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당신은 누군가를 어떻게 불러왔나요?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러온 시간에 대하여

by 장유미 변호사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정해진 직장을 가지고 출퇴근하지는 않았지만, 아이 셋을 돌보고, 노모를 모시고, 집안 살림을 온전하게 맡아 책임지면서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쉼 없이 찾아 했다. 형편이 고만고만하던 동네의 아이 엄마들이 대부분 그랬다. 당시 보험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화장품 아줌마처럼 '아줌마'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주부 특화 직종들이 붐이었는데, 대부분 회사에 직접 고용되지 않는 형태라 일터에서 분쟁이 생기거나 다쳐도 혼자 끌어안고 해결한다고들 했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30p




이 짧은 문단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김지영 씨가 위 시기를 회상한 것은 1990년대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는 보험 설계사나 방문판매원을 보험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화장품 아줌마라고 공공연하게 불렀기 때문에, ‘그래, 그땐 그랬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회적 직업을 표현하는 단어에 ‘아줌마’를 붙였다는 것{아줌마라는 용어는 아주머니(남남끼리에서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를 낮게 이르는 말입니다}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소설 속에 나열된 주부 친화 직종들 중 아마도 ‘야쿠르트 아줌마’가 가장 많이 들어본 용어일 겁니다. 야쿠르트 송(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주세요. 야쿠르트 없으면 요쿠르트 주세요)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노래입니다. 또한, 2015년에 가수 최낙타는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도에 한 인터넷 기사는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우리는 그분들을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정겹게 부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사이트, 2018. 8. 6). 이렇듯,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만큼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고 친근하고 익숙한 용어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만으로 그렇게 불려도 되는 걸까요?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를 듣는 사람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요?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용어는 hy(구 한국야쿠르트)가 1971년 방문판매를 시작하면서 사용된 용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내세웠던 친근하다, 정겹다는 이유보다는 기업에서 사용한 용어였기에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회사에서 직접 고용한 형태가 아니었기에 어쩌면 회사에서도 이들의 호칭에 대하여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회사 내에서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아니라 존경의 의미를 담아 ‘여사님’이라고 호칭했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불리는 명칭과 회사 내 명칭이 다른 것이 회사 내에서도 외부 명칭에 대한 이슈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더욱이, 여사님을 수식하는 표현으로 굳이 ‘존경의 의미’를 붙인 것은, ‘아줌마’ 호칭에는 그러한 의미가 없다(없을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는 사고와 행동을 반영하는 수단이며, 그 언어로 인해 사고와 행동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 당시 야쿠르트를 판매하는 직업을 회사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시각이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에 새겨져 있고, 그 용어가 사회에 보편화되어 야쿠르트 아줌마가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게 했을 겁니다.


2015년 트위터에서는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판매원 대다수가 중년의 기혼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직책을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에 ‘아줌마’가 붙는 것은 부적절하며, 그 공식명칭이 직업인으로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hy는, “2013년에 새로운 명칭을 공모했지만 고객과 당사자인 1만 3천여 명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해당 명칭을 선택했다”라고 나름 당당하게 해명하였습니다만, 명칭에 대한 선호도나 선택 비율 등 상세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기에 진위여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설사, 그 결과가 그 당시의 여론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회사가 새 이름을 공모한 이유가 ‘시대 변화에 따라 좀 더 젊고 전문적인 이미지를 주는 새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을 뿐이어서, 용어 자체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개선의 움직임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호칭, ‘야쿠르트 아줌마’는 2019년 ‘프레시 매니저’로 변경됩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야쿠르트 아줌마가 야쿠르트뿐 아니라 HMR 등 판매하는 제품이 확대되자 직무의 전문성과 현대적 가치, 고객 서비스 측면에서 보다 세련된 이미지를 반영이 필요했고, 여기에 직업적 가치를 고민했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입니다. 용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점에 대한 고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015년의 논란을 잊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 호칭을 듣는 당사자들은 어땠을까요? “ ‘프레시 매니저’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직업적 자부심이 올라갔다.”는 답변이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나 싶습니다.


호칭은 단순한 이름을 넘어, 그 사람의 삶을 비추는 작은 거울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부르는 방식에는, 그에 대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시대의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 누구 하나 덜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하는 일이 무엇이든 사람을 향한 부름에는 존엄과 존중이 스며 있어야 합니다. 호칭은 단지 상대방을 부르는 말이 아닌, 그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마음이 더해져야 합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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