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투어 마을 전체가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사울진
이 온 마을에 집집마다 음식들을 나눠 주어, 사람들 모
두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즐겁다. 1지파 마을의 어느
집 마당에 모여 함께 음식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왁자
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만이에요. 이런 날이.”
“얼마만이긴? 처음 있는 일 아닌가?”
“그래도 예전에 라함 수장님께서 마을 잔치를 하고 하
셨잖아요.”
“맞아. 그랬지. 그런데, 마을이 그렇게 되고, 마을이 더
좋아져 가고 있으니, 이게 다 그 라단 왕님 덕분 아니겠
어?”
“맞아. 맞아. 얼마나 다행인지.”
“언제 이 앞으로 지나가신대? 나가서 봐야지?”
“곧 지나가실 텐데. 마저 음식 준비 하고 다 같이 나가
자고.”
넬이 마을 곳곳에 사람들을 매수하고 소문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의 민심이 늘 라단에 대해 좋게 만든 것이
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1지파 수
장에 대한 믿음과, 의존이 있다. 하지만 그런 라함 수장
은 사라졌고, 다른 수장들은 아주 가끔씩 마을에 나타
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도 어디로 갔는지 보
이지 않는다. 게다가 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지 여러
흉흉한 소문들만 무성하고, 제단의 불도 다시 사라지
고, 신전도 불타 버린 데다, 몇 개월째 비도 내리지 않
아 곳곳의 도랑과 하천들도 말라가고 있다. 사람들은
또다시 경전이 신의 벌이라고도 생각하며,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라단은 왕이 되었다. 여전히 하갈과 마
하살은 살아 있다. 그들의 자녀들은 생사도 알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왕이 있지만, 여전히 지파
로 나누어진 마을, 무성한 소문들 속에서 왕이란 자는
아직 힘도 명분도 없다. 또한 사람들은 왕이라는 자가
왜 필요하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하지
만 라단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마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사울진은 그
런 라단을 보며, 이 마을이 지켜지고 있고, 잘 다스려지
고 있는 것은 라단왕 때문이란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과 금방 친해
지고 소문을 만드는 것에 능한 넬의 계획으로 그동안
마을 곳곳에 사람들을 심어 놓고, 소문을 만들어, 라단
이 하는 일들을 칭송하게 했다.
곧 했어야 할 즉위식을, 라단의 반대로 미루고 미루어
그 일 이후 반년이나 지나서야 하게 되었다.
보연당 앞에서 라단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울진, 웃날
그리고 넬의 마음이 뭉클하다. 사울진은 그의 지난날
들을 생각하며, 여기까지 온 것과, 왕이 되는 아들의 모
습에 가슴이 뭉클하고, 넬은 늘 힘없고 돈도 없고, 명망
도 없는 지파에서, 이제는 왕의 최 측근이 된 그의 모습
과 왕비가 될 딸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웃날은
그의 생명의 은인이자, 지금껏 함께 해온 사울진의 환
한 미소를 보며, 그도 미소 짓는다.
넬이 사울진을 보며, “혼인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을까요
?” 라고 묻자, 사울진은 “즉위식 하고 한 달 정도 있다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대답한다.
“그렇지요. 아무래도 혼인은 왕실을 좀 더 안정돼 보이
게 할 수 있으니, 좀 서두르는 것도 좋지요.”
“그럼요. 그럼.”
사울진과 넬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준비를 마
친 라단이 보연당을 나온다. 그는 앞 여무새에 검은색
띠가 둘러진 긴 황금색의 긴 겉옷을 걸치고, 단발머리
를 하나로 묶고는 눈매에 검은색 라인을 그려, 그의 얼
굴이 더욱 날카롭고 매섭게 보인다. 라단 뒤로 그 뒤에
검은색의 긴 겉옷에 어깨와 손목에 황금색으로 화려하
게 장식이 된 옷을 걸친 넬의 딸인 보와 브누아가 함께
걸어 나온다. 둘은 지파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다. 화려한 의상이 오늘 그들의 모습
을 더욱 눈부시고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라단이 층계를 내려와, 사울진과 웃날의 앞에 서서 말
한다. “제 즉위신 날인데, 보와 브니아는 왜 제 뒤에 함
께 있는 것입니까?”
“지금 이 자리까지 모두 함께 했고, 또 왕비님이 되실
분들이니, 당연한 거 아닙니까?” 라고 사울진이 대답
하자, 라단은 얼굴을 돌려, 보와 부니아를 매섭게 노려
본 후, 다시 사울진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한다. “글쎄
요. 무엇을 함께 했다는 것인지? 그리고 왕비라니요?
아버지 뜻대로 왕 노릇은 하나, 제 혼인마저 뜻대로 하
실 생각은 하지 마세요.”
보와 부니아도 라단의 말에 할 말이 있는 듯 나서려 하
자, 웃날이 웃으며 대신 말한다. “그럼요. 아직 혼인 이
야기는 이르지요. 오늘은 왕으로 즉위식이 있는 좋은
날이니, 어서 가세요. 사람들이 모두 기대에 부풀어 기
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마을을 지켜낸 왕이 누구인
지 보려고 말입니다.”
라단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앞장서 걷는
다.
보와 부니아도 못마땅한 듯, 웃날을 보자, 그는 그들을
달래며 라단 뒤를 따라 걷게 한다.
넬은 부니아랑 수아를, 보는 라단이랑 혼인시키려 했
었다. 둘 중에 하나만 잘 돼도 손해가 없다 생각하고 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 수아는 없으니, 부니아든 보
든 라단이랑 혼인시키면 된다. 그런데, 보는 여전히 여
람을 마음에 두고 있고, 부니아도 여전히 수아를 좋아
한다고 한다. 라단이 왕이 되고, 수아와 여람이 사라지
자, 넬의 딸들은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이 혹시 수아나 여람과 혼인을 할 수 있지 않았겠
냐며 그를 원망 하고 있다. 그래도 넬은 두 딸들 중 누
구든 왕비가 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뒤를 따
르며 걷는다.
마당을 나오자, 문 앞에 6명의 사람이 끌어야 하는 남
자 어른 키 정도의 높이에 , 여러 장식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큰 수레가 있다.
라단은 사울진을 보며, 이게 뭐냐며 한마디 하려다, 그
냥 모든 것이 다 빨리 끝내 버리는 것이 낫겠다 싶어 수
레에 오른다. 왕이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마을을 돌본다는 목적하에 여러 일들을 처리하며 있고
떠난 친구들과 남은 그들의 가족들을 보호하고 싶어
앉아 있는 자리인데, 이런 거추장스러운 화려한 옷을
입고, 수레에 앉아 있는 모습이 부끄러워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수레 앞에는 사울진이 말에 앉아 있다. 수레 뒤에는 그
보다 작은 수레에 보와 브누아가 앉아 있고, 그 뒤에 웃
날과 넬이 말에 올라앉아 있다. 라단이 주변을 둘러보
니, 하갈과 마하살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이 자리에
있는 모습도 보기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시간을
틈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괜찮은지 확인하고, 눈인사
라도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차라리 이런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간간히 호와 이앙이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고, 라단에게 전해 주거나, 공식적으로 신하들을 시
켜 아주 소소하게 그들이 할 일들만 전달하거나, 마을
에서 이런 일들을 했다고 보고 하는 정도로만 연락하
고 있다.
사울진의 손짓에,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마을로 들어서자,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언제 준비했고, 누가 시켰는지, 꽃잎을 바닥에
뿌리며 사람들이 “와” 하며 환영한다. 라단은 그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예전에도 원래 집 밖을 나오지
않았지만, 사엘을 만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들
과 바다도 산도, 마데라도 자주 다녔었다. 그렇게 반년
만에 나오는 마을은 어릴 때 나와보지 않고 나왔던 것
보다 훨씬 더 낯설게 느껴진다. 그들이 떠나고, 그들과
함께 하던 장소도 느낌도, 모두 사라져 , 많은 이들 속
에 시끄럽고 떠들썩하게 둘러 쌓여 있지만, 뼛속까지
외롭게 느껴진다.
라단의 마음과 상관없이, 수레는 마데라를 향한다.
그동안 사울진이 또 언제 준비했는지, 상점들 사이를
지나자, 마데라의 중앙 광장에, 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사울진이 멈추고 말에서 내리자, 뒤따라
오던 이들도 멈춘다.
사울진이 라단에게 다가가 말한다. “내리세요. 여기부
터는 걸어 올라가셔야 합니다.”
라단이 수레에서 내려, 몇 발자국 걸어가니, 바닥에 빨
간색 천이 깔린 층계가 있다. 함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진다. 라단이 한 발자국 내디뎌, 한 뼘 높이
로 채워진 층계를 걸어 올라간다. 층계 양옆으로 서 있
던 자들이 깃발을 흔들자,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다시
들린다.
라단이 속으로 계단을 세며 올라간다.
‘하나, 둘, 셋, 넷’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그의 친구들이 외치는 통곡 소리처럼 들
린다.
라단은 층계를 마저 세며 올라간다.
‘다섯, 여섯, 일곱… 열.’
계단을 오르니, 어른 삼심명 정도 서도 넉넉해 보이는
정사각형의 바닥에 보연당에 있는 것과 같은 의자가
놓여 있다. 계단은 사방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되어 있
는데, 라단이 올라온 층계만 빨간 천이 깔려 있다. 사방
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탑 주위로 둥글게 모여 그를 올
려다보고 있다.
라단은 갑자기 현기증이나, 의자에 앉는다. 그때 사울
진이 외친다.
“마을 사람들이여.”
사울진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함성을 멈춘다.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던 지파를 모두 하나로 합쳐
하나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 세워진 이 나라는
지파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하자는 뜻으로 라파입니
다.”
사울진의 말이 끝나자, 라단이 서 있는 곳 옆에 서 있
던 병사가, 세워져 있는 봉에서 천을 풀자, 커다랗게
검은색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황금색 천이 바람에 나
풀거린다.
사울진이 다시 외친다. “이것은 이 나라를 상징하는 문
양입니다. 우리가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사울진의 말에, 이미 넬의 지시로 여러 사람들 속에 있
던 자들이 “라파, 라파.”라고 외치자 모인 사람들도,
“라파.”
“라파”
하고 외친다.
사울진이, 황금색 왕관을 꺼내 높이 들며 말한다.
“라파의 첫 왕이신 라단왕 이시여.”
사람들이 라파 대신,
“라돈왕.”
“라단왕”
하고 외친다.
“이 왕관을 라단왕님께 드립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라단을 부른다. 사울
진이 왕관을 들고, 라단이 오르던 층계를 오르자, 다른
쪽 층계로 각각 웃날과 넬 그리고 보와 브누아가 함께
오른다.
다 오른 사울진이 팔을 높이 들어 왕관을 사람들에게
한번 더 보여주고는 의자에 앉아 있는 라단의 머리에
왕관을 씌어 주고는 외친다.
“라파왕. 라단.”
사람들이 따라 여러 번 외치기 시작한다. 라단은 눈앞
이 캄캄하고 현기증이 난다. 속까지 메스꺼워 구토가
올라온다. 사울진이 라단을 보며, 일어나야 한다는 눈
짓을 짓지만, 라단은 일어나 수가 없다. 그러자 사울진
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함께 있던 이들도 무릎을 꿇
자, 이를 본 사람들도 모두 무릎을 꿇는다. 함성으로 시
끄러웠던 주변이 잠시 조용해진다. 그렇게 잠시 침묵
이 흐르고, 라단은 그제서야 눈앞의 시야가 들어오고,
메스껍던 속도 가라앉는다.
한참 동안 조용하자,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
작하고, 라단은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이들을 보니,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의자에서 천천히일어 난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고, 그가
할 말을 들으려고 기다 리고 있다.
라단은, "내 아버지, 사울진이 마을에 매향초를 피우
고, 라함 수장님을 잡아가고, 다른 이들은 죽이려 하여
도망을 보내고, 그리고 이 자리에 내가 왕으로 있는 것
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 속에 담고, 대신 사
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말하듯 외친다.
“내 목숨을 다해 지킬 것입니다.”
무릎 꿇고 잇던 사울진과 다른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
나며 외친다. “라파. 라단왕.”
사람들이 다시 "라파. 라단왕." 이라 외치며, 웅성 웅성
떠들기 시작한다.
“그 말이 진짜 인가 봐요.”
“그러게. 독초 연기로 휩싸인 마을을 구한 게 라단왕이
맞나 봐.”
“그럼 1지파 수장이 마을 전체에 독초잎으로 불을 낸
것도 사실이에요?”
“이런, 대대 손손 그렇게 믿고 따랐더니.”
“라단왕님께서 우리를 목숨을 다해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하시잖아요.“
“우리는 라단왕만 믿으면 이제 걱정이 없겠어.”
“지파 수장이라는 자가, 우리를 이렇게 위험에 빠트린
줄도 모르고 그렇게 따랐다니, 정말 끔직해요."
"다른 수장들도 다 같은 사람들 아니에요?"
“에이. 나쁜 사람들.”
"이제 지파가 뭐고 필요 없지요."
"맞아요."
"우린 라파라는 새 땅에서 라단왕이 있으시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다행 이예요."
“라파. 라단왕."
“라파. 라단왕."
사람들의 외침이 더 커진다.
그때 창살이 있는 낡은 수레가 라단의 수레가 들어온
자리로 들어온다. 수레바퀴 소리에, 외치고 웅성이던
사람들이 잠시 소리를 멈추고, 무슨 수레 인지 보기 위
해 사람들 수레로 몰린다.
그때 어떤 이가 외친다. “라함 수장이다.”
“라함 수장?”
그 소리에 사람들이 갑자기 동요하며 웅성이기 시작한
다.
“라함 수장이라고?”
“라함 수장?”
수레가 빨간 천이 깔린 층계 앞에 다다르자, 사울진이
층계 반쯤 걸어 내려온다.
사울진이 크게 외친다. “라파 사람들이여.”
사울진의 말에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진다.
“라함 수장입니다. 그는 마을에 독초 연기를 내고, 그
도 집에서 독초에 취해 있는 것을 제가 발견해 지금까
지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매향
초라는 환각을 일으키는 독초에 취해 있었고, 급기야
그날은 온 마을에 매향초로 불을 냈습니다. 다행히, 라
함이 취한 약초를 알아내, 해독초를 만들고, 라단왕께
서 마을마다 다니며, 여러분을 구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떠돌던 소문들을 이제야 알겠다는 듯
다시 한번,
“라파. 라단왕.”
“라단왕이 우리를 구했다.”
라고 외친다.
사울진이 수레 옆에 있는 병사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수레의 문을 연다. 잠자코 수레에 앉아 있던 라함이 고
개를 돌려, 수레의 문을 열더니,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
으며, 수레 밖으로 나온다.
“이제 온 거야? 아니야 아니야, 많이 기다리지 않았어.”
라함은 앞에 누구라도 있는 듯이 다가가더니 손을 내
밀며 말한다. “아비갈. 어서 들어와. 배고프지. 내가 우
거짓국 만들어 놨어.”
라함은 누군가를 앉힌 듯이 하고는, 손에 밥상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바닥에 내려놓고 그도 바닥에 털썩
앉는다. 잠시 조용히 앉아 있던 라함이, 갑자기 크게 소
리를 내어 웃으며, “가르쳐 준 대로 만들어 본 건데. 아.
왜 그 맛이 안 나지. 이 음식 만드는 게 글을 읽는 것보
다, 말을 타는 것보다 더 어려워.” 라고 말한다.
레첼은 라함이 걱정되어 수레 밖으로 따라 나가려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상황들보다 라함의 행동에 놀라,
수레에 주저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다.
라함은 또 뭐가 그리 좋은지, 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런
라함의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 웅성 거린다.
“그 말이 진짜 사실이었네.”
“그러게. 독초에 취해서 미쳤다는 게.”
“저렇게 미쳐서는 마을까지 그렇게 만든 거잖아요.”
“아유. 끔찍해라.”
이를 보던 라단이 층계를 내려 오려하자, 웃날이 그를
막아선다.
사울진은 오늘 새벽, 웃날과 함께, 라함이 머무는 마을
로 가서, 그에게 매향초를 먹였다. 그리고, 레첼과 함께
그를 수레에 실어 데려 온 것이다. 무성한 소문들을 사
람들에게 알려 주려 한 것이다. 이제 미친 라함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라단이 다시 층계를 내려 가려 하자, 웃날이 라단을 잡
는다. 라단은 웃날을 매섭게 노려 보며 그의 팔을 뿌리
치려 할 때, 갑자기 웃던 라함이 머리를 움켜쥐고는 바
닥을 뒹굴며, 신음 소리를 낸다. 라함이 눈짓을 하자,
병사들이 라함을 들어, 수레에 던지듯 밀어 넣는다.
라함이 하는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레첼도 괴로운 듯 머
리를 움켜쥐고, 창 살 사이로 멀리 높게 보이는 라단을
원망과 분노에 찬 눈으로 쳐다본다. 라단은 멀리 아래
있는 레첼과 라함을 보며, 사울진이 한 일들에 분노가
치밀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에
게 실망과 죄책감으로, 몸과 마음이 터져 버릴 것만 같
다.
수레가 왔던 자리로 돌아 나간다. 사람들이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다시 층계 위를 오른 사울진이 외친다. “라파 사람들
이여.”
사울진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조용 해 진다. “지나간
것은 모두 잊고, 이제 이 새나라 라파, 그리고 우리의
왕 라단왕님과 함께 새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라파. 라
단왕.”
“라파. 라단왕.”
사람들은 언제 욕과 저주를 퍼붓었나 싶게, 라단의 이
름을 외치며 흥겨워한다.
괴로운 듯 머리를 잡고 있던 라함은 갑자기 뭐가 좋은
지 소리를 내며 껄껄 웃고, 레첼은 두 손으로 귀를 막
고, 다리 사이에 머리를 묻고는,소리 내어 흐느껴 운다.
사울진이 외친다. “오늘은 마음껏 즐기고 드세요.”
사람들이 라파왕 라단 을 외치며 집으로 돌아가, 얼마
전 사울진이 넉넉하게 준 재료 들로 만든 음식들을 먹
으며 잔치를 벌인다. 마데라 상점 에도 사람들이 북적
거리며, 집이 아닌 상점에 나와 먹는 사람들로도 가득
하다. 사울진이 음식점 사람들에게도 이미 재료들과,
음식값들을 넉넉히 주어, 매일 장사한 것보다 몇 배의
값을 이미 챙겼고, 재료도 넉넉하게 받았으니, 신나게
음식을 하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층계탑 위에도 의자와 상이 마련되고, 모여 있던 이들
도 음식을 먹으며 흥에 겨워 떠들며 음식을 먹는다. 음
악소리와 춤추는 이들까지 나와, 즉위식에 한참 흥을
올린다.
라단은 구역질이 나오는 듯 속이 메스껍다.
멀리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호와 이앙이 몰래 라함의
수레를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