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그날의 자리배치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한번은 한 중견 기업의 홍보부와 회식을 하게 되었다. 김지영 씨와 김은실 팀장이 창립 기념 행사 기획부터 진행, 보도자료 배포까지 전 과정을 함께했는데 잘 마무리해 주어 고맙다며 부서 회식 자리에 초대한 것이다. 홍보부 직원들이 모여있다는 대학가 고깃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팀장은 정말 가기 싫다, 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고마우면 돈이든 선물이든 그런 거 보내면 좋잖아. 우리한테 그 자리가 얼마나 불편할지 알면서. 고마워서 같이 밥 먹고, 술 먹자는 거 너무 빤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갑질 한번 더 하겠다는 거지, 뭐. 아, 진짜 싫지만 오늘만 참는다."
홍보부 직원은 50대의 남자 부장과 40대의 남자 차장, 30대 남자 과장, 20대의 여자 사원 세 사람, 이렇게 여섯 명이었고, 김지영 씨의 회사에서는 김은실 팀장과 김지영 씨, 행사 진행을 도왔던 남자 동기까지 셋이 회식에 갔다. 반주를 일찍 시작했는지 이미 얼굴이 달아오른 부장은 김지영 씨를 보자마자 과하게 반색했고, 나란히 앉아 있던 과장이 맥주잔과 수저를 들고 일어서며 김지영 씨에게 부장 옆에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부장은 역시 한 과장이 눈치가 있다면서 껄껄 웃었는데, 김지영 씨는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고 죽어도 그 자리에 앉기가 싫었다. 일행들과 앉겠다고 몇 차례 의사표현을 했지만 홍보부 차장과 과장이 자꾸만 김지영 씨를 부장 옆으로 끌어갔다. 동기는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기만 했고, 화장실에 들렀던 팀장은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에야 식당에 들어왔다. 결국 김지영 씨는 부장 옆에 앉았고, 따라 주는 맥주를 받았고, 강권에 못 이겨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이제껏 상품 개발부서에 있다가 홍보부로 온 지 석 달 정도 되었다는 부장은 홍보와 마케팅에 대해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무엇보다 계속 술을 권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115~116p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 작품의 장르가 소설인지 르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지영 씨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동년배의 한국여성은 누구라도 김지영 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넘겨진 책장이 쌓여갈수록 점점 더 확실해졌습니다. 물론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성별이 전부 여성만은 아닙니다. 다만, 그 비율이 여성(7.9%)이 남성(2.9%) 보다 높은 것이 현실이지요(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소설에서 발췌한 위 글의 따옴표 속 대사는 김지영 씨 회사의 팀장인 김은실 씨의 목소리입니다. 거래처에서 제안한 회식자리를 거절하지 못하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지영 씨는 어땠을까요? 팀장도 원치 않지만 억지로 사회생활 하는데 사회초년생인 내가 뭐라고… 그냥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원치 않는 회식자리를 제안한 거래처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우리 회사 사람들은 그 갑질의 피해자일 뿐이라고요. 그런데, 혹시 아시나요? 거래처와의 원치 않는 식사,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는 행위도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금지하는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것을요. 만약에, 단순히 같이 가자고 권유한 수준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오늘 꼭 참석해,”, “그날 거래처 회식 잡힌 거 알지? 시간 비워 놔” 등 일방적인 통보만 주어졌을 뿐 참석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면 사실상 강요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상사가 함께 가는 분위기라면 위와 같이 명확한 말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묵시적 강요일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누가 김지영 씨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그 회식자리에 동행하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거래처와의 업무 마무리 기념 자리이니 업무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이고 상사인 팀장의 인솔하에 참석하고 있으니, 김지영 씨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면 성희롱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키지 않은 자리에 억지로 참석한 거 자체로 이미 성희롱 피해를 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현장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거래처의 부장과 과장은 처음부터 김지영 씨를 부장의 옆자리에 앉히려는 음흉한 의도가 있었다고 강하게 추정됩니다. 김지영 씨가 몇 번이나 거부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부장의 옆자리에 앉게 되지요. 이후 술 마실 것을 강요당해서 연거푸 술을 마시고, 부장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을 향한 음탕하고 상스러운 이야기, 외모에 대한 평가 등을 듣게 됩니다. 김지영 씨에게 이런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직접 안겨준 사람들은 거래처 사람이기에 「남녀고용평등법」의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습니다만,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수는 있습니다. 또한, 회식에 여러 사람이 참석했고 그들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의 언어적 성희롱이라면 「형법」상 모욕죄에 해당하므로 형사고소를 진행할 수도 있겠지요. 더 나아가,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인데, 전부 김지영 씨 개인이 홀로 고군분투해야 할까요?
김지영 씨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취직한 것으로 보이므로 위 시기는 2005년으로 추정됩니다. 그 당시 「남녀고용평등법」에는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이 발생하였을 경우 회사가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는 회사가 근로자를 보호하는 도의상 책임을 이행하기를 바라면서 회사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만약, 김지영 씨가 거래처 회식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을 공론화하면서 회사에게 배치전환, 유급휴가 등을 요구한 경우 회사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피해 근로자가 이러한 요구를 하였다고 하여 불이익을 주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보호 테두리는 여전히 너무나 약합니다. 회사가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경우 주어지는 제재는 겨우 과태료 500만 원입니다.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만이 길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오명은 없도록 위반행위 방지에 상응한 효과를 위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저는, 김지영 씨에게 가해지는 성희롱 현장에 동석한 김은실 팀장과 김지영 씨의 남자 동기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들 역시 불편하고 민망한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보지 않았을까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성희롱을 목격하고 나서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비율이 60.1%에 달하기에, 팀장과 동기에게 정의에 찬 기사의 모습을 기대를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 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 앞에서 피해를 당한 개인이 오롯이 홀로, 고스란히 전부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힘겹고 버거워 보입니다. 성희롱 목격자들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 중 문제를 제기해도 기관/조직에서 묵인할 것 같다는 답변은 내부적 자정장치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까지 추락되어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 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의 사회초년생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하여 여자 직원들과 저녁 술자리를 만들려는 남자 상사가 있었습니다. 술을 먹이는 것은 기본, 술만 먹으면 음담패설을 늘어놓기 일쑤였습니다. 새로 들어온 여자 직원을 스캔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등 성적인 면에서 확실히 이상하다는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회사의 인턴을 채용하는 과정에 관여하더니 얼굴이 예쁜 사람들만 골라 자기네 조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후, 그 조에서 1박 2일 워크숍을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수작을 부릴지 충분히 예상이 되는 상황에서 여자인턴들은 무슨 핑계를 대야지만 그 곤혹스러운 자리에서 벗어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대표님 귀에 들어가면 좌절될 것이 뻔하기에 대표님께는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상사의 동기들은 그 사림이 어떤 사림인지 뻔히 알면서도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무 사고가 나지 않기만을 소심하게 바라고 있었지요. 그 상사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건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어떠한 불똥도 튀지 않기를 바라며 눈뜬장님 행세를 하는 선배들을 보니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대표님과 함께 출장 가는 자리에서 대표님 들으라고 부러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그 상사가 꾀하는 일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제가 전화를 끊자 대표님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다 같이 가되 남자인턴들만 1박 한다고 했어요,”라고 하셨는데, 자초지종을 확인해 보시고는 그 워크숍 자체를 난파시키셨습니다.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버릇 남 못 준다더니 결국 같은 문제가 크게 발생하여 그는 회사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을 떠올려봐도 성희롱에 대처하는 목격자의 자세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더 많은 희생과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순간이니까요.
성희롱 사건에도 하인리히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경악하는 대형 성희롱 사건(예를 들어,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성희롱 순간이 있었고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났을 것이라고 봅니다. 소설 속에서도 거래처 부장의 목소리를 모두가 들었을 테지만, 피해 당사자인 김지영 씨도, 그 자리에 동석한 김은실 팀장도, 남자 동기도, 거래처에서 참석한 다른 사람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에 거래처 부장의 성희롱은 계속되었습니다. 무심히 지나친 징후들은 모두 멈출 수 있었던 순간들입니다. 그 순간들을 붙잡는 일이 다음을 막는 시작입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