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엄마가 추천한 최고의 직업, 선생님

애는 같이 낳았는데, 왜 나한테만 좋은 직업이죠?

by 장유미 변호사
PD가 꿈이었던 김은영 씨는 당연히 언론 관련 학과로 진로를 정했고, 자신의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추려 지난해 논술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교대 얘기를 꺼내자 김은영 씨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싫다고 했다.
"난 선생님 되고 싶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왜 집 떠나 그 먼 대학에 가야 해?"
"멀리 생각해. 여자 직업으로 선생님만 한 게 있는 줄 알아?"
"선생님만 한 게 어떤 건데?"
"일찍 끝나지, 방학 있지, 휴직하기 쉽지.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그만한 직장 없다."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좋은 직장 맞네. 그럼 누구한테나 좋은 직장이지 왜 여자한테 좋아? 애는 여자 혼자 낳아? 엄마, 아들한테도 그렇게 말할 거야? 막내도 교대 보낼 거야?"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71p
회사 창립 이래 최초로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후배의 책상에 꽃다발을 놓으며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분이 누구신데요?"
"몇 달 만에 퇴사했어요."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팀장이 해결할 수는 없었다. 월급 대부분을 베이비시터에게 쏟고도 늘 동동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남편과 매일 전화로 싸우고, 급기야 어느 주말 아기를 업고 사무실에 나타난 후배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미안하다는 후배에게 팀장은 어떤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113p




소설에서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웠는데, 여자라고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키우려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성에 따른 고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주는 말들(좋은 남자 만나 시집 잘 가야 한다, 요리를 잘해야 한다)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졸업 전 취업의 문턱에 끝없이 좌절하고 있는 김지영 씨가 졸업식에 가지 않겠다고 하였을 때, 김지영 씨의 아버지가 “넌 그냥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하자, 당사자인 김지영 씨보다 더 빨리 더 크게 분노하며 남편을 질타하고 김지영 씨에게는 절대 얌전히 있지 말고 막 나대라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김지영 씨의 엄마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입에서, 직업 선택기준의 1순위로 ‘여자’라는 성별이 나왔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규정한 ‘직업’의 정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입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적성과 능력이지 성별에 따른 구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지영 씨의 어머니도 이를 모르지는 않으셨겠지요. 애지중지 키운 딸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자기 이름을 가지고 계속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보다 컸을 테지만, 자신이 살아왔고 또 주변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여자의 삶, 즉 결혼한 이후의 출산과 육아라는 육중한 현실 앞에서, 어머니는 딸과 같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말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여성의 결혼과 출산, 육아는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가장 큰 변곡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경력단절 여성이 된 사유가 육아(41.1%), 결혼(24.9%), 임신·출산(24.4%)이라는 답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기혼여성의 고용현황, 통계청, 2024).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이러한 사유들로 인해 딸이 애써 잡은 일을 그만두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큰 딸이 마음에 품은 파릇파릇한 꿈은 알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덤덤하게 권유했던 것이지요.


김지영 씨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여자가 일을 하더라도 ‘아이는 여자가 키우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인식은 아닌 거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집 밖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맨 처음 받는 질문은 “애들은 어떡하고요?”라고 합니다(마음 가면, 브레네 브라운, 116p). 저 역시 임신하면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질문을 한 사람이, 딱히 저와 나눌 말이 없는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아니까 으레 던지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울 것 같은데, 아이 아빠인 저의 남편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라고 하니, 질문 안에 담긴 일하는 엄마에 대한 굴레가 느껴져서 마음이 찝찝합니다.


위와 같은 인식은 행동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소설 속 김지영 씨 회사의 상사였던 김은실 팀장의 후배의 퇴사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아휴직 복직 후 몇 달 만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본인이 부재한 육아의 공백을 다른 누군가로는 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김지영 씨 어머니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이 소설의 다른 장면에서 드러나서 참 씁쓸합니다). 맞벌이 부부의 고용방식과 일의 형태는 천태만상일 수 있지만, 여자와 남자 모두 가정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인데, 유독 여자에게만 쏠리는 육아의 세계, 이 막막한 현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육아는 과연 가정 내의 개인적인 문제일까요? 두 발에 족쇄가 묶인 듯 자기의 이름은 잃어버리고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한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비혼을 선언한 딸, 결혼은 하지만 아이는 낳지 않은 딩크족, 아이는 하나만 낳자고 이야기하는 부부… 이러한 중차대한 결심에 단 한 가지 이유만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어느 한 사람의 끝도 없는 희생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일부 있지 않을까요?


아프리카 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려면, 그 아이의 가정 하나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럴진대, 가정 내에서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제5화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함께 사는 삶, 나누어야 할 무게’는 육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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