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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지 Lindsey May 17. 2022

삼시 세끼

별 것 아닌데 별스럽게 행복한 일상 (3)

  라은이가 아빠와 격하게 내외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빠 품에만 가면 말릴 수 없을 만큼 꺼이꺼이 울어 재꼈다. 아빠에게 안기기가 무섭게 다시 엄마를 향해 간절히 몸을 뻗는 라은이에게 아빠는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둘 사이에서 난처해했다. TV 속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봤던 알콩달콩 아빠의 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현실은 그저 눈물 대환장 파티.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아빠 직장이 꽤나 먼 거리에 있었고 근무시간도 긴 편이라서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사하면서 아빠 직장과 가까운 곳을 최우선으로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아빠랑 밥 한 끼 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고단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색할 만큼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서 더 고단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이사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삼시 세 끼를 세 가족이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 길만 건너면 아빠 직장. 직세권 중의 직세권인지라 아빠는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집에 와서 함께 밥을 먹는다. 혹자는 징글징글하게 매 끼니마다 붙어있냐, 질리지도 않냐 할지 모른다. 암, 일리 있는 말이다. 우리가 만약 남남처럼 각자의 하루를 살던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느꼈을지도. 겪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마주 보고 밥을 먹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행복이다.     


  식단 관리 중인 남편을 따라 닭가슴살과 양상추, 어린잎 채소,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고구마 어쩌다 계란 프라이를 더해 먹는 게 대부분이지만 (우리 식단을 본 여동생은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먹는 식단 같다고 ‘원숭이 밥’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래도 좋다. 하루 세 번 서로의 눈을 보며 안부를 묻는다. 아침엔 “잘 잤어?” 점심엔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 무슨 일 없었어?” 저녁엔 “오늘도 고생했어. 피곤하진 않아?” (가끔은 "씻고 와. 으흐흐흐"하며 윙크를 날린다.) 소처럼 오물오물 리듬감 있게 풀때기를 씹는 것도, 시시콜콜한 하루 일과를 나누는 것도 그렇게 즐겁고 소중할 수가 없다.     


  언제 내외했냐는 듯 직장으로 복귀하는 아빠에게 뽀뽀를 날리고 손을 흔드는 라은이. 잠깐 떨어진 사이에도 집에 있는 딸과 와이프를 보고 싶다고 틈만 나면 카톡을 보내는 아빠. 애틋해진 우리 가족을 보며,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몸속에 음식을 씹어 넣는다'는 물리적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한번 더 느끼게 된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나는 부성애가 없나 봐. 왜 안 느껴지지?' 고민하던 남편은 온데간데없다.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어도 화목하는 것이 집 안에 먹을 것이 많으면서 다투는 것보다 낫다.’라는 잠언 구절을 곱씹어보게 되는 매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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