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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별 Sep 08. 2024

용문사의 은행 나무

 

 서울에서 차를 타고 나가면 금새 도착하는 곳 양평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산과 강, 호수의 풍경이 아름다운 지역이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발랄한 십대 이십대 때는 양평의 풍경을 보며 심심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중년의 나이가 되니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된다.


 양평의 대표적인 사찰 용문사를 찾아간 시기는 내 나이 이십 대 후반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가족처럼 오붓하게 잘 지내던 교회 청년부 선후배 친구들과 함께 양평의 어느 펜션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교회 모임이니 음주가무가 없는 대신 끝없는 수다와 게임, 심리 테스트 등을 이어나가며 밤을 꼬박 지새웠다. 당시 사립 남자 중학교의 임시 교사로 일하는 직장인이면서 주말이면 교회 청년부 모임에 나가는 일을 꽤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 역시 시간을 내서 일박 이일 엠티에 참여했고 모든 프로그램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유행하던 멜빵 청바지를 입고 가방에 간단한 짐 싸들고 나섰던 내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용문사의 은행나무> 작품의 일부

 두번째 날 오전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모두 양평의 명소인 용문사를 들러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용문사의 정경이 멋스럽고 특히 1100년 정도의 나이를 먹었다는 거대한 은행 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누군가로부터 들어 궁금한 마음으로 찾았다.

 맑고 포근한 봄날 오전에 친숙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가벼운 산길을 올랐다. 운치 있는 절인 용문사를 지키며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던 은행 나무의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 나무를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비탄의 마음으로 금강산 가는 길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조선 세종이 이 나무에 벼슬을 내린 바 있으며 나무의 신령함에 관하여 전해지는 전설도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아득한 세월에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어 사람들이  ‘천왕목(天王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신성시했다고 한다.


 그 날 내가 입고 간 헐렁한 멜빵 청바지(패션 용어로는 오버롤이라 함.)와 나의 부주의는 용문사에서의 잊지 못할 사건을 하나 만들었다. 오래된 절이라 야외의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했는데 개인 칸에 들어섰을 때 입구가 커다란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 미끄러져 긴 직사각형의 틀 너머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눈 앞에서 벌어진 순간적인 사건을 보고 머릿 속이 하얘졌지만 되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뒤였다

 전날 밤을 새워가며 게임과 심리 테스트, 수다에 열심히 참여해서 피곤했던지라 나의 바지 주머니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무신경이 만든 참사였다.

 살갑고 후배들을 잘 챙기던 청년부 선배님들이 자신이 가진 안 쓰는 휴대폰을 빌려주겠다는 제안들을 하며 달래준 덕분에 휴대폰을 상실한 순간의 충격을 잊을 수 있었고 한동안 청년부 안에서 나의 일화가 황당하고 우스운 일로 회자되곤 했다.


<용문사의 은행 나무>  67x54cm  acrylic on wood  2024

 사람에게는 시간이 흐르면 추억 중에서 아름다웠던 일만 골라서 기억하는 편집의 능력이 있나보다. 양평의 용문사 하면 젊은 날 그 젊음처럼 맑고 푸르렀던 봄날에 마음 맞는 사람들과 떠났던 일박의 여행과 즐거웠던 시간 그리고 천 년이 넘은 유서 깊은 역사만큼이나 웅장했던 은행 나무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좋은 기분과 함께 떠오른다. 휴대폰을 뒷간에서 잃어버렸을 때의 당황스러웠던 기분은 말끔히 사라져 이렇게 피식 웃음 짓게 하는 해프닝의 하나가 되었다.


 봄꽃이 만발한 양평 용문사를 그리신 아버지의 수채화를 보고 용문사에 대한 나만의 기억을 소환하여 일박 여행을 떠날 때 짐을 쌌을 것 같은 가방 이미지 속에 은행 나무를 그렸다.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한 추억 속의 은행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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