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은 3.0이면 충분해

나머지 에너지는 자기를 알아가는 데 투자할 것!

by 자유인

학기 초가 되면 지도학생들을 중점적으로 상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물어보는 게 있다. 바로, 이번 학기 목표 학점이다. 내가 이걸 질문하는 것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훈계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성취하는 경험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머릿속에 숫자가 들어가면 그것도 지도교수님과 나눈 대화 속에서 설정한 목표 숫자라면 조금 더 강하게 뇌리에 박히기 않을까 싶어서 건네는 애정 어린 질문이다.


실제로 학생들의 목표 학점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코로나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절대평가를 진행한 학기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상대평가이고 서열을 매기는 것이 학점 부여의 기본이다. 1학년들은 주로 3점대 정도 선에서 답하는 것 같다. 공부도 공부지만 놀기도 해야 하니까 노는 데 쏟을 열정 값을 살짝 제한 정도의 수준 같다. 3점 후반대의 친구들은 기를 써서 4점대 학점을 받아 보고 싶다고 하고, 4점대가 훌쩍 넘는 친구들은 그저 모든 과목 A+가 목표인 것 같다. 다들 훌륭하다.


학생들이 학점이 어느 정도라야 좋은 것인지 막연하게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막연한 질문이지만 나의 답은 늘 일관된다. 평균 3.0점 정도. 누구에게든 달성 가능해서 포기하지 않게 하고, 이미 잘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자신감을 가져볼 만한 점수다.


학점 3.0을 위한 조건들


교수의 입장에서 3.0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해 보겠다. 이 점수는 지각 결석 없이 철저하게 출결 관리하고, 정해진 기한에 맞추어 과제 제출하고, 어느 정도만 공부해도 받을 수 있는 학점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하면 대학 공부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단 나의 전공인 사회복지학을 예로 들면, 신입생이 되고 1년은 전공 용어를 익히는 데도 정신이 없다. 교수님들의 수업 내용은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하셔도 기본적으로 우주언어의 나열로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길게는 수십 년간 전공 분야에서 학문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그분들에게도 익숙한 언어라는 것이 있다. 거기다 해외파 교수님들은 정확한 용어의 설명을 위해 친절한 설명을 위해 영어를 사용하시기도 한다. 배려가 배려가 아닌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1학기, 그 밖의 학생들은 2학기는 전공 수업을 두들겨 맞듯 들어야 전공 용어들에 익숙해진다. 학점 3점을 받기 위한 기본적인 학습은 딱 여기까지다.


학점 3.0점을 위한 다른 조건들이 의미하는 것은 성실성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는 의외의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학점과 관련해서는 이러저러한 피치 못할 이유로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다. 나는 학기 초에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출결점수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상대평가에서 A학점(4.0점) 이상의 비율이 정해져 있어서 시험 점수에서 동점인 두 학생이 그 비율에 걸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출결점수가 중요하게 작동해서 학점의 그레이드가 확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교수님들도 대학에서 규정으로 정해 놓은 출석 인정의 조건들을 제외하고는 공정성을 위해서 출결이라는 가장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수업에 잘 출석하는데, 낙제점을 받는다? 사실 매우 특수한 상황이다. 나의 경우에는 대학교수로 첫 부임한 대학에서 이런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의 경우는 학습이 어려운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였다. 학생과의 상담조차 되지 않아서 부모 상담을 통해 이 학생을 지도했는데, 주변 학생들도 이 학생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수강생들과 합의하여 별도의 과제와 시험을 통해 무사히 졸업을 하도록 지원한 경험이 있다. 이런 특수한 예를 제외하면 수업에 잘 출석하는 것은 적어도 낙제점은 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하는 게 하나 더 있긴 하다. 과목의 특성이 나의 기본 학습능력과 맞지 않는 경우라면 이 역시 출석만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하필이면 그 과목이 졸업 이수를 위한 필수 이수 교과목이라면 이때부터는 추가적인 노력을 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스터디 그룹을 만들거나 공부 잘하는 선배를 찾아가 교수님의 특성은 물론 중요한 강의 내용에 대한 팁을 구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노트와 교과서는 남다르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노력을 한다면 사실 3.0점이 아니라 누구든 4점대의 학점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4점대의 학점이 대학생활의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한 학기쯤 추억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도전해 본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할 정도로 나는 학점에 있어서는 관대한 편이다.


학점은 3.0점. 남는 에너지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데 집중해야 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대학생활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일 때 그들의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혹은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

신입생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술을 먹을까?

학업에 충실하지 않아도 신나는 대학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대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미 나도 꼰대 지도교수일 뿐이기에 완벽하게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긴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노력에 근거해서 이해하자면 이렇다. 대입의 과정이 상당히 폭력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점수로 서열화된 대학과 그에 맞춰 자신의 모든 본성을 거스르고 틀 속에 자신을 가두어야 한다는 세상의 요구 앞에서 복잡한 심경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 사이 자신에 대한 잡다한 고민과 안전지대에서의 방황의 기회마저 갖지 못했다.


그 후,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 대학생활에서 그 친구들은 무엇을 원할까? 그들의 욕구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양하겠지만 일축하자면 '폭력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누리는 해방감은 치유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해방감과 자유를 누리다 보면 어느새 생각의 방향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어떤 곳'을 향하게 된다. 진로계획, 직업계획, 밥벌이, 자기 계발 등 표현은 다르지만 '자기 생존'을 위한 고민으로 구체화된다.


내가 학점 3.0점이면 충분하다고 여유롭고 넉넉하게 학생들을 바라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자기 생존을 위한 지난한 고민의 과정과 열매를 거두는 일에 더 많은 열정을 썼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자기 생존'이라는 표현의 어감은 너무 온정 없이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좀 더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즐겁게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는 의미이다. 이건 정말 난제다. 누구에게도 쉬운 질문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생활에 이 고민이 시작되어야 하고 얼마나 진척시키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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