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라진 건 카메라뿐이 아니었다

불법촬영과 유포, 법은 처벌했지만 일상은 보호받지 못했다

by 장유미 변호사
강혜수 씨는 깔깔 웃었다. 김지영 씨는 그런데 무슨 일로 휴가를 낸 거냐고, 요즘은 일이 많지 않으냐고 물었고 강혜수 씨는 요즘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사무실 바로 앞의 여자 화장실에 몰카가 있었다는 것이다. 건물 보안 요원인 20대 남자의 짓이었다. 재작년인가, 입주사 회의에서 새로운 보안업체와 계약을 맺으며 건물 입구의 경비 할아버지들이 젊은 보안 요원으로 싹 바뀌었다. 몇 명은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라 안심된다고 했고, 몇 명은 도둑보다 보안 요원이 더 무섭다고 했다. 김지영 씨는 그럼 경비 할아버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했더랬다.

더 한심한 것은 몰카가 밝혀진 과정이다. 보안 요원이 몰래 찍은 사진들을 한 성인 사이트에 꾸준히 올렸는데, 그 사이트의 회원이던 회사의 남자 과장이 문제의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과장은 사진 속 화장실의 구도나 여성들의 옷차림이 어딘가 낯익다고 느꼈고, 곧 동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런데 그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다른 남자 사원들과 사진을 공유했다. 어떤 사진을, 몇 명의 남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돌려 보며,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튼 사진을 보게 된 또 다른 남자 직원이 사귀던 여직원에게 자꾸만 다른 층의 화장실을 쓰라고 했고, 이상하게 생각한 여자가 남자를 추궁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녀도 곧바로 공론화하지 못했다. 연애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녀는 친한 동료 한 사람에게만 사실을 말했는데, 그게 바로 강혜수 씨였다.

“나는 여자들한테 다 알렸어. 같이 가서 카메라도 찾아내고, 경찰에 신고도 하고. 지금 그 미친 보안 요원 새끼랑 사진 돌려 본 우리 회사 변태 남자들도 다 경찰 조사받고 있어."

"나 사실 정신과 다니고 있어. 아무렇지 않은 척 일부러 더 크게 웃고 다니지만 정말 미칠 것 같아. 모르는 사람이랑 눈만 마주쳐도 저 사람 내 사진을 본 건가 싶고, 누가 웃으면 나를 비웃는 거 같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아. 여직원들 대부분 약 먹고, 상담받고, 그러고 있어. 정은이는 수면제 먹어서 응급실 갔었어. 총무팀 두 명이랑 최혜지 대리, 박선영 대리는 퇴사했고”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153~155p





이 대목은 201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n번방 사건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중 박사방의 피해자 74명 중 16명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되었었죠. 만약,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피해자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눈덩이처럼 커졌을 겁니다. 피해양상의 특성상 쉽게 공론화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끝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기나긴 꼬리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 가족의 용기 있는 신고 덕분이었습니다.


소설에서도 용기 있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김지영 씨의 전 직장동료인 강혜수 씨입니다. 그녀의 신고로 인해 은밀하게 벌어졌던 범죄행위는 덜미를 잡히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그 미친 보안 요원새끼랑 사진 돌려 본 우리 회사 변태 남자들도 다 경찰 조사받고 있어.”라는 말로 끝나는데요, 현실에서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여기에는 세 부류의 유형이 나옵니다. 첫 번째,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고 그 영상을 성인사이트에 올린 보안 직원, 두 번째, 성인 사이트에 가입해서 영상물을 시청하고 그 사진을 동료들에게 퍼트린 남자 과장, 세 번째, 남자 과장이 건네는 사진을 본 다른 남자 직원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행동에 맞는 죗값을 받았을까요?


소설 속 위 사건의 발생연도는 2015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건물 보안 요원의 행동은 2015년이나 지금이나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n번방 사건을 거치면서 처벌수위는 한층 강해졌지만요. 구체적으로 보면, 건물 보안 요원이 여자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것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현재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합니다. 그는 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확인하고 수집하고자 여자화장실에 수시로 잠입했겠지요. 그때마다 범죄는 개수는 계속 누적됩니다. 게다가,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몰카를 이용하여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하였으므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현재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도 추가됩니다. 인터넷에 영상물을 업로드한 행위는「성폭력처벌법」과 「정보통신망법」을 모두 위반한 것이나, 이 경우 형벌이 더 중한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현재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만약, 인터넷에 해당 영상물을 유포하는 데 있어 영리의 목적이 있었다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현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더해집니다. 2015년에는 상습성에 따른 가중처벌은 없었지만 현재는 상습성 여부도 조사하여 형량의 1/2을 가중하기도 합니다. 이 행위들은 누가 봐도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야 하는 것들이지요. 그럼, 남자 과장과 동료들이 불법영상물을 본 행동은 어떨까요?


2015년에는 불법영상물을 시청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남자과장은 이 행동에 대하여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을 겁니다. 이는 남자 과장이 건네는 사진을 본 다른 남자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법촬영물을 성인사이트에 유포한 사람이 끔찍한 사건의 발단인 것은 맞지만, 불법촬영물임을 알면서도 이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으니 이러한 일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창궐하는 것이겠지요. n번방 사건의 경우 그 이용자 수가 무려 6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들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나요? 과연 아무런 조치도 필요 없는 것일까요? 끔찍했던 n번방 사건이지만, 이는 우리에게 법의 테두리를 강화시키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법의 망을 요리조리 피해왔던 행위를 범죄행위로 명확히 끄집어냈는데, 그중 하나가 불법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소지, 구입, 저장, 또는 시청한 자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는 등 적극적인 행위 없이 그저 시청만 하였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자 과장이 동료들에게 불법영상물을 ‘제공’한 부분을 보시죠. 판례는 ‘제공’의 의미에 대하여 '반포할 의사 없이 특정한 1인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무상으로 교부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동료들과 사적으로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는 행위도 법에서 금지하는 제공에 해당할 수는 있습니다. 이 경우, 남자 과장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현재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가해자들이 처벌받음으로써 사건은 끝나는 걸까요? 강혜수 씨의 마지막 대사는 오래도록 제 머릿속을 배회하였습니다. 가해자는 망각하지만 피해자는 기억하고, 가해자는 두 발 뻗고 잠을 자지만 피해자는 밤바다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려야 하는, 피해자 앞에 던져진 그 현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시간이 약이다’, ‘없던 일인 듯 지내야 한다’는 말이 실오라기 같은 희망도 없는 피해자에게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앞에 저 역시 유구무언일 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고 싶은 순간에, 마음껏 할 수 있게, 그저 들어주는 귀가 되어주는 것 외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 혼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고통 구경하는 사회> 등을 다시 펼쳐야겠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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