨던 말씀이다. 당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어였는데,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라디오 방송에서 그 말이 나왔다. 작은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정말 부자가 되고 싶네요."라고 말을 했는데, 기사님께서 "아가씨, 부자 되고 싶으세요? 지폐 꺼내 보세요. 돈에 눈 달렸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곧 하차 해야 할 때가 되어 더 대화를 할 수도 없었지만, 그후로는 눈 달린 돈을 보고 있자니 더 갑갑해졌다.


당시 나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낮은 급여를 모두 집안의 생활비로 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돈이 없으면 당장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는 불편은 그래도 견딜 수 있다. 그 보다 괴로운 것은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것이다. 공부가 좋아서 유학도 가고 싶었는데, 돈 때문에 유학을 접고 사회복지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었다. 아껴 쓰는 결단과 실천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유학 자금을 모으겠다는 계획이 있었기에 꾸준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직장 생활 1년이 지나고 통장 잔고를 봤을 때 잔액이 없었다. 내가 번 돈이 내 꿈을 돕지 않는 것은 돈의 관점에서 무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당찬 결심으로 가족의 생계비를 대지 않기로 했다. 언뜻 보기에는 냉정한 선택이다. 돈은 냉정해 보이지만 합리적 결정을 유도한다.


자,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비단 돈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종종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을 만나곤 한다. 가족 안에서 구세주 혹은 희생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픈 엄마와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당장 자퇴를 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벌어야 한다거나,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와상의 치매 조부모를 혼자서 돌봐야 한다는 친구 등. 이들에게 원하는 삶에 대해 묻고 함께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자고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가급적 빨리 자신이 구세주도 희생자도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가족도 건강해지고 돈도 벌 수 있다. 돈은 어찌 보면 비정하지만 건강한 선택에만 동조한다. 돈의 판단력은 우리보다 뛰어날 때가 있다. 스스로 유유히 흘러가고 싶은 곳으로만 간다. 내가 아무리 멋들어진 꿈을 꾸어도 건강하지 않은 선(善)은 돕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경우도 가족의 생계비를 대지 않자 어려움을 나눠 짊어지고 더 좋은 결과로 귀결되었다.



3. 돈과 시간이라는 두 변수는 인생의 격을 다르게 만든다.


돈도 시간도 숫자로 셈이 가능하다. 숫자는 가치로 쉽게 환산되지만 모두에게 같은 가치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1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며 3시간처럼 활용하는 사람과 1시간을 3분처럼 쉽게 여기는 사람이 만드는 인생의 성과는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가늠이 된다. 돈도 마찬가지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소중하게 투자하는 사람과 쉽게 소비하는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다를 지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징적인 것이 '시간 변수'를 함께 고려한다. 어떨 때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돈을 더 쓰기도 하고, 어떨 때는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시간과 돈은 이렇게 서로 엮여서 작동한다. 시간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많은 돈을 다룰 자격이 없다. 반대로 돈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 역시 시간의 가치를 몰라서 인생을 아름답게 꽃 피우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과 돈은 서로 협력하며 우리를 돕는다. 그 원리를 기억하며 우리도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과 돈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안다면 '나를 위한 자유'에 '세상을 향한 가치'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제자들이 백수 건물주가 되고 싶다면 먼저 이 세 가지에 유념하길 바란다.



사진: Pexels에서 billion dollars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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