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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15. 2022

회피하지 말자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을

  "(살을)  빼셔도 될 것 같은데요..."


  하고 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하고 꿀꺽 삼켜버렸던 이다. 어제 우리 필라테스 강사님께 이 을 하고 싶었는데 소심한 A형의 기질 때문에 입 밖에 꺼내지는 못했다.


  늘씬날씬 너무나도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계신 필라테스 강사님께서 살이 너무 쪘다며 최근 식이요법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현미밥 200g과 수육 200g에다가 파프리카를 곁들인 것을 두 번에 나누어 드신다고 한다. 간은 후추만 살짝 뿌린다고.


  "너무 배고파서 어지러울 지경이에요."


  강사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한 번 식사로 족할 것을 두 번에 나누어 먹고 하루를 보내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거기다 이렇게 매일 필라테스 강습까지 하고 있으니 체력 소모도 어마어마할 텐데 말이다.


  내가 볼 땐 흠잡을 데 없는 몸매인데 뺄 살이 어디 있다고 살을 빼고 계시는지 도통 의문이다. 아마도 필라테스 강사라는 직업 때문일 테지. 평생 몸 관리를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면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드니까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잘 안 빠지네요."


  강사님의 말씀이 끝나자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 수강생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세상에... 그 분은 정말 날씬을 넘어서 엄청 마르신 분이었다.  저렇게 마르신 분도 살을 빼려고 노력 중이라는 말이야? 오히려 살을 찌우셔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의 살을 빼고 싶으신 걸까? 진심 궁금했다(역시 물어보지는 못했다.). 



 

  궁금함과 동시에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루종일 내가 먹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나열해 보니... 큰일이다 싶었다. 특히 점심을 떡라면으로(라면만으로도 족한데 떡국떡까지 투하하다니!) 거하게 먹고 나서 초코파이까지 먹은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은 그 초코파이가 일반 초코파이가 아니고 다이어트용으로 나온 저칼로리 초코파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온다. 초코파이는 먹고 싶은데 양심 상 일반 초코파이는 못 먹겠으니 비싼 돈을 주고 저칼로리 초코파이를 사다 놓았다. 그렇지만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애초에 지 말았어야 했다.  다이어트용이라고 해도 어쨌든 초콜릿으로 만든 파이가 아닌가. 아무리 용을 써도 초콜릿은 초콜릿일 뿐이다.




  우리 필라테스 강사님과  수강생 분은 (하실 필요도 없으신 분들이) 저렇게 처절하게 다이어트를 하시는데 막상 다이어트가 필요한 나는 요즘 식이요법은커녕 체중계도 외면하며 지내는 중이다. 충격 받을까 봐 무서워서 체중계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나를 보며 갑자기 예전에 같은 대학에서 근무했던 P선생님이 생각났다.  분은 나와 비슷한 또래이신데 정기 건강검진을 안 받으신다고 하셨었다. 혹시나 안 좋은 결과를 들을까 봐 무서워서 그렇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을 회피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그 심정이 어떤 건지 이해가 된다.




  "여보, 나 요즘 살 좀 찐 것 같지 않아?"

  "아니, 전하고 똑같은데...괜찮아."


   우리 남편에게 질문을 하면 늘 저렇게 대답을 한다.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성과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답변임을 잘 알고 있다. 


  꽤 오래 전에 내가 남편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남편이 나에게 전보다 약간 살이 찐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내가 너무 실망스런 표정을 짓자 남편은 당황하면서 아니라고 급히 부인을 했었다. 뒤부터는 살이 찐 것 같냐고 물어볼 때마다 의도적으로 내가 실망(내지는 절망)할만 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남편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정말 솔직하게 살을 빼라고 돌직구를 날려 주는 사람은 우리 엄마뿐이다. 예전에 한창 살이 올랐을 때 나보고 살을 좀 빼야겠다고 하셨었다. 요즘엔 살을 빼라고는 안 하시지만 "거기서 더 찌면 안 돼."라고 하신다.




  남편도 요즘 자기가 살이 쪘다며 저녁은 굶거나 아주 간단히 먹겠다고 공언했다. 남편은 겉으로 보기엔 아주 늘씬하다. 키도 185센티미터에 다리도 길다. 그런데 배와 허리에 살이 붙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살이 좀 찐 스타일이다.


  바지가 껴서 불편하다고 살을 빼겠단다.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와서 어떤 날은 당근만 먹기도 하고, 두부만 먹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독한 성격은 아니어서 의지가 사그러드는 날에는 결심이 무너지며 거한 저녁을 먹을 때도 있다. 그런데 항상 말은 "나, 저녁 안 먹거나 진짜 간단히 먹을 거야."라고 한다. 체중계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늘 나오는 레퍼토리다. 남편은 나와 달리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 체중을 잰다.



 

  여하튼 진짜 살을 빼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무서워도 체중계에 올라가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충격을 받더라도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를 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론에는 빠삭해서 똑부러지게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 함정이다. 오늘도 아직까지 체중계에 오르지 못했으니 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살을 빼고 싶다면 현실을 직시하자. 체중계를 외면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체중계와의 만남부터 용감하게(?!)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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