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감자탕에 소주 한 병

by Hye Jang


또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두꺼운 코트를 입고 공항에서 내렸는데,

지금은 얇은 잠바 하나 입을 정도로 따뜻하다.


그동안 나는 오랜만에

조용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함께 꽤 규모가 큰 재래시장을 다니며,

각종 음식 재료들을 사고,
여러 음식들도 담갔다.


요리를 했다 보다는

‘담갔다’는 말이 맞다.


각종 장아찌를 담그고,

장을 담그고,

김치를 만들었다.


요리사가 와서 그런 건지,
힘쓸 아들이 와서 그런 건지,
엄마는 유독 나에게 힘쓰는 일을 시키셨다.


“엄마, 저 음식으로 아트 하는 사람이에요.”

말해 봤지만
엄마는 고춧가루를 저으라 하고,
무를 썰라 하고,
배추를 버무리라 하셨다


엄마의 주방 보조로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엄마와 집 근처의 공원에 나가 운동을 했다.

엄마의 체력이 나보다 더 좋으신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버지와 외출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거나,

치킨에 맥주를 먹었다.


엄마가 등짝을 내리치며
“일어나, 밥 먹어야지”
하기 전까지 늘어져 자기도 했고,

늦은 밤까지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를 보기도 했다.


가끔씩 서우와 이메일을 주고받았지만,
대부분 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문득
경연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을 가거나, 서점에 들르기도 했다.


요리책을 펼치고,

요리에 대해 생각하면
어김없이 지나가 떠올랐다.


지나라면 어떤 맛을 냈을까.
지나라면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지나라면 어떻게 플레이팅을 했을까.


그런 생각 속에서
나는 책을 덮고 잠시 숨을 쉬었다.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겨우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기대를 거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가망 없는 희망일 것이다.




오늘은 도서관으로 향한다.

빌려온 책도 반납해야 하고

경연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분주하다.


노트에 요리 일지를 쓴다.

생각나는 요리.
만들고 싶은 요리.
만들었던 요리.

들을 열심히 적고 나니,

도서관 창으로 노을이 지는

주황색 하늘이 보인다.


그때,
이메일 알림이 뜬다.


서우다.


셰프님. 안녕하세요. 오늘 오랜만에 일찍 끝났는데,

저녁 식사 같이 하실래요?

오늘은 제가 사드리고 싶어요.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해요.

오늘 일찍 끝날 줄 몰랐어요.
바쁘시거나 일정이 있으시면 거절하셔도 돼요.


나는 바로 답장을 보낸다.


좋습니다. 마침 방송국 근처 도서관에 있어요.
어디서 뵐까요?
아, 저 휴대폰 로밍 했어요.
000-000-0000
여기로 연락 주세요.


서우와 나는

그녀가 두 번째로 좋아한다는

감자탕집으로 향한다.


“왜 두 번째예요?”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 있는데, 여기서 좀 멀어요.
방송국이랑 셰프님 계셨던 곳

중간 지점을 찾다 보니 여기더라고요.
그래도 두 번째로 좋아하는 식당에 와서 다행이예요.”


음식이 나오기 전,

나는 프로그램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묻는다.


“네. 거의 다 됐어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칼퇴도 했네요.
방송 시작하면 시간 내기 더 힘들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해서 사드리는 거예요.
지난번에 미국에서 정말 잘해주셨잖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다른 셰프들 섭외하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제가 좀 불친절했던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거든요.”


“셰프님 정도면 거의 국빈 대접이었죠.”


그녀의 말을 더 듣고 싶었지만,
음식이 나온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맛있는 국물 냄새가 난다.


서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손을 모으며,

“제가 왜 좋아하는지 아시겠죠?
이 푸짐함.
그리고 국물은요… 드셔보셔야 알아요.”


나는 그녀가 하려던 말을 다시 묻고 싶지만,

그러지 않는다.


우리는 끓는 냄비를 바라본다.


벌서부터 배가 허기지기 시작한다.


“아 맞다. 아까 질문 하신거요.

셰프님들 섭외할 때, 찾아 갔는데,

못 뵌 분도 있고요.

이메일로 강하게 거절하셔서,

아예 찾아가 뵙지 못한 분도 있고,

의외로 바로 수락해 주신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며칠 동안 답변을 안 드려,

좀 고생하셨잖아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일단 미국에 간 게 좋았어요.”


“네?”


“섭외도 섭외지만, 정말 미국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밥도 그렇게 근사한 식당에서 두 번이나 먹었잖아요.
한 번은 셰프님이 직접 해주셨고요.”


그녀는 국자로 감자탕을 떠 내 접시에 올려주며,

“그리고…
아침에 커피도 같이 마시고...
저녁에 맥주도 같이 마시고...
낯선 나라에서 친구랑 있는 느낌이었어요.
일하러 갔다가 잠깐 휴가를 느낀 것 같은…

그런 감성도 좋았고요.”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말을 꺼내는 순간
이 공간에 맴도는 감정이 사라질 것 같아서이다.


그녀는 감자탕을 한입 먹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전 소주 한 병 해야 할 것 같아요.”


“한 병이요?”


“네. 한 잔으로는 안 돼요.”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각자 한 병씩 시킨다.


소주잔을 기울이고,
젓가락과 숟가락, 손가락까지 동원해

뼈를 발라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웃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바라본다.


친구.


나도 그녀와 있는 시간이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하다.




다음 회에서는

드디어 경연이 시작됩니다.

이름도, 얼굴도 가려진 채
오직 한 접시의 요리로만 평가받는 무대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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