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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Oct 12. 2022

너나 잘하세요~

엄마 잔소리와 내 잔소리


엄마 잔소리


어릴 적부터 엄마의 지긋지긋한 잔소리를 들었다. 어린 나를 키운 것의 팔 할은 바람이 아니라(서정주詩'자화상'中) 엄마의 짜증 섞인 신경질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서너 시간씩 계속되기도 했다. 우리 엄마의 징글징글한 잔소리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는 엄마에게 멀쩡한 곳은 입뿐이다. 아직도 잔소리만큼은 쨍쨍한 목소리와 더불어 건강하다. 엄마는 참는 것이 없다. 생각을 그대로 말로 뱉어냈으니, 아마도 엄마의 가슴속과 머릿속은 꽃밭일 것이다.



"내가 아프다고 하믄 아무리 멀리 살어두 한 번은 왔다 가야 하는 거 아녀? 지가 비행기라두 타구 가야 하는 외국에 사는 것두 아니구, 차 있겄다. 암만 멀어두 몇 시간이믄 올 수 있는 거리 아니냐? 근디 다녀가는 건 고사하고 어쩌믄 전화 한 통을 안 한다니~ 저두 자식 키우고 늙어가믄서 그래두 된다니? 그래 봐야 좋은 꼴 못 볼 것인디~ 나한테 하는대루 고대루 자식덜한티 받을 거여~ 잠두 잘 못 자는디, 밤마다 내가 한 시간 한 번씩 전화해서 괴롭힐 거여~ 지가 엄마 싫다구 전화 안 하는 거나 내가 저 괴롭히는 거나 그게 그거니께~ 한번 당해봐야지~ 그래두 정신 못 차릴 테지만~!"



아프다는데 와 보지 않았다며 아들에게 밤마다 전화해서 잠을 못 자게 괴롭히겠다고 한다. 서운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일주일에 몇 번씩 내게 전화해서 하소연하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열 번 스무 번 되풀이한다. 귀에서 피 가나다 못해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오빠보다 듣는 내가 몹시 괴롭다. 이쯤 되면 도대체 괴롭히려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엄마 앞에서는 아직도 열 살짜리 힘없는 아이가 돼버리는 나는 '엄마, 이제 그만 좀 해! 그만 좀 하라구~!'라고 목까지 올라오는 을 삼다.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한다. 걱정돼서 란다. 전화기에 '엄마'라는 두 글자가 뜨면 가슴은 두근거리고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어쩌다 목소리라도 냉정하게 받고 나면 함께 살고 있는 동생에게 화살이 간다.


"느이 언니가 내 병원비나 내구 데리구 다닌다구 유세를 하는 건지 아주 말하는 게 찬바람이 쌩쌩하다. 오십 년 두 넘어서 기억두 안나는 일을 가슴에 넣구 있으면서 지랄을 하질 않나~ 내가 돈이 썩어 나는 디두 저를 학교에 안 보냈것니? 탓을 할라믄 무능했던 죽은 느이 아부지 탓을 해야지. 고생 고생하구 산 내 탓을 한다니? 너두 생각해 봐라~ 내 말이 틀리는가~"



 한계가 온 동생이 내게 전화한다.


"언니, 힘들어두 엄마한테 전화오믄 부드럽게 받어, 언니가 싸가지없이 쌀쌀맞게 전화받었다구 벌써 몇 시간째 사람을 얼마나 들볶는지 몰라, 엄마 저러는 거 하루 이틀두 아닌데 어쩌겠어, 날 봐서라두 언니가 부드럽게 전화한 번 해줘~!"





내 잔소리


나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잔소리는 예고 없는 재채기와 같다. 그렇다고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잔소리의 대부분은 쓸데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난 추석 때의 일이다. 큰 아이네 식구와 함께 차를 타고 성묘를 가는 중간에 주유소에 들렀다. 셀프주유소였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차문을 내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경윤지 휘발윤지 잘 확인하고 넣어~!"




명절이기도 하고 아이들도 오는 만큼 음식을 이것저것 평소와 다르게 만들었다. 고기나 전과 같은 기름진 음식이 많았다. 먹는 것을 바라보다 한 마디 한다.


"느끼하지 않니? 김치 먹어! 김치~"




서울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해서 아직 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아들이 뒤늦게 차를 산지 반년이 되었다. 어느 날 내려와서 우리 집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마디.


"오른쪽으로 좀 붙여야 할 것 같아~"




지난겨울 추운 날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해 첫겨울을 보내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난방은 잘 되는지, 단열은 어떤지, 창문 틈으로 센 바람은 안 들어오는지..


"괜찮니? 지낼만하니?"


전화를 하려다 스스로 깜짝 놀란다. 모두 결혼해서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내게서 독립한 지 오래된  까닭이다. 친구네 아들이나 아래층 집 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살펴줄 보호자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낼 수 있는 지금 잠깐 동안 아이들에게 짐 되지 않게 나만 잘 지내면 된다. 그런데 누구도 원치 않는 넓은 오지랖은 무엇인가? 입장을 바꾸어 결혼한 내 남편에게 시골에 혼자 사는 시어머니가 걱정된다면서 저런 전화를 자주 걸어온다면 어떨까? '엄마에겐 나이 많은 아들도 아이 같겠지'라고 마냥 이해하는 마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것인지. 아마도 들과 며느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참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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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엄마)나 잘하세요~!"

 

나는 엄마처럼 늙어갈까봐 꿈에서조차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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