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초를 먹은 후에도 길게 낮잠을 잔 라함은 날이 어
둑어둑 해져서야, 머리를 잡으며 일어나더니, 앞에 앉
아 있던 레첼을 보며, “내가 낮잠을 너무 많이 잤나 봅
니다.”라고 말한다.
레첼이 아무 대답 없이 그를 쳐다보자, “이런, 밥때가
한참 지났네요. 배고프지요?”
레첼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본다.
“내가 나가서 음식이 뭐가 있나 한번 보고 오겠소. 문
잘 잠그고 있어요.”
이곳에 와서는, 라함이 항상 음식이 있는 곳간에 가고
음식도 한다. 라함은 레첼이 부얶에서 음식을 해 본 적
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또한 이곳도 안전하지 않
아, 레첼을 혼자 내보내거나 혼자 두지 않는다.
라함이 나가려 할 때 레첼은, “우거짓 국이 먹고 싶네
요.”라고 말한다.
“우거짓국?”
“네. 당신이 좋아하시잖아요.”
“아. 좋아는 하는데, 내가 어떻게 끓이는지는 잘 몰라
요.”
“기억이 나실 거예요.”
“무엇을?”
“만드는 방법이요.”
“방법이라.. 알겠어요. 일단 내가 나가서 뭐라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있는지 볼게요.”
잠시 후, 라함이 국그릇 두 개가 담긴 작은 밥상을 가지
고 들어와 레첼 앞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우거지는 없
고, 건조된 나물이 있길래, 그 걸로 일단 우거지 국처
럼 만들어 봤어요. 이게 그 맛이 날지는 모르겠어요.”
라함이 수저를 들어 레첼의 손에 쥐어 준다. 손톱 밑이
새카만 손으로 레첼이 수저를 받아 든다. 언제 깨끗한
손으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입고 있는 옷도 군데
군데 해지고 얼룩이 져 있다. 얼굴도 더럽고, 머리도 헝
클어져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라함은 수저를 들어, 국을
한입 먹더니, 허허 웃음소리를 내며 말한다. “제대로
낸 맛은 아니지만 비슷하게는 나는 것 같소. 당신도 어
서 먹어요. 먹어야 힘이 나고, 힘이 있어야, 버틸 수 있
어요.”
라함은 국을 한 입 떠먹고는 말을 잇는다. “이 음식 만
드는 게, 책을 읽거나, 말을 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
같아요.”
레첼은 그녀의 국그릇도 라함에게 밀며 말하다. “더
드세요. 오늘 많이 힘드셨을 텐데.”
“힘들기는요. 잠만 잔 거 같은데. 당신은 배고프지 않
아요?”
“네. 괜찮아요. 더 드세요. 힘이 있어야 버티시죠.”
그때, 라함이 뭔가 생각이 난 듯, “그런데 새벽에 사울
진이 오지 않았었오?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나간 것까
지만 기억이 나요. 혹시, 또 그 매향초라는 것을 당신
이나 나에게 또 먹인 것이 아닐까요?”
레첼은 라함에게 낮에 있었던 일들, 라단은 그 사이
왕이 되었고, 사울진은 마을 사람들에게 라함이 독초
에 취해, 미쳐 버려 마을 사람들을 해치려 했다고 음해
했고, 사람들은 그런 라함을 증오하고 저주했다고 말
하지 않는다. 말해도 달라질 것은 없고, 그래도 이곳에
서 살아 보겠다고 버티며 사는 그에게 절망을 주고 싶
지 않다. 또 아비갈이 누구냐, 그래서 우거짓국을 좋아
한 것이냐 묻고 따지고 싶지도 않다. 그런 것이 지금
이 상황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서이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어서 더 드세요.”
상을 치우고, 자리에 눕는다. 하나밖에 없는 작고 낡은
이불은 혼자 덮어도 충분치 않다. 바닥에 깔린 요도 솜
이 닳아, 딱딱한 방바닥이 몸에 그대로 전해 진다.
오늘밤도, 라함은 레첼과 함께 누워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한다. “미안합니다. 내가 진작 막았어야 하는데. 그
래도 우리 조금만 버팁시다. 수아와 떠난 이들이 곧 돌
아올 거예요. 그리고 이곳도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이
온유해지고 있고, 질서도 생긴 것 같지 않아요?”
둘은 어느 날 집안 어른들의 소개로 만나 부부가 되었
다. 둘은 특별히 가까워 질 일도 그렇다고 문제도 없
이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각작의 책임과 역할을 하며
지낸 부부다. 그래도, 레첼은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넉
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고, 지파 중
가장 명망 있는 집안의 아들과 혼인하여, 수장의 아내
가 되었다. 그녀는 수장의 아내로서 지혜와 품위를 갖
추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사는 그녀의 삶에 만
족 스러웠다. 다음 수장 자리를 이을 아들도 낳아, 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들도 키웠다. 레첼의 삶은
그랬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 흉악한 곳을 질서 있게 만들어
보겠다고, 뭐라도 하며 버티는 라함을 믿고 의지 했다.
그는 처음 하라셀 선조님 때부터 이어온 1지파 가문의
수장이지 않는가. 그리고 예전에는 늘 각자 방을 썼지
만, 방 한 칸에 함께 있다 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라함의 정스럽고 살가움도 느꼈다. 수장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같지 않게, 산속에서도 적응을 잘
하고, 나물도 캐고, 음식을 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었지
만, 그녀를 지켜 주려고 하는 것 같아 듬직도 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날, 그 아들은 왕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아들은 왕으로 지음 받은
자이니, 반드시 이곳으로 다시 돌아 올 것이라 믿었고,
그리고 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하며, 생
전 겪어 보지 못한 이런 곳에서 그동안 버텼다.
하지만, 오늘 환각 상태에서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 라함을 보았다. 명망 있는 지파 수
장님댁 도련님이 서민들도 잘 먹지 않는 이 국을 왜 좋
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의 추
억 속에 살고 있는 것이었고, 현실의 라함은 보기 좋은
남편, 일 잘하는 수장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아가 왕
으로 지명받았다면서, 오히려 라단이 저 높은 곳에 앉
아 왕이 되어 있었다. 아들 수아의 눈과 목소리는 고쳐
졌는지, 아니 이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도 모르
겠다.
군데군데 찢긴 종이문 사이로 달빛이 들어온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라함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레첼
은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라함의 손을 놓고, 조용히
일어나, 라함의 얼굴을 들여 다 본다. 그의 얼굴에서 그
리운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잠시 후, 방문을 열고
라함 없이는 나가 본 적 없는 밖으로 나가 달빛에 의지
해, 계곡 쪽으로 걸어간다. 겉옷을 벗어서 물에 여러번
담가 문질러 빨은 후, 바위 위에 걸쳐 놓고는 그녀도 계
곡으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다. 잘 빠지지
않는 손톱밑의 때도 억지로 빼본다. 계곡에서 나와, 머
리를 잘 털어 단정하게 묶어 본다. 바위에 걸쳐 놓은 마
르지 않은 겉옷도 다시 입는다. 여전히 축축하고, 군데
군데 얼룩진 옷이지만, 그녀는 여러 번 머리와 옷을 만
지며, 최대한 깔끔해지도록 만지고 또 만진다. 하지만
만져도 만져도 헝클어지는 머리, 빨아도 빨아도 얼룩
진 옷을 보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밤하늘을 올려다 달을 쳐다보며, 경전
의 신에게 나지막이 기도 한다.
“제 남편 라함 수장님을 지켜 주세요. 제 아들 수아도
꼭 지켜 주세요.”
그녀는 집으로 가는 대신, 다시 계곡으로 발을 담근다.
발목이 잠길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여민 옷
사이에서 칼을 꺼내 손목을 긋자, 피가 흐른다. 피가
흐르는 팔을 계곡물에 담그고 눈을 감는다. 그녀가 살
던 집, 사람들 속에서 지파 일들을 돌보는 라함, 수아의
짓궂은 미소, 언제나 인자한 부모님의 미소, 그리고 아
름답고 깨끗한 옷,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그녀는 그렇
게 지난 기억들을 떠올린다.
새벽 새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워, 라함이 잠을 깬다. 옆
을 돌아보니 레첼이 없다. 혼자서는 나가지 않는 그녀
이다. 서둘러 방을 나가 주변을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
다. 멀리 계곡 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달려가 보니, 레첼이 계곡에 쓰러져 있다. 급하게 달려
가, 그녀를 안아 들지만, 그녀는 이미 싸늘하게 죽어 있
다.
“부인. 부인. 레첼” 라함이 목놓아 울며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새벽 녁에 이곳에 다시 온 호와 이앙이 사람들 속에서
이를 지켜보고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어젯밤 라단에
게 라함이 있는 곳을 알려 줬고, 라단은 그들에게 그동
안의 일들을 라함에게 방법을 찾고 있고, 그들도 돌아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버텨 보자고 전하라 명했었다.
밤하늘에 별이 뜨고, 라단이 보연당에서 나와, 까만 밤
하늘의 별들과 별들 사이에서 빛나는 단추를 바라보고
있다.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린 호와 이왕이 다가오자,
“그래. 라함 수장님께 내가 전하라 한 말을 잘 전했어?
하루 라도 빨리 두 분을 구해 드릴 방법을 찾아야 하는
데.”라고 라단이 말한다.
“그게. 저.”
“왜?”
“오늘 레첼 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거 같습니다.”
라단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신음한다. 레첼
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내가 두 분을 더 빨리 찾아냈어야 해. 내 잘 못이야. 내
가 그분을 죽게 한 거야. 어젯밤에 그분들을 찾아뵈었
어야해.”
“라함 수장님 부터 먼저 모시고 나올까요?”
라단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사엘아. 난 이제
어떡하니? 난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하고 이러고 있어.”
그때, 떠 있던 단추가 움직이더니, 리만투어를 향해 가
다가 템말 산 쪽에 머문다. 그것을 본 라단이, “그들이
가까이 왔어. 라함 수장님을 모시고 템말산으로 가. 저
기 저 보이는 단추를 따라가면 돼.”
호와 이앙은 라단의 지시에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들이 가고, 라단은 , “사엘아. 우리 모두를 지켜달라
고 빌어줘.”라고 여러 번 반복하며 말한다.
호와 이앙은 라함을 찾아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들
의 말을 들은 라함은 하얀 면보로 쌓인 레첼의 시신을
말에 얹는다. 레첼을 아들과 함께 장례 해주고 싶어 서
이다.
수아와, 밧세, 여람과 사엘은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
이 지날 만큼 걷고 떠 걸어, 어느 산속에 당도한다. 사
엘은 카야에게 주변이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산속으
로 더 걸어가본다. 그것을 본 여람이 뒤따라 가며 묻는
다.
“어디 가는 거야?”
“소리가 들려서.”
“소리?”
“응. 리만투어 바닷소리처럼 들려서.”
얼마를 걷자, 해안가 절벽이다. 사엘이 절벽 가까이 걸
어가며 말하다. “리만투어가 맞아.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은 템말산인거 같아.“
"이곳이?“ 사엘의 말을 들은 그는 놀라 주변을 둘러 본
다.
템말 산의 지형은 산세가 높고, 리만투어 바다를 따라
얼마큼 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길게 위치해 있다. 게다가
험하고 깊으며, 바다 바람이 산속으로 거세게 불어오
거나, 바다와 산이 만나는 온도에 의해, 늘 안개가 끼어
있어, 사람들이 산행을 하기 위해 오는 곳은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산속에 신들이 머물고 있어, 신비하
고 신성한 곳이라 여겨 방문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사엘이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어느 곳을 가리키며 말
한다. “여람아. 저기 멀리 있는, 저곳. 보여? 제단이 있
는 곳이야. 우리가 드디어 리만투어에 왔어.”
여람은 사엘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이 정도 거리면
마을까지 며칠을 더 가야 하지만, 리만투어에 와 있다
는 것만도 가슴이 벅차다. 저 멀리 그들이 함께 놀았던
리만투어 모래사장이 있을 것이고, 그 뒤로 그들의 집
이 있을 것이다.
그가 잠시 그리움에 잠겨 있는 동안, 사엘은 주변에서
몇 개의 돌을 주워 온다.
여람이 사엘을 돌아보며 황급히 몸을 움직이며, “미안.잠시 생각 하느라고. 더 필요해? 더 가져올까?”
“아니야. 이 정도면 돼.”
사엘은 다섯 개의 돌을 탑처럼 쌓아 올리고는 바닥에
앉는다. 여람도 사엘의 조금 뒤에 익숙한 듯 자리를 잡
고 앉는다. 그에게 사엘이 하는 이런 일들이 이제는 놀
랍지도 낯설지도 않다.
사엘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지막한 소리로 여러
번 중얼거리고는, 양손을 돌탑을 향해 뻗으며 말한다.
“경전의 신이여. 이곳에 제단을 쌓습니다.”
사엘이 말하자, 돌탑 위로 물이 분수처럼 솟아난다. 물
이 점점 많아지더니, 그 물이 흘러, 해안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사엘이 말한다. “경전의 신이여, 리만투어에 모인 모든
이들을 지켜 주세요.” 사엘은 지금 그녀와 함께 있는
이들, 그리고 리만투어에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
한다. 그리고 저곳에 있을 라단을 떠올리며, 곧 만날 희
망도 담아 본다.
한참을 더 앉아 있던 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람
도 함께 일어 난다.
돌탑으로 흘러나오는 물이 쉴 새 없이 해안 절벽 아래
로 떨어진다.
여람과 사엘은 말없이 산속을 걷는다. 어느 날부터 이
들은 누구의 허락이나, 고민 없이 그들 에게 주어진 일
들을 해내고 있다. 사엘은 어느 곳에 있든 제단부터 쌓
고, 경전의 신에게 기도 한다. 여람은 아빌갈과 함께 아
비갈의 무사들을 지휘하고, 사엘 곁에 있다. 수아와 밧
세 카야는 그의 병사들을 지휘하고, 행렬해 먼저 앞서
고, 모든 위험에 대비하고, 전반적인 일들을 통솔한다.
여람은 지금 일어 나는 모든 상황들이 힘들지만, 사엘
곁에 늘 먼저 가까이 있어, 가끔은 행복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그녀 곁에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가까운 것은
아니다. 손 만 뻗으면 있는 그녀지만, 뻗는 손이 그녀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람은 잠시, 사엘이 걷다가
미끄러지면, 부축하면서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
각하지만, 사엘은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아.”
“왜 그래? “ 사엘이 여람을 뒤돌아 보며 묻는다.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생각에 빠져 있다, 미끄러
진 것이 멋쩍은 듯 여람이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사엘이 여람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말한다. “넌
아직도 이렇게 잘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그러니. 네가
아비갈의 무사들을 이끈다는 것이 신기해. 나를 지킨
다는 것도 신기하고.”
“나뭇가지를 잘못 밟으면서 미끄러워 진거야. 널 지키
는 데는 문제없어.”
“그래. 알았어. 잘 지켜줘 봐.”
사엘이 잡고 있는 여람의 팔을 놓으려 하자, 여람이 사
엘의 팔을 다시 잡으며 말한다. “미끄러지면서. 그러니
까 발목이 좀 아프네.”
“그래? 어디 봐? 많이 아파?”
“아니. 아니. 그냥 조금.”.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내가 부축해 줄 테니 천천히 걸
어봐. 할 수 있겠어?”
“응.” 여람은 사엘의 팔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 사이 수아와 밧세는 병사들과 머물기에 적당한 곳
에 자리를 잡아, 천막을 쳐 놓았다.
수아가 여람과 사엘을 보자, “어디 다녀온 거야?”라고
물으니, 사엘은 “여기 산길로 조금만 걸어가면 리만
투어가 보여. “라고 말한다.
“리만투어? 그럼 여기가?”
“맞아. 템말산이야.”
여람이 말한다. “사엘이 그곳에다 제단을 쌓고 왔어.”
수아는 잘했다는 의미로 사엘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개
를 끄덕인다. 수아는 모든 이들을 통솔하고 돌보는 왕
의 모습으로, 사엘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갖추어져가고
있다.
여람과 사엘을 번갈아 보던 밧세가 묻는다. “그런데 너
네 둘이 팔은 왜 그렇게 꼭 잡고 있어?”
“아 맞다. 얘가 오다가 미끄러졌어. 발목이 좀 아프다
는데. 봐줄래?”
밧세가 무릎을 구부려, 여람의 발목을 보려 하자, 그는
뒷걸음치며 말한다. “이제 괜찮은 거 같은데. 오다가
나았나 봐. 봐봐 잘 걸어지네. 걱정 마. 괜찮아졌어. 이
제 슬슬 천막들은 잘 쳐졌나 보러 가볼까.”
여람이 황급히 자리를 뜨자, 밧세와 수아는 알겠다는
듯 서로를 보며 웃지만, 사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들에게 묻는다. “괜찮은 거 맞겠지? 아프다고 했는데,
너희들이 걱정할까 봐 괜찮은 척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수아와 밧세가 동시에 말하고는, 다시 웃음
을 짓고는 자리를 뜬다. 사엘이 뒤따라 걸으며 말한다.
“아니야? 뭐가? 그래서 괜찮다는 거야?”
어스름한 저녁, 제단이 있는 절벽에 다시 온 사엘은 멀
리 보이는 리만투어를 바라본다. 하늘에 떠 있는 단추
도 더 가까이 보인다. 라단도 그들이 돌아 오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사엘은 제단 앞에 앉아 나지막이 기도
한다.
“경전의 신이여. 우리 모두를 지켜 주세요. 다시 함께
만나게 해 주세요.”
사엘의 뒤를 따라온 카야도, 그녀 뒤에 서서, 밤 하늘과
멀리 보이는 리만투어를 바라 본다. 늘 그립고 생각나
는, 하란이 리만투어에 가까이 오니 더욱 생각이 난다.
카야도 조용히 기도한다.
"이곳에 돌아 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사엘과 사엘과 있는 이들을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