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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19. 2022

아이들은 위로를 원한다

초등 한국어학급 이야기

  나는 초등학교에서 2학년 다문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내가 담당한 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반으로 자모부터 수업을 하고, 어느 정도 읽기와 쓰기가 완성되면 시험을 치러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반으로 보낸다. 그래서 인원이 유동적이다. 이번 주에는 5명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남학생 두 명, 여학생 세 명으로, 네 명은 아랍권에서 온 학생들, 나머지 한 명은 카자흐스탄에서 왔다.


  초등학교 2학년 꼬맹이들이라 장난도 심하고,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사건들이 터진다. 정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과 아이 돌보미의 중간쯤에서 스펙터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교실에서 매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본업 외에 어떤 날은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되기도 하고(모두를 만족시키는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려야 하기에 쉽지 않다.), 아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기도 하며, 사건(?)의 경위와 진상을 파헤치는 검사 내지는 경찰의 역할도 해야 한다. 그리고 상당 부분은 엄마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손 씻기 등 아이들의 청결과 관계된 일들과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 주기'이다.

(※모든 선생님들, 특히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하루는 A라는 여자아이가 쉬는 시간에 놀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칠판을 지우다가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B라는 남자아이가 자기한테 '하마'라고 했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 직전에 자음 'ㅎ'을 배우면서 '하마'라는 단어가 하마 그림과 함께 책에 나왔었는데 장난꾸러기 B가 그걸 또 이렇게 A를 놀리는 데에 써먹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 A는 하마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마른 아이이다.


    A는 B가 자기더러 '하마'라고 한 것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다독여 주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B에게 "미안해."라고 말하도록 시켰다. B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고, A한테는 "괜찮아."라고 말하도록 알려 주었다. 다행히 신속한 사과에 마음이 풀렸는지 A는 금방 다시 B와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하니 그 일이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하마'라는 단어를 배웠다고 깡마른 아이에게 얼른 '하마'라고 놀린 아이도 웃기고 그 얘기를 듣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도 왜 이리 귀여운지.

 



  어제는 C라는 여자아이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이마를 보여주며 달려왔다. 웬일인가 이마를 살펴보니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저께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놀다가 그만 미끄럼틀에 이마를 부딪친 결과다. 그저께 대성통곡을 하는 것을 한참 안고 달래주었는데 하루 지나니 작은 상처가 생긴 것이다.


  "아이고, 많이 아팠구나."


  나는 C를 안고 토닥토닥 위로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C가 나를 보고 생긋 웃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여기저기서 상처 보여주기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A는 손가락에 난 종이에 베인 상처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고, B는 얼굴에 난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처 자국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D라는 여자아이는 옷을 걷어 올리고 손목에 있는 작은 상처를 보여주었다. E라는 남자아이만 나에게 보여줄 상처가 하나도 없어 아쉬운 표정이었다.


  E가 여기저기 자기 몸을 훑어보며 상처를 찾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너도 나도 자신의 상처를 들이밀며 위로해 주길 원하는 상황에서 소리 내어 웃을 수는 없으니까. 여하튼 그래서 나는 수업 시작 전에 우선 네 명 아이들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위로해 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무척이나 난감할 때가 있다. 목격자(!?)가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두 아이가 서로 다른 말을 할 때이다(대부분의 미제 사건은 쉬는 시간에 발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몸으로 말해요' 게임처럼 나에게 제스처를 섞어 설명을 할 때가 많은데 어느 날은 A와 C의 갈등이 있었다. A와 C는 모두 아랍권 여자아이들이다.  


   당시에 나는 칠판을 지운다고 뒤돌아 서 있었고, B와 D, E는 교실 안에 마련된 교구를 가지고 노는 데에 열중하고 있어서 그 누구도 A와 C의 문제 상황을 목격하지 못했다.


  A가 먼저 내 옷을 당기며 말했다.


  "선생님, C가...(나를 발로 찼어요.)-> 이건 몸동작으로 시연한 것이다.)"

  "C가 발로 찼다고? 정말이니, C야?"

  

  A의 말에 C에게 역시 행동을 보여 주며 질문을 하자 C가 고개를 완강하게 가로저으며 소리친다.


  "아니야!"


   C는 분명히 그러지 않았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A가 또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C가 발로 찼다고 몸으로 표현한다. 나는 내가 눈으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둘 중 누구의 편도 들 수가 없었다.


  평소에 워낙 A가 작은 일에도 잘 울고 거짓말도 종종 해서 C가 발로 찼다는 것이 거짓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런 어림짐작으로 함부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제스처를 섞어가며 물었다.


  "얘들아, A와 C가 싸우는 거 봤니?"


  그랬더니 아이들은 입을 모아 못 봤다고 증언(?)했다. A와 C는 내가 현명한 솔로몬처럼 멋진 판결을 내려주길 기대하는데 나는 증거도 없이 내 추측만으로 판결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A와 C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은 두 아이를 모두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일뿐이었다. A는 걷어 차인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그것에 대해 위로를 해 주고, C는 A가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해서 억울해 하니 그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위로를 받은 아이들은 또 금세 기분이 풀려 언제 싸웠냐는 듯 킥킥거리며 놀았다.



  

   '아우... 내가 늙는다, 늙어...'

     

  선생님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녀석들 때문에 부쩍 노화현상이 빨라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또 해맑게 웃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 나도 웃을 수밖에 없게 된다.


  다음 주는 또 어떤 일들로 우리 아이들이 울고 웃을까. 아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크게 늘리고 늘려 넉넉하게 준비해 가야겠다. 우리 반 아이들에겐 내가 오은영 박사님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위로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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