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어묵탕과 소주

by Hye Jang


100점 만점에

각각

97점.

96점.

94점.


나는 단 1점 차이로

3라운드에 진출한다.


브레드 볼을 직접 만든 것,
동부 스타일의 클램 차우더를 서부식으로 재해석한 것,
그리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더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고 했다.


발표를 듣는 순간,
긴장이 한 번에 풀리고,
다리에 힘도 빠지는 것 같다.


두 명의 탈락자가 퇴장하고,

촬영팀이 다시 다가와 인터뷰를 한다.


"소감이 어떠세요?

다음 라운드에서는

드디어 참가하신 셰프님들도

만나게 될 텐데,

기분이 어떠세요?"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기쁘다”,

“궁금하다” 그 정도였을 것이다.


아침에 방송국에 왔던 것처럼,
들고 왔던 가방을 다시 챙긴다.
방송국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머릿속은 멈추지 않는다.

다음 라운드에서는 무엇을 만들까.
어떤 재료가 좋을까.
어떤 전략이 통할까.

생각이 빙글빙글 돈다.


창문을 조금 내린다.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아침에 나왔는데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 혼자 계신다.


어머니는 아마 한 달에 두 번 있는
‘아줌마들 티 타임’에 가셨을 것이다.


“일은 잘 봤어?”


“네, 아버지.”


“네가 언제 올지 몰라,

엄마가 저녁은 준비해 두고 나갔는데…
우리 나가서 한잔 할까?”


씻고 싶기도 하고,
밥이고 뭐고 그냥 자고 싶기도 하지만,

침대에 누워도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네, 아버지.”


“그래, 그럼 준비하고 나와.
나는 부엌 좀 정리할게.

밥은 안 먹어도 되는데
네 엄마 안 치워 놓으면 화 낼 거야.”


나는 아버지와 함께 반찬들을 정리하고,

오늘 들고나간 물건들도 정리한다.

아이스박스는 비어 있고,
검은 가방에는 가져갔던 도구와 재료들이 그대로 있다.

오늘 하루의 흔적 같다.


“오늘은 뭘 먹을까?”


아버지는
나와 나가는 날은

식당과 메뉴를 신중하게 고르신다.


그리고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오면 같이 와 보려고 했던 곳이다.”


아버지는 나와의 이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시는 것 같다.


오늘은 어묵탕에 소주다.


하루 종일 버터와 기름,
서양 음식 향 속에 있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탕을 보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넘긴다.

짜릿하다.
뻥 뚫리는 기분이다.


“아버지, 오늘은 소주가 참 달고 맛있어요.”


“허허. 그래?
오늘은 어떤 날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나 보구나.”


아버지 말씀이 맞다.

이 요리 경연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치열했을까.


단순히 대회라서,

경쟁이라서,
최고가 되고 싶어서

아마도 이런 이유들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짜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요리에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에 대한
나 스스로의 평가였을 것이다.


심사위원 점수보다
내가 나에게 매기는 점수.

나는 나에게 자랑스럽고 싶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당당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래, 오늘은 어땠어?

재미있었어?”


아버지는 늘 그 질문을 하신다.


나는 초등학교만 한국에서 졸업하고

미국으로 갔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요리학교,

그리고 직장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거의 18년이 걸렸다.


일주일에 두어 번 전화 하셨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물으셨다.

“재미있었니?

오늘은 뭐 재미난 일은 없었어?”


힘들었다고 말해도,
어려웠다고 말해도,

마지막에
“그래도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됐다.”


갑자기 요리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왜?”라고 물으셨다.


나는 말했다.
“요리가 재미있어요.”


아버지는
“그래, 그럼 한번 해봐라.”라고 하셨다.


학비 때문에 기둥이 뽑혀 나갈 만큼 부담이 되었을 텐데,
내가 재미있다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분이다.


오늘도 역시
아버지는 물으신다.

“재미있었니?”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목욕탕에 가고,
술 한잔 기울이는 게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늘 미국에 있었고,

아버지와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버지와 함께 가는 목욕탕과
한 달에 두어 번 함께하는 술자리가
나는 참 좋다.


이상하게도 아버지 앞에서는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수다쟁이가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에게 말한다.


점수도,

긴장도,

만점도

다리에 힘이 풀린 순간도.


“우리 아들, 오늘 엄청 재미있었네."

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오늘 하루를 모두 보상받을 만큼 위안이 된다.





3라운드까지 진출하게 된 송원

그는 어떤 요리를 선보일까요?

그는 어느 라운드까지 살아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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