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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ang Oct 19. 2024

Chapter Eight

그런 세상이라면?

“그래서 넌 그게 맞다는 거야?”

라단의 물음에 수아가 대답한다.

“맞다. 안 맞다의 문제가 아니야. 기본틀은 있어야 한다는 거지. 뿌리 같은 거 말이야. 그 뿌리가 전통이나, 역사에 기반이 될 수도 있고.”


라단은 수아의 말을 듣고,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한다.  

“그런데, 전통과 역사가 제대로 바로 잡혀 있다면, 그것이 기본 틀이 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데 좋은 바탕이 되겠지만, 잘못된 전통이라면? 오히려 악용된 관습이라면? 그런 거라면, 뿌리를 뽑고, 새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바로 잡아가야 하지 않을까?”


여람이 말한다.

“나도 라단 말에는 어느 정도 동감해. 세상이 점점 나빠져 가는 것은 좋은 전통과 관습대신, 나쁜 관행들을 따르기 때문이잖아. 그리고, 그때에는 맞았던 것들이 지금 세상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역사니까 따라야 한다기보다는, 새롭게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지.”


여람은 사엘과의 사이를 생각하면, 라단이 하는 것은 뭐든 못마땅하고 맘에 안 들지만,

라단이 제시하는 세상적인 이야기들은 꽤 타당성이 있고 그럴듯하다.


수아가 말한다.

“하라셀 선조님이 처음 지파를 세우셨을 때의 이념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행복하게, 안전하게 그리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었어. 그건 그때 세상이나 지금 세상이나, 맞는 이념이잖아? 그리고 그런 이념이 역사가 된 거고.”


수아의 말에 다들 그 말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수아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공동체가 커지고, 사람들도 많아지고, 계급도  생기고, 그러면서, 처음의 이념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더 추구하게 되니, 그것이 착취와 억압이 되어 가고 있고. 그래서 무언가를 자꾸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보다, 오히려 처음 시작된 때로 돌아가, 그 정신과, 이념을 다시 상기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밧세가 말한다.

“나는 라단이나 수아 말이나 둘 다 동감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도전 이잖아. 잘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고. 그런데, 처음 선조님의 뜻을 기본 틀로 하는 건, 잘 안될 수 있다 라는 건 염두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그것을 같이 접목시키는 거지. 그동안 왜곡되거나 잘못된 관습들은 바로 잡고, 그리고 잘못된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거야. 잘못된 것에 대한 대체이니, 잘 안돼도 이전 것보다는 나을 테니, 완전히 실패라고는 또 할 수 없고. 어때? “


여람이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잘못된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계급부터 없애야 하지 않아? 하라셀 선조님의 말씀 대로 평등한 세상이 되려면 계급이 없어져야 하는데, 계급이 없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수장도 없고, 군사도 없고, 군사 대장도 없고, 하인도 없고?”


라단이 말한다.

“그걸 계급으로 보지 않으면?”


라단의 말에 다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말없이 라단을 쳐다본다.


“계급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라고 하면 어때? 누구든 그 일에 능력이 있고, 열심히 하면, 뭐든지 될 수 있는, 그런 거 말이야.”


여람이  말한다.

“그럼 하인들은?”


라단이 말한다. ”하인이라는 것도 하나의 일자리로 생각하면 되지. 누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일하고, 정당하게 대가를 받는 일로 말이야.”


수아가  말한다.

“꽤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사람들은  모두들 높은 자리만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도,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다스리고 싶어, 너도 나도 수장이 되려고 지파를 만드는 바람에, 더 흉악한 세상이 되고 있는 거잖아.”


밧세가 말한다.

“맞아. 그리고 또 세상이라는 건 상점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마구간을 돌보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병사도 있어야 하고, 물론 병사를 훈련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집안일을 하는 이도 있지만, 지파를  관리하는 이도 있어야 하잖아.”


라단이 말한다. “바로 그거야. 어느 곳에나 누구나 필요하잖아. 수장만 있어도 안되고, 병사만 있어도 안되고. 그러니 어떤 일을 맡았다 해서, 그것이 누구는 높고, 누구는 낮다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하는 일을 존중해 주는 거야. 왜냐 하면, 사람들 모두 각자의 능력과 재능은 다르잖아. 하라셀 선조님의 이념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많아져도, 공동체가 커져도, 그 속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대로 일하면서, 존중받는 세상, 그게 평등하다는 세상이 아닐까?”


라단의 말에 모두들 생각이 많아진다.


능력과 기회가 있는 세상,

서로 존중하는 세상,

평등한 세상,

꿈만 같은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산다면?


태어나면서,  

수장의 아들이라서

선택이 아닌,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로 짊어진,

일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잘 하는 일을 할수 있다면?


그런데 막상,

하고 싶은 일이 뭘까 생각하니,

다들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잘하는 건 뭐지? 재능은 뭘까?

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런 생각이 드니,

뭐지?

뭐 하며 산 거지?

라는 생각까지 들어,

당황스럽다.


남들에게는

평등한 세상,

재능대로 사는 세상,

서로의 일을 존중하는 세상

이라며 지금까지 열띤 논쟁을 벌였는데,

막상 이들은,

수장,

수장의 아들

그리고 그다음에 수장이 되서,

그래서 지금도

이 열띤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일을 해 봐야 겠다

해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들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있는 사엘에게 라단이 묻는다.

“사엘아. 너 생각은 어때?”  


여람도 사엘을  보며 말한다. “그래.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고.”


사엘이 무겁게 입을 연다.  

“너네 들이 말하는 그런 세상에서, 제사장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누구든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과연 제사장이라는  것을 하고 싶어 할까?”


사엘의 말에 모두들 잠시 말이 없다.


누가 제사장을 하고 싶어 할까?

제사장이 필요할까?

라는 의문 보다도,

처음 하라셀 선조와 함께 하며, 지파를 넘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이 되었던 제사장 가문은,

제단의 불이 꺼진 후, 점점 쇠락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전의 제사장들은, 제단의 불은 꺼졌지만,  

다시 제단의 불이 돌아 올 날을 기다리며,

경전의 신을 위한 제단을 쌓고, 기도를 했었다.


하지만, 요 제사장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제단의 방의 문은 굳게 닫히고,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제사장 가문을 이을 자도 없다며,

이제는 제사장도 경전의 신도 사라져 가고 있다며,

사람들한테 그 존재는 잊혀져 가고 있는 중이다.


제사장 가문에서 여자로 태어난 사엘은 존재하지만,

그녀의 가족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받는다.


무엇을 하고 싶지?

무엇을 잘하지?

라는 생각조차 하기도 전에,

존재 자체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엘은 여자애라는 말이 그녀의 마음에 못처럼 박혀, 아프다.

여자애라서,

여자애이니까,

제사장 집안의 여자애


여자아이로 태어난 것이,

제사장 가문에 태어난 것이,

사엘의 잘못도 아닌데,


사엘은 제사장 가문이 신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것도,

그녀 때문 인 듯하고,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도,

그녀  때문 인 듯하여,

마음이 늘 무겁고 힘들다.


그래서,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친구들이 나눈,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녀는 가문도,

이름도,

여자라는 성도 버리고,  

바닷가에 살면서,

어린 친구들에게

파도타기를 가르치 사람

으로 불리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마땅히 해야 한다고만 생각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이들이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잘 알지만,

존재 자체를 외면당한 이나,


각자를 돌아보니,

짠하고 서늘해,

누구를 위로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마침 그때 하갈이 방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음. 이 칙칙한 분위기는 뭘까? 또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나 보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어?”


20대가 된 이들은, 놀이방에 모여, 놀이도 하지만, 각자의 생각과 의견들을 나누는 날이 많다.


수아가 대답한다. “꽤, 진취적이고,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하갈이 말한다. “그래? 그럼 밥 먹으면서 나한테도 이야기해 줄 수 있어?”


할머니 집사님은 늘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하갈은 이들이 나눈 이야기를 들어준다.


식사를 하며, 한참 이야기를 듣던 하갈이 사엘을 보며 묻는다.

“요 제사장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셔? 라함 수장님께서 여러 번 찾아뵈었었는데, 못 뵈었다고 하시더라.”

“방 밖으로 거의 안 나오시고요. 후난은 또 임신을 했어요.”


여람이 놀라며 말한다. “또?”


여람뿐만 아니라, 수아와 밧세도 놀라는 얼굴이다.


후난은 지금까지 여섯 번을 임신 했지만, 뱃속의 아기들 모두 거의 8개월쯤 되면 유산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을 기다리지만 아이를 매번 잃는 요는 불안하고,

후난도 예민하고 불안하고 힘들다.  

게다가 모든 집안의 일을 후난이 맡아서 하면서, 그녀가 임신과 유산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의 성정 인지,

후난의 난폭함에 못 견뎌 몇 명 하인들은 도망을 갔다.

제사장 가문을 지원하는 것도 거의 끊겨,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요는 방안에 틀어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사엘이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면 가문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사시는 거 같아요. 저는 뭐랄까. 그런 게 좀 답답해요.”


사엘은 처음으로 그녀의 감정을 말해 본다.


늘 하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

없는 듯 살아라.

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

사엘은 집안 이야기도, 그녀의 생각도, 감정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하갈이 묻는다.  

“어떤 게 답답한데?”


사엘은 생각이 많아 보이지만, 한숨만 내 쉴 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하갈도, 다른 이들도, 잠시 기다려 준다.

사엘이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침묵 속의 바램이 통했는지,

사엘이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한다.


“가문을 이을 아들을 기다린다 라는 자체가, 제사장 가문을 유지하겠다는 의미잖아요. 그러면 불 꺼진 제단의 방에라도 가셔서 경전의 신에게 매달려, 기도라도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무슨 방도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정말 대를 이을 아들이 나오는 것이 방도 인건지도 모르겠고요. 뭐가 맞는지, 어떻게 하는 게 나은건지 몰라, 그런게 답답 한거 같아요."


사엘은  처음으로 그녀 집안의 이야기들을 길게 나눈다.


밧세가 묻는다. “제사장님께 말씀은 드려 봤어?”

여람이 사엘 대신 대답한다. “하갈 수장님이라면 들으시겠지.”

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여람이 말이 맞아. 아버지를 만나러 갔지만, 방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했어. 후난이 그러더라. 이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고.”


사엘이 말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들 후난이 무슨 말을 더 했을지  짐작이 간다.


라단은 옆에 앉은 사엘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여람은 라단이 항상 왜? 어떻게? 저렇게 사엘의 옆에 앉아,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역시 저 녀석은 맘에 들지 않아

라고 생각하며,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


여람은, 충분히 사엘 옆자리에 앉을 수 있고,

그녀의 손을 잡아 주거나,

어깨를 감싸 줄 수 있지만,

늘 주춤부터 먼저 한다.

라단의 행동이, 못마땅하면서도 부럽다.


사엘이 라단을 쳐다보자 라단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그런 라단을 보며 사엘은 미소를 짓고, 그것을 바라보는 여람은 못마땅하다.


사엘은 이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고마워.”


수아가 말한다. “뭐가 또 고마워? 뭘 그렇게 맨날 고맙대.”


사엘이 말한다. “하갈님이 계시고, 너네가 있어서. 여기 있으면, 내가 존재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거든.”


모두들 집에 돌아갈 때쯤, 문 앞에 나온 하갈은, 무슨 생각이 나서인지, 사엘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사엘아. 나도 여자애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 나는 여자야. 그리고 여자 수장.”


 하갈의 말에 사엘의 마음이 저리듯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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