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씨가 들은 '씹다 버린 껌'과 '맘충'
꾸준히 활동하던 김지영 씨가 동아리에 발길을 뚝 끊은 것은 3학년 가을 엠티 이후였다. 가까운 자연 휴양림에 숙소를 잡아 놓고, 다 함께 가벼운 산행을 한 후로는 삼삼오오 모여서 게임도 하고 족구도 하고 술 마실 사람은 술을 마셨다. 김지영 씨는 감기 기운이 있는지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 신입생들이 난방을 켜 놓고 카드게임을 하는 방에 찾아가 침구 더미 사이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들어갔다. 바닥은 뜨끈했고, 긴장했던 몸이 녹으면서 늘어졌고, 후배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섞여 웅웅 울리며 꿈처럼 몽롱하게 들려왔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든 것 같은데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
"김지영 이제 걔랑 완전히 끝난 것 같던데?"
예전부터 김지영한테 관심 있지 않았느냐, 관심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잘해 봐라, 우리가 도와주겠다, 하는 여러 목소리들이 계속 들렸다. 처음에는 꿈인가 했는데 곧 정신이 들면서 방 안에 있는 무리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던 복학생 선배들이었다. 김지영 씨는 이제 잠도 완전히 깼고 좀 덥기도 했는데 본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불을 걷고 나갈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민망한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92~93p
더위가 완전히 꺾이고, 이제 정말 가을이라고 불러도 될 날들이 이어졌다. 김지영 씨는 지원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 유모차에 태웠다. 추워지기 전에 햇볕도 쬐고 바람도 쐬게 하려고 가까운 동네 공원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는데, 아이가 유모차 안에서 잠들어 버렸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날씨가 좋아서 계속 걸었다. 공원 맞은편 건물 1층에 카페가 새로 생겨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김지영 씨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지원이는 입가에 투명하고 커다란 침을 흘리며 잠들었고, 오랜만에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이 좋았다. 바로 옆 벤치에는 서른 전후로 보이는 직장인들이 모여서 김지영 씨와 같은 카페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하고 답답하고 힘든지 알면서도 왠지 부러워 한참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때 옆 벤치의 남자 하나가 김지영 씨를 흘끔 보더니 일행에게 뭔가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간이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
김지영 씨는 뜨거운 커피를 손등에 왈칵왈칵 쏟으며 급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중간에 아이가 깨서 우는데도 모르고 집까지 정신없이 유모차를 밀며 달렸다. 오후 내내 멍했다. 아이에게 데우지도 않은 국을 먹였고, 깜빡 기저귀를 안 채워 옷을 다 버렸고, 세탁기 돌려놓은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지원이가 잠든 후에 꾸깃꾸깃해진 빨래들을 널었다. 회식을 하고 12시가 넘어서 들어온 정대현 씨가 붕어빵 봉지를 내려놓고서야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일밥을 먹지 않았다고 말하자, 정대현 씨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162~163p
소설에서 김지영 씨의 대학 동아리 선배는 김지영 씨를 지칭하며 “야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는 김지영 씨를 보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수군대며 ‘맘충’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귀에 꽂힌 단어와 문장은 순식간에 그녀의 정신세계를 헤집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고 그 이야기가 사실인 양 이를 그대로 흡수시켰습니다. 김지영 씨에게 이러한 피해를 준 사람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형법」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가 되는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지만(사실을 적시했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할 여지가 있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모욕(侮辱)이라는 단어자체가 욕(辱)을 포함하고 있지만, 반대로 욕을 했다고 모두 모욕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소설의 표현을 보겠습니다.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라는 표현은 상대방을 가치 없는 존재로 비유하여 인격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경멸적 표현입니다. "맘충"이라는 표현은 육아를 하는 여성을 벌레에 비유하며 비하하는 용어로, 이 역시도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는 경멸적 표현입니다. 나아가, 모욕죄로서 처벌대상이 되려면 욕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지거나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소설 속의 대사를 한 사람은 누구도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독백을 한 것이 아니므로, 결론적으로 모욕죄가 성립됩니다. 그럼 무조건 처벌을 받을까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욕은 나쁜 것이고,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우며 컸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욕할 일이 상당히 많은 것은 씁쓸한 현실입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분노와 화를 표출하는 그 나라만의 고유하고도 독특한 욕은 있게 마련이죠. 이렇게 욕이 우리 일상에 보편화되어 있는데, 욕 좀 했다고 처벌받는다면 아마 전 국민이 순식간에 전과자가 될 겁니다. 그래서 법은 모욕죄를 처벌하려면 반드시 피해자의 고소가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김지영 씨를 욕한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김지영 씨의 적극적인 조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욕이 나쁜 것이니 욕 자체를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답답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푸닥거리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말로라도 푸는 것이잖아요. 욕 자체가 내재한 본질적 속성상 상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욕이라도 하고 나면 억눌린 화가 분출되거나 누그러져서 더 큰 참상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소설 속 김지영 씨를 욕한 사람들은 화나 분노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이렇게 욕에도 순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욕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이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가능하면 상대가 듣지 않은 자리에서 해야겠지요.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한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기지 않았나 합니다. 남 모르게 욕한다는 '뒷담화'라는 단어도요. 욕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보다는 욕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없는 자리에서는 마음껏 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법도 모욕죄의 성립요건으로 ‘공연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억지로 꾹꾹 참고 억누르면서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는 맙시다. 그게 당장은 해결이 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계속되다 보면 더 큰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서 상처 주는 일 역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영혼을 짓밟을 권리는 없으니까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