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낙찰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집행이 멈췄을 때 다시 세워야 할 구조

by 장유미 변호사

멈추지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 정공량, <멈추지 말라고> 중에서






달뜬 마음으로 성공한 낙찰

그분은 2025년 10월 15일, 경매에서 부동산을 낙찰받았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공간이었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곳의 관리비가 석 달치 밀려 있었고 단전·단수 예고가 붙어 있었지만,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비용 이삼백만 원, 연체 관리비 등 과거의 무게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요구는 삼천만 원이었습니다. 낙찰에 참여한 다른 후보자로부터 이사비용으로 삼천만 원을 받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데 당신 때문에 틀어졌으니 책임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소통이 가능한 협상의 언어가 아니라 일방적인 압박의 언어로 다가왔습니다. 점유회복이 늦어질수록 신규사업에 차질이 빚어지기에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지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한 요구라는 것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낙찰대금을 완납하자마자 실제 점유자인 남편을 상대로 부동산인도명령을 신청하여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제집행일, 문은 열렸지만

집행관과 함께 현장에 갔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그 안에는 사업자등록증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점유자의 아들 명의였습니다. 사업개시일은 2025년 10월 17일로, 그분이 낙찰받은 지 불과 3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집행을 지연시키기 위한 의도가 짙어 보이는 순간, 집행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제3자 명의 사업자등록이 있으니 집행이 어렵겠습니다."

그분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섰습니다. 그분 손에는 법원이 허락한 부동산인도명령서가 있었지만, 점유자 아들 이름으로 된 사업자등록증 한 장이 그 강제집행 절차를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강제집행 당일이 되었지만, 그 공간은 아직 그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대로 받아들여야 하나요

집행관은 현장에서 점유관계를 판단합니다. 새로운 점유자가 존재한다고 보이면 집행을 멈출 수 있습니다.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 그 제도를 미리 읽고 움직인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자등록증이 곧 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점유란, 그 공간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태, 즉 누가 간판을 달았는지, 누가 물건을 관리하는지, 누가 우편을 받고 세금을 내는지의 문제입니다. 법원은 종이 위의 이름만이 아니라 이에 부합하는 현실을 봅니다. 낙찰 사흘 뒤, 가족 명의로 이루어진 사업자등록. 이를 경매와는 무관한 독립적인 제3자 점유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준비를 권한 이유

저는 그분께 두 가지를 병행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입니다. 집행관이 실질적인 점유관계를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독립된 점유자가 아니라 아버지를 돕는 보조적 위치에 불과하다는 점, 실질적인 점유는 여전히 아버지라는 점을 자료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누가 실제로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들, 그것이 이의신청의 결과를 달리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들을 상대로 새로운 인도명령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혹시 법원이 아들을 독립된 점유자로 볼 경우를 대비한 예비적 장치입니다.

위와 같이 서로 다른 주장을 동시에 하는 것이 혹시 모순일까요? 아니요. 현실에서는 ‘혹시’를 대비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이 낙찰대금을 완납한 이후부터 상대방의 점유는 법적으로 정당한 권원이 없습니다. 그 기간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 청구 역시 가능합니다.


소통의 벽에 부딪친 상황에서의 협상은 선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옹고집으로 버티는 상대방을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구조를 먼저 세워야 비로소 대화다운 대화가 시작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그분은 한숨을 쉬며 물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 질문은 절차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왜 법을 지켜려는 사람이 법을 어기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절차를 감당해야 하느냐’는 억울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낙찰자는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 대금을 완납했고, 법원의 결정을 받아 인도명령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허탈하게 다가옵니다. 저 역시 그분의 억울함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공감하는 것과 이에 기대어 판단하는 것은 다릅니다. 공감은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고, 판단은 구조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집행이 실제로 가능해지는 구조를 만들고, 법원이 다시 판단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고, 상대방이 버틸 수 없도록 객관적인 틀을 세워두는 합법적인 절차를 차근차근 밟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번거로워 보여도 결국 가장 빠른 길이 됩니다. 법은 때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가장 곧은길을 택하는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경매에서 낙찰을 받는 순간 많은 분들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낙찰은 시작일 뿐이라고. 권리는 종이 위가 아니라 현실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분의 사업은 아직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며 그 사업의 기틀은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오래 돌아가지 않도록 가장 짧은 길부터 함께 걷겠습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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