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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22. 2022

말이 안 통해도 '친구'가 된다

초등 한국어학급 이야기

  어른이 되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힘들다고 느끼는 일 중의 하나가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나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들이 금세 생겨나지만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 어른이 되면 누군가와 친해질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친구가 된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를 사귈 수는 있지만 어렸을 때 사귄 친구와는 무언확실히 다르다고 느껴다.


   그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가? 정해진 법칙 같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자신과 말이 잘 통하고 생각과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그 마음과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언어'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야말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가 완전히 다른 경우 서로의 언어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공통적으로 통하는 언어도 없다면 친구가 될 수 없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다. 최소한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가능하다'라고 말이다.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고 다면 내가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한국어학급에는 요르단에서 온 N과 카자흐스탄에서 온 I가 있다. 둘 다  인형처럼 예쁘장한 여자아이들이다.


  요르단에서 온 N은 당연히 아랍어를 쓰고, 카자흐스탄에서 온 I는 카자흐어를 쓴다. N의 경우에는 영어도 조금 가능해서 나는 가끔 N과 영어로 소통을 할 때도 있는데, I는 정말 카자흐어밖에 모르는 것 같다. 영어도 잘 모르고, 간단한 러시아어로 질문을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을 보면 러시아어도 잘 모르는  눈치다(참고로 나는 독학으로 러시아어를 공부해서 아주 조금 아는 수준이다.).


  그러니 N과 I는 서로의 언어도 모르고, 한국어도 인사 정도의 말 외에는("아니야!"라는 말은 아주 잘 하지만) 글자 정도를 겨우 읽는 수준이라 아직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귀여운 두 아이들은 만난 지 이틀 만에 '절친'이 되었다. 첫날에는 서로 눈치만 살피는가 싶더니 둘째 날에는 서로 손을 잡고 뛰어다니는 수준이 되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둘이 서로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쉬지 않고 깔깔대며 웃는다는 것이다.




  둘은 쉬는 시간에 퍼즐도 함께 맞추고 블럭놀이도 한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그림그리기다. 칠판에다가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의 그림을 보고 매우 좋아한다. 정성들여 서로의 얼굴그려주기까지 한다. 얼굴 그림 옆에 이름도 써 주고 큰 하트까지 그려 넣는다.


  "I가 N을 사랑한다는 거구나? 아... N도 I를 사랑해?"


  나는 그림을 보며 아이들의 마음을 한국어로 표현해 주는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하트를 가리키며 '사랑'이라는 말을 알려주는 식이다. 하트로 표현되는 마음을 한국어로는 '사랑해'라고 한다는 것을 여러 번 들려준다. 그러면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N과 I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언어는 물론 자라온 문화적, 사회적 배경도 완전히 다른 두 아이들이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예쁜 우정을 쌓고 있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학교에는 아랍 아이들은 매우 많은데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이들은 무척 소수이다. 2학년 중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이는 I밖에 없다. 그런데 N이 아랍 아이들과만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I에게 마음을 열어 준 것이 너무 고맙고 대견하다.     


  가뜩이나 I는 다른 선생님께 들으니 가정에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 보이는 아이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등교도 제때 하지 못하고 일주일 이상 늦게 학교에 왔다. 그래서 속으로 I가 적응을 잘 못하고 힘들어할까 봐 걱정이 되었었는데 금방 마음이 맞는 친구도 생기고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국적을 막론하고 어린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마음은 이렇게 쉽게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무 사심 없이 서로에게 녹아들어 '우정'이라는 이름의 반짝이는 보석을 만들어낸다. 어릴수록 그 보석을 만들어내는 힘이 매우 막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미 나이가 들어버려 그것이 어려워진 내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고 부럽다.  


  N과 I가 지금처럼 맑고 예쁜 마음으로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 관계적인 면에서 안정되고 부족함 없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앞으로 한국에서 만나게 될 많은 한국 아이들과도 말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우정을 쌓아나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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