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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공 Mar 02. 2024

우울은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울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연관된 개념은 슬픔이다. 강한 슬픔이 선제적으로 수반되고 그 원인에 대해 부차적인 현상이 우울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우울은 그렇지 않다. 우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명확한 병터 없다는 부분이다. 

외상이 아닌 내상이며 병터가 분명하지 않는 만성적 질환. 


 어떤 병인지 모르고 이 한 줄만 들었을 때, 의학적으로 접근은 도저히 쉽지 않아 보인다. 자신조차 인지하기 쉽지 않다. 누군가가 자신이 슬프다고 표현하는 경우는 어떠한 원인이 되는 사건이 존재하고 이것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우러나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은 다르다.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늘 불어 닥치는 공허함과 무기력감이 걸친 복합적인 감정이 나를 침전시킨다. 정리하자면 우울함은 슬픔이 선제적으로 수반되지 않고 무의미와 부조리함이 먼저 찾아와 슬픈 감정이 나타난다. 애초에 우울해서 슬픈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조차 설명하기 버거운 추상적인 상태를 타인에게 공감하고 의지를 바라는 것은 상호관계에 있어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MDE(Major Depressive Episode)의 진단 기준에는 Empty나 Hopeless는 Sad 같은 범주에 속해있다. 우울감에 있어서 무망감과 공허함은 슬픔과 견주 할 감정이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 안 속에는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놀랄 만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 상태이다. 진공의 음압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흡수하게 되고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분간할 상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도 본인도 알기에, 자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편히 털어놓기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본인의 가능성에 대한 모든 상황정리끝나 있는데, 나와 같은 공허한 공간에 타인을 끌어들여서 무엇을 바라나. 그렇기에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토로하지 못한다. 곁에 있는 사람마저 떠나게 된다면 나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고, 공허함은 더욱 가중화될 것이니 말이다.   


 공허함을 이해하기 위해선 들뢰즈의 피로와 소진이 다른 개념임을 알아야 한다. 무기력과 공허함은 모든 가능성에 대한자신만의 판단이 결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찾아온다. 무기력에 대해서 첫째로 피로한 인간은 "더 이상 무언가를 실현하기 힘든 신체의 무력 상태"를 의미한다. 가능성의 여지가 무한히 남아있다. 하지만 소진된 인간은 모든 욕구, 선호, 목적 그리고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는 상태'이다.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그 사람의 가능성이 존재하든 하지 않든, 판단의 주체는 본인 자신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모든 가능성은 이미 소진되었으며 나에게 남은 선택에 있어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아무 방법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상태이다. 외부의 자극에 더 이상 반응할 수 없다. 인간에 있어 본질적인 부분은 이미 탄생의 순간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주체가 노력을 포기하고 싶어서든 노력에 대한 실패에 낙담을 한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자기 자신이 무기력에 빠진 상태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을 위로함에 있어 그 사람의 노력에 대한 옹호와 가능성에 대한 타자의 판단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무기력으로 귀결되는 판단의 과정을 이해해 주는 것이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이 세계에 남아있다는 사실로도 나는 고립되어 있는 존재가 아닌 아직 세상에 연결되어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서 이어지는 자살은 그 사람이 처음부터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아무련 미련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죽어도 상관없다'라는 심경이 강해진다. 그런 상태가 이어지다가 외부에서 역치를 넘는 어떠한 자극이 생겼을 때 선택을 시행한다. 그렇게 삶을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부조리를 느낀 뒤, 어떠한 트리거가 더 해져서 자살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원인을 자신의 이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의 결핍이 우울로 이끈다. 결국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불변의 사실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항시 추구하고 쫓아가는 삶, 그 사이에서 어떠한 경로를 설정하지 못해 생기는 딜레마로 인해 혼돈은 야기된다. 혼돈은 결국 방황과 이루지 못한 이상으로 인한 공허로 침체된다.


우울한 사람은 ADHD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데, 이는 어떠한 것에도 의미와 재미를 찾지 못해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지향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어떠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집중력 저하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저하된 질을 나타낸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나 자신의 직업적인 퍼포먼스에서도 악영향을 나타내게 된다. 결국 목표의 상실로 인해 게으름이 나타나게 되고 자존감저하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게 된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병이기에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나만의 글로 승화시켜 내 속 마음을 정설인 것 마냥 써내려 본다. 내가 나중에 이 세상에 존재 않게 될 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의 글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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