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도 외국에 살고 싶어
나 만큼 자주 아픈 너에게
월요일에 아팠던 건 이제 많이 좋아졌어. 근데 좀 걱정이야.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
한국에선 매주 의사를 만나고 약을 타 왔었어. 약은 증상에 따라 늘기도 줄기도 했어. 약 종류를 바꿔보기도 하고 비약물적 치료방법도 알아보고 그랬어. 부작용 때문에 석 달에 한 번씩은 피검사도 받았고.
매주 가는 병원 말고도 알레르기가 심해지면 피부과나 이비인후과에도 갔어. 손목이 아프면 정형외과에 갔고, 피곤할 땐 수액을 맞기도 했어.
스위스에 온 이후로는 당연히 그러지 못하고 있어. 약은 법적으로 한 달 치까지만 가져올 수 있었어. 여기선 민간 의료보험사를 통해 병원 예약을 잡는데, 약이 다 떨어져 가도록 의료보험 가입절차가 끝나질 않는 거야. 그래서 구글에서 찾은 병원 몇 군데에 약이 삼일 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무작정 메일을 보냈어.
제일 먼저 온 답장은 기차역에 있는 진료소에 가보라는 내용이었어. 그래서 기차역 진료소에 갔더니, 대학병원 응급실에 보내더라. 응급실에서 의사는 잘 만났어. 약도 잘 탔고. 그런데 수납하려고 했더니, 바로 수납하면 백만 원정도 나올 거라는 거야. 의료보험 가입 진행 중이면, 집주소로 청구서를 보내 줄 테니, 그 청구서를 나중에 보험사로 전달하래.
그렇게 응급실에 갔다 온 게 칠월 초였어. 구월초에 청구서가 도착해서 보험사에 전화했더니, 90%를 환급해주긴 할 텐데, 일단 직접 수납하라더라. 바로 수납하고 영수증 보냈지만 한 달이 더 지난 지금까지 환급을 못 받고 있어.
의료보험이 생긴 이후에 전문의 진료도 한번 받았어. 의사는 아주 친절했지만, 자주 가긴 어려울 것 같아서 6개월치 처방전을 한 번에 받아왔어. 피검사도 처방전을 써 줬는데 어디서 검사받으라는 건지 모르겠어. 일단 미루고 있는 중이야. 진료 비용은 총 35만 원 나왔고 그중 자부담은 19만 원이었어. 두 번째 진료부턴 처음보다 저렴할 거래.
그러다 이번 주 월요일에 몸이 좀 안 좋았어. 별건 아니고, 평소에 혈압이 낮아서 생리할 때 가끔 어지러운데, 이번에 유독 심했어. 식은땀 흘리며 누워있다가 떠오른 생각이 있어.
‘나 여기 119 전화번호도 못 외우는구나.’
외국에 오니까 가용한 자원이 너무 적어. 서울이었으면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바로 수액을 맞았을 텐데, 여기선 응급 전화도 걸 줄 모르더라. 오늘에서야 응급 전화번호를 다시 찾아봤어. 경찰은 117 화재는 118 구급차는 144 구급헬기 1414. 일단 외웠는데, 급할 때 생각 날지 모르겠다.
해외 이주를 계획할 때, 의료 서비스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어. 미국은 당연히 안됐고, 유럽에서도 스위스가 제일 좋다고 들었어. 여기 사는 미국인들이 현지 의료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를 보면, 미국보다 훨씬 낫긴 한가 봐. 하지만 한국에서 온 내가 보기엔, 한 달에 65만 원씩 의료보험료를 내는 거에 비해, 접근성이 너무 안 좋은 것 같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맘은 전부터 있었는데, ‘약만 끊으면, 그때부터 알아봐야지.’하다 3년이 흘렀어. 내 몸은 점점 나이 들어가고, 완전히 건강해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어. 그래서 불편함을 각오하고 일단 스위스에 가기로 결정했던 거야.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어. 여전히 적응하고 있는 중이니까. 패밀리 닥터가 생기면 좀 낫다고 들어서, 다음 주엔 일반의 진료를 한번 볼 생각이야.
스위스 관광청에선 “세계 최고의 의료”라고 하더라. 나도 좀 더 겪어보고 또 얘기해 줄게.
2022.10.12. 건강하게 잘 살고 싶은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