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행정의 질식할 듯한 바이브

해체!

by Edit Sage

-일대일로 서류를 대조해서 하나라도 불일치하면 돌려보내라.

-고딕체가 아닌 신명조를 사용해라.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서 되겠는가.

-판결문의 격자를 맞춰라. 외양이 아름답지 않으면 조직의 대외적인 위신이 떨어진다.

-볼펜이 아닌 연필을 사용한 서류는 받아서는 안 된다.

-도장 찍는 위치가 잘못되었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능한 자이다.

-악성민원인이 큰소리를 내게 하지 마라. 당신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생긴 것이다.

-팩스는 되도록 사용해서는 안 된다.

-상급자에 대한 의전을 최우선순위로 두어라.

-무례한 말을 듣더라도 웃으면서 대처하라.

-인사가 인사다. 비록 나는 인사하지 않더라도 너는 인사해야 한다. 내가 상급자이기에.

-이빨을 보이며 웃어라. 내가 겁먹지 않도록.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지 않도록.

-내가 부르면 만사를 제치고 와야 한다. 너의 업무가 많은 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겸손이야말로 최고의 덕목이다.

-옷은 최대한 젊잖게 입어야 한다. 신입사원 주제에 나보다 세련된 옷을 입고 다니는 ‘당신의 허영심’이 기분 나쁘다.

-어디 신입사원이 건방지게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가. 나도 안 끌고 다니는 마당에.

-상급자 앞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눈을 깔아라.

-기수 앞에 무릎을 꿇어라.

-어떻게 사람을 무시할 수가 있는가. 모두가 평등한 사람 아니겠는가. 비록 나는 상급자이기에 너를 무시할 수 있겠지만.

-정당한 명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하지 말라.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반론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건방진 놈으로 소문나고 싶지 않다면.

-술은 마시지 않아도 된다. 다만 술 자리에는 같이 있어야 하겠지만.

-조직에 섞여라.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다면.

-조직이 베푸는 ‘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당신은 이기주의자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수평적인 조직이다. 여기에 불만을 가지는 당신이 불평분자일 뿐이다. 설령 조직에 병폐가 있다고 할지라도 조직의 생리를 이해 못하고 격분하는 당신은 애송이에 불과하다.

-당신은 아직 어리다. 다 같이 똥을 묻히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홀로 고고하게 서 있으니.

-나의 요구가 최우선이다. 다른 상급자의 요구사항은 내 알 바가 아니다.

-예산은 내 알 바가 아니다. 우리 부서에 우선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업무 분장이 잘못되었다. 어떻게 내가 상급자임에도 불구하고 업무가 더 많을 수 있는가.

-내가 상급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명절에 당직을 세울 수 있는가.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보다 상급자의 일처리에 불만이 있다면 해당 부서의 하급자를 털어라.

-하급자의 규정상 명분을 깨부수기 위해서 해당 부서의 상급자를 움직여라.

-우리 부서의 가시는 너무도 아프다. 그러므로 당신 부서에 대못을 박겠다.

-곤란한 자리에는 신입을 앉혀라. 전장에서 총알받이는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곤란하거나 귀찮은 일이 있으면 하급자에게 떠넘겨라. 내가 상급자이므로.

-당신의 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당신의 자리를 내가 차지하겠다. 그러나 힘들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겠다.

-업무를 떠넘긴 것을 들킬 수 있으니 내가 떠넘긴 업무를 처리하는 담당자보다 먼저 선수쳐서, 그가 나에게 업무를 떠넘겼다고 주변에 광고해라.

-민원인의 마음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관할이 겹치는 다른 조직으로 가게끔 유도하라.

-일을 빨리하고 정확히 하는 자에게 업무를 몰아주어라. 거기에 불만을 제기하면 불평분자로 낙인 찍어 노예계약서를 작성하라.

-난처한 상황에서는 신입에게 뒤집어 씌어라. 언제든지 꼬리 자르기를 할 수 있도록.

-명분이 생기는 즉시 나보다 우월한 자의 목을 쳐라. 기선 제압만이 내 입지를 확보하는 길이다.

-‘멋’이 있는 직원은 세력 내로 끌여들여라. 그러나 그 자가 좀처럼 세력 내에 편입되지 않는다면 그 자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업무상 과실을 명분 삼아 똥물을 끼얹어라. ‘멋’ 없는 우리와 같아질 수 있도록.

-타부서의 실수는 완벽한 기회이다. 우리 부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여기저기 첩자를 심어두어라. 언제든지 ‘법원 가족’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너무도 섭섭하다. 당신은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나의 발바닥을 햝지 않을 수 있는가.


작은 생각, 작은 말, 작은 행동, 작은 자아. 질식할 정도로 좁디좁은 세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뻔뻔스러운 낯짝. 사랑해주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졸렬한 정치 공학. 피눈물을 흘리며 발악하는 소리없는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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