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패러다임에는 권력성과 집단성이 내재되어 있다. 패러다임은 소위 ‘집단지성’의 다른 말이다. 집단지성이 개인의 생각에 비해 더 양질의 정보를 함축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일리가 아닌 진리가 될 경우, 다시 말해 패러다임이 권력성을 띨 경우 그것은 왜곡되기 시작한다. 집단성은 항상 권력성을 띨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개인의 의견은 그저 의견으로 치부되지만, 집단의 의견은 거역해서는 안 되는 ‘정언명령’이 된다.
어느 특정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을 때는 해당 패러다임에 반하는 생각은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패러다임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자기의 생각을 외부로 표현하려고 시도할 경우 패러다임에 내재된 압도적인 상징폭력에 시달릴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위대한 인물이 사후에 재평가받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 자는 동시대 인들에게 엄청난 학대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죽은 후에야 명예의 상징인 월계관이 주어졌지만 월계관을 쓸 수 있는 머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