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k chop with apple & cider.
드디어 컴피티션 날이다.
작가님과 박 피디의 말이 계속 맴돈다.
오늘 떨어지면, 방송국에 가는 날도,
오늘이 첫날이자 마지막이 된다.
며칠 전, 방송국에서
카드 한 장과
내 이니셜이 새겨진 아이스박스,
그리고 가방 하나를 보내왔다.
카드에는 재료 지원비가 들어 있었다.
만들고 싶은 음식의 주요 식재료나
특별히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
아이스박스에 담고,
필요한 장비와 도구는 가방에 챙겨 오라는 안내였다.
기본 재료와 기본 도구는 이미 준비되어 있고,
목록도 함께 보내왔다.
이른 아침.
방송국에서 보내준 택시에 올라,
가방을 들고 이동한다.
도착하자마자 스태프 두 명과 촬영팀 한 명이 나와 가방을 들어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눈가리개를 해도 괜찮으실까요?”
요리 대결 프로그램이 아니라,
마치 첩보 영화를 찍는 기분이다.
안대를 한 채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향한다.
내가 가져온 가방 두 개는
조리대에 미리 세팅해 두겠다고 한다.
대기실에는 아침 도시락과 간단한 간식,
그리고 오늘 일정표가 놓여 있다.
집에서 간단히 먹고 온 터라 음식 대신,
그동안 적어둔 요리 일지를 꺼내 본다.
오늘 내가 만들어낼 음식의 순서와 불의 세기,
타이밍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려도 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나를 안내했던 두 명의 스태프가 들어와 말한다.
“10분 후 시작합니다. 준비해 주세요.”
다시 안대를 쓴다.
어디를 걷고 있는지,
누가 옆에 있는지 모른 채 발걸음을 옮긴다.
멈춰 선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또렷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른다.
“오늘 드디어 요리 대결이 시작됩니다.
세계 각국의 음식을 요리하는
한국 셰프님들의 열정과 도전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곳의 진행을 맡은 서영원입니다.
이 대결은 철저한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심사위원과 참가자 모두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진행자는 간단하게 설명을 이어 나간다.
프랑스, 이탈리아, 중화, 일식, 멕시코·미국, 한국 요리.
각 섹션마다 일곱 명.
첫 번째 라운드에서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로 대결을 한다.
5명의 심사위원들은 10점 만점의 점수를 각각 누르고,
합산이 가장 높은 최상위 세명,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은 탈락한다.
요리 시간은 단 100분.
“셰프님들, 안대를 벗어 주세요.”
앞과 양옆에는 칸막이가 서 있고,
조리대가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다.
조리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넓고 단단한 공간.
천장은 높고 환기 시설이 잘 되어 보인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카메라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인다.
옆에는 누가 서 있을까.
앞에는 어떤 사람이 칼을 쥐고 있을까.
궁금하다.
“5분 후, 종과 함께 시작됩니다.”
가림막 위 전자시계에 100:00이 떠 있다.
음악이 흐르고,
종이 울린다.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국 대표 음식.
사실 한정적일 수도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도 하고,
이것저것 만들어서 먹어 보기도 했다.
전형적인 미국 음식으로 갈 것인가,
이민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할 것인가,
남부 요리인가,
치킨인가,
가정식인가.
결국 선택한 것은
Pork chop with apple and cider.
미국 농업의 상징 같은 요리.
뉴잉글랜드와 중서부의 가정식이면서,
버터와 산미의 균형을 살리면
파인 다이닝의 결도 낼 수 있는 음식이다.
내 전문성은 파인 다이닝이다.
그 교차점에 서고 싶다.
돼지고기와 사과는 한국에서 맛도 좋다.
나는 뼈 없는 등심 부위를 골랐다.
지방은 과하지 않게.
버터는 내가 늘 쓰던 무염버터, 유지방 82%.
애플 사이더는 단맛이 적고 탁하면서 과육의 향이 살아 있는 것.
외국 마트를 몇 군데나 돌아 겨우 구했다.
사과는 한국 후지 사과.
그리고 엄마가 기르고 있는
타임과 로즈메리를 조금 뜯어왔다.
승부는 굽기였다.
포크찹의 굽기.
나는 그 온도와, 식감
그리고 타이밍에 집중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여기저기서 벨 소리가 들리고, 카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100분.
나는 1분을 남기고 요리를 완성한다.
벨을 누른다.
늘 하던 요리였고,
여러 번 다르게 시도하며 했던 요리다.
하지만 시간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경쟁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손도 얼굴도 땀으로 젖어 있다.
풀 마라톤을 뛰면 이런 기분일까.
몸은 땀으로 축축하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결승선을 막 끊은 것처럼 후련하고 기분이 좋다.
안대를 다시 착용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스태프가 대기실로 안내한다.
“30분 정도 휴식 시간입니다.”
대기실에는 음료와 간식이 가득 놓여 있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한 컵 단숨에 들이켠다.
땀 냄새,
갈증,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최고다.
순간 박 피디가 사람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준비했는지,
조리대부터, 진행, 대기실, 그리고 때마다 준비한 간식들까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큰 모니터 앞에서 지켜보고 있을까?
아니면 이 넓은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을까?
다음 화는
요리 대결 결과가 공개됩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하지만 문득문득 서로를 떠올리는
박서우와 송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구독하고 함께 하세요.
#SoulFood #요리와사랑 #연재소설 #감성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