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엄마만 왜 성이 달라요?

자녀의 성·본 선택권은 여전히 작동하지 않는다

by 장유미 변호사
두 사람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식탁에 나란히 앉아 빈칸을 채웠다. 정대현 씨는 한 획에 한 번씩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본관의 한자를 그렸고, 김지영 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본관 한자를 적어 보는 것 같았다. 다른 빈칸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채워 갔다. 정대현 씨가 양가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를 미리 확인해 두어 부모님 인적 사항도 잘 적었다. 그리고 5번.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어떻게 할까?"
"뭐?"
"이거. 5번 말이야."

정대현 씨는 소리 내어 5번 항목을 읽더니 김지영 씨를 한 번 보고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나는 정 씨 괜찮은 거 같은데 ……. "

1990년대 말, 호주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생겨났다.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있었고,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고통받았던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유명인들도 있었다. 그즈음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던 싱글맘이 뒤늦게 나타난 친부에게 아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김지영 씨는 그 드라마를 통해 호주제의 불합리를 알게 되었다. 물론 호주제가 폐지되면 국민들이 부모형제도 못 알아보는 금수가 되고, 온 나라가 콩가루 집안이 될 것처럼 펄쩍펄쩍 뛰는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2005년 2월에 호주제가 헌법상의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왔고, 곧 호주제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민법이 공포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제 대한민국에 호적 같은 것은 없고, 사람들은 각자의 등록부를 가지고 잘 살고 있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인신고 할 때 부부가 합의했다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

"아직은 아빠 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엄마 성을 따랐다고 하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설명하고 정정하고 확인해야 할 일들도 많이 생기겠지."
김지영 씨의 말에 정대현 씨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으로 '아니요' 칸에 표시를 하는 김지영 씨의 마음이 왠지 헛헛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130~132p




소설 속 김지영 씨는 배우자인 정대현 씨와 나란히 앉아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합니다. 남남으로 각자 따로 살던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산지, 정확하게 한 달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가족과 친지, 지인들을 불러 모아 결혼식을 한 이후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에서는 이들의 결합을 알 길이 없기에,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여 국가에 제출하기 전까지 법적으로 두 사람은 여전히 남남입니다. 이처럼, 혼인신고는 일생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두 사람을 서로의 법적인 보호자 관계로 만들어줍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두 사람의 자녀의 성과 본도 이 혼인신고로 인해 미리 정해집니다(향후 변경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부, 모, 또는 자녀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하여야 하는 매우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소설에서 잘 설명하듯이(때때로 이 소설이 르포처럼 읽히는 것은 위와 같은 정보의 성격이 강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일 겁니다), 호주제가 폐지되기 이전에는 자녀에게 성과 본의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부성강제주의가 그 당시 제도였지요.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계속적으로 바뀌었고, 그 변화를 지지하는 물결은 날로 커져갔습니다. 호주제는, 어느 날 갑자기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 1975년, 1986년, 1988년 등 호주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지속적으로 발의되었고, 1999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호주제 폐지 권고 결의를 하였으며, 2001년에는 호주제가 헌법에 반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얻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했습니다. 민법이 시행된 1960년부터 존재한 호주제가 폐지되기까지 45년이라는 지난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호주제를 지지하던 가치관은 더 이상 제도의 틀 안에서 머물 수 없었습니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을 서열화하였기에, 개개인의 평등을 존중하지 않고,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가족관계를 조장하였습니다. 또한, 호주 사망 시 상속 1순위는 장남이었기에, 아들이 딸보다 중요하고, 아들이 손윗사람인 어머니나 누나보다도 상위에 있다는 남존여비, 남녀차별의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역할도 하였을 것입니다. 호주제가 존재하였던 시절에는 법과 제도가 이러한 기치관을 공고히 했겠지요. 악법도 법이기에, 누구도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변화가 이루어진 그 시점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는 목표의 도달점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이어 나가야 하는 시작점입니다. 어떤 규칙 안에서 우리가 살아갈 것인지는, 원점으로 돌아온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호주제 폐지와 함께, 부부는 자녀의 성을 부모 중 누구를 따르게 할 것이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가치관에 부합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렇지만, 남자어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거나 ‘정상적이다’는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원칙과 우선순위는 여전히 ‘부의 성과 본’으로 되어 있는 법조문의 형식도, 모의 성을 따른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을 삐딱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모의 성과본을 우선적으로 따르는 경우는, 아버지가 외국인이거나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이므로, 이처럼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선택권이 주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를 선택하게 되면 피할 수 없는 선입견이 함께 따라오게 될 터인데, 과연,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한 걸까요?


소설 속 김지영 씨는 ‘5.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질문 앞에 멈춰 섰고, 남녀평등에 관하여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 모든 것을 배우자인 정대현 씨와 논의하지는 않은 채, 자신의 손으로 '아니요' 칸에 표시를 하면서 마음이 헛헛했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13여 년 전 혼인신고서 앞에 서 있던 저를 소환했습니다. 저 역시 5번의 질문에서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때 ‘예’를 표시하였다면 지금의 제 아이들은 저와 같은 성을 사용하겠지요. 가끔, 아이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왜 엄마만 성이 다르냐고요. 부끄럽게도 그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 아이들이 저의 성과 본을 따랐다면, 왜 아빠만 성이 다르냐는 질문이 똑같이 나오겠지요. 그래서 ‘부모 성 함께 쓰기’가 주창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1997년에 처음 화두에 오른 ‘부모 성 함께 쓰기’의 공식적인 통계는 찾을 수 없지만, 그 사용비율이 높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법적으로 부모의 성을 하나씩 가져와서 성으로 삼는 것은 불가하기에, ‘부모 성 함께 쓰기’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움직임입니다. 이 목소리가 말하는 것은, 부모의 성을 형식적으로’만’ 함께 쓰자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선택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부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되어 있는 현실에서 마주치는 각종 불평등과 차별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인식과 의식으로 읽힙니다. 현상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깨어 있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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