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라고 해서, 권리는 말하면 안 되는 걸까요?
김지영 씨는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반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가 마트 입구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평일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광고지를 보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급 5600원. 주부 환영.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점원도 주부인 것 같았다. 괜히 아이스크림을 한 컵 사 먹으며 구인 광고에 대해 물었더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본인도 두 아이 엄마인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4년 가까이 일했다고 한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그만두는 거라며 많이 아쉬워했다.
"건물 안에 있는 거라 평일에는 손님이 많지도 않고, 날이 추워지면 더 한가해요.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푸느라 팔이 좀 아팠는데, 그것도 요령이 생기니까 괜찮더라고요."
"근데 2년 넘게 일하면 원래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유, 애기 엄마도 참. 무슨 그런 순진한 소리가 다 있어? 근로계약서 쓰고, 4대 보험 되고 그런 알바 자리 없어요. 내일부터 나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구두계약하고, 적당히 내 통장으로 입금되다가 남편 통장으로 입금되다가 그러는 거지. 그래도 난 오래 일했다고 퇴직금 조로 조금 챙겨 준다더라고."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159~160p
김지영 씨는 마트에 갔다가 그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됩니다. 근로조건을 보니, 딸 지원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대이기도 하거니와 ‘주부 환영’이라는 글자가 김지영 씨의 두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겠지요. 김지영 씨는 4년 이상 근무했다는 직원에게 정규직 전환을 언급합니다. 이는 직원의 처우에 대한 궁금증을 넘어서, 어쩌면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질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하면서요. 직원은, 김지영 씨가 드러낸 의아함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우매함으로 대했습니다만, 김지영 씨가 알고 있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한 요구인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아르바이트’는 일상에서는 익숙하지만 법적인 용어는 아닙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일상 용어인 ‘아르바이트’를 대체하는 법률 단어로 ‘기간제근로자’ 또는 ‘단시간근로자’를 사용합니다. 소설에서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의 근무시간은 통상근로자(전일제근로자) 보다 짧은 오전 10시 ~ 오후 4시이므로, 단시간근로자에 해당함은 명백합니다. 만약, 점원의 근무기간이 정해져 있었다면 ‘기간제근로자’의 지위도 겸하겠지요. 이 경우, 근무기간이 2년을 초과하는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자동 전환됩니다. 소설에서 김지영 씨는, 아르바이트로 2년 이상 근무한 경우 바로 정규직 전환으로 알고 있는데, 실상은 정규직 전환이 아닌 무기계약직 전환입니다. 즉, 근로계약 기간만, 정해진 기간(2년 내)에서 무기한으로 변경되는 것이며 다른 근로조건이 자동적으로 정규직과 동일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이 애초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단시간근로자인 경우라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여지도 없고, 나아가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답답했지만, 소설 밖 현실은 더 팍팍하죠. 역시 인생은 단순하고 간단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단순화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근로계약서 작성에 대한 점원의 말이었습니다. 노동을 제공하는 형식이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사업주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사업주가 이를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점원의 말은 마치, “그건 교과서에나 있는 말이지 현실은 달라요. 땅에서 발 붙이고 살려면 현실감 좀 키워야겠네”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김지영 씨가 가진 생각이 정말 신기루 같은 희망사항일 뿐일까요? 엄연히 법적으로 존재하는 제도인데 실상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제4화의 제목과 같이 ‘법은 있었지만 법은 없었다’고 힘 없이 회고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부조리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이 반복될 것인가 또는 뿌리 뽑힐 것인가는 언제, 어떻게 결정이 될까요? 저는 이 순간이라고 봅니다.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잘못한 것이 확실한데,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유야무야, 구렁이 담 넘듯이, 쓱 넘어가는 그 찰나. 바로 그때, 당사자뿐 아니라 이 사건을 지켜본 수많은 목격자들은 ‘학습’이란 걸 하게 됩니다. ‘아, 안 지켜도 별일이 안 생기는구나.’, ‘법에서 요구한 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지켜온 내가 바보구나.’. 또한, 그 사건의 피해자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 또한 ‘학습’을 합니다. ‘아, 말해도 소용이 없구나.', '괜히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일자리마저 빼앗길 수도 있구나.’. 이런 사회 기류가 자리 잡게 된다면, 법에서 아무리 사업주의 의무를 명시하고 이에 대하여 제재를 예고하면서, 공정하고 공평한 노사관계를 이룩하고자 하였더라도 법전 밖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파랑새에 불과하겠지요. 그렇기에, 발생한 사건의 크기에 상응하는 단호한 대응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도 매우 공개적으로요.
드러난 일은 위와 같이 강력하게 제재를 한다고 하더라도,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은 어떻게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부조리한 현실 앞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불편한 침묵을 깨는 첫 신호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저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3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지인이 그동안 사장님으로부터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제 지인은 사장님이 그동안 근로계약서를 써주지 않았던 것이 법의 제재를 받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이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는 사장님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서 조사를 받아보아야 그나마 개선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쉽사리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법으로 보장되었다고 하는 그 권리를 얻기 위한 절차를 곧이곧대로 따른다면 당장의 밥줄과 맞바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법조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저를 의지해서 이야기를 털어준 사람에게는 미안해집니다. 허울뿐인 권리들을 마치 해결책인양 늘여놓을 수밖에 없는 제 현실도 착잡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널리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최소한 법이 우리 손에 쥐어준 권리를 몰라서 ‘못’ 하는 것과 알고도 ‘안’ 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순간은 ‘알지만 방도가 없다’는 것이 더 큰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하겠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기에, 미래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낼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현장의 모습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소설 속 점원은, “근로계약서 쓰고, 4대 보험 되고 그런 알바 자리 없어요”라고 일축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75%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합니다(피앤피뉴스, 2024. 10. 16.). 내가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가 다른 곳에서는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나 역시 그 보호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포기하기 전에 ‘아직’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어 봅시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