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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Oct 25. 2022

나는 다시 짙푸러질거야

다시 일어서는 너에게

스위스 와서 처음으로 산에 다녀왔어. 제대로 산을 오른 건 아니고, 남산 같은 곳을 기차 타고 올라가서, 전망을 좀 구경하고, 걸어 내려왔어. 힘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쉽지 않았어. 집에 오자마자 침대 위에 널브러질 만큼.


자고 일어나니까 다리에 알이 배겨있었어. 너는 겨우 그런 걸로 알이 배기냐고 하겠지만 나한텐 이만큼 걸어 다닌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어. 나 작년 크리스마스에 발톱 깨졌던 거 기억나? 괜히 하이힐을 신었다가 발톱이 네 개나 부러졌었잖아. 그 뒤로 한동안 조심조심 가까운 거리만 걸어 다녀야 했어. 그리고 새 발톱이 자라나기 무섭게, 이번엔 엉치뼈를 다쳤지. 발과 허리가 아팠어서 알 배길 만큼 걸어 다닐 수가 없었어.


오늘 아침에 알 배긴 다리로 어기적 거리면서 침대에서 나오는데, 묘하게 뿌듯했어. 알이 배겼단 건 내가 열심히 돌아다녔단 뜻이야. 더불어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단 뜻이기도 하고, 돌아다닌 만큼 더 건강해질 거라는 뜻이기도 해. 나는 회복하고 있어. 심지어 더 튼튼해져 가는 중이야. 스위스 숲에 있는 플라타너스를 보다가, 가지를 쳐내도 다시 싹을 틔우는 우리나라 도로변 플라타너스들이 떠올랐어. 가을마다 가지치기를 해도 여름이면 다시 창문 앞을 가리는 플라타너스처럼, 나도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을 거야. 다시 짙푸러 질 거야.


2022.10.24. 잡초 같은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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