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찾아간 서울 금남시장 근처 주짓수 도장. 분명 초심자를 위한 여성 주짓수 원데이 클래스였는데, 왜 이미 강하고 단단한 분들만 모여있나요? 도장을 둥글게 둥글게 달리던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분명 '이 정도면 할만한데?'라고 야심 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만의 순간은 짧았다. 클래스가 끝날 때쯤에는 연습 파트너 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버둥거리며 "제가 너무 약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하고 있었다.
하얀 반팔 티와 반바지를 입은 것이 나다. photo by 위밋업스포츠
선생님은 "살아남아야죠"하면서 힘을 내라고 하셨지만, 난 멸망의 순간에 생존하려면 난 한참 멀었다고 직감했다. 선생님께 배운 쉬림프 자세는 생각나지도 않았고, 아무리 힘을 주고 용을 써도 상대는 반대 편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다운 독' 자세로 엎드려 서로의 손등을 치고, 맞은 사람은 팔 굽혀 펴기를 하는 마무리 게임에서는 연신 손등을 맞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팔에 힘이 다 빠져서 되지도 않는 푸시업을 하며 "정말 빠르고 강하시네요"라며 파트너를 칭찬하고 있었다. 후들거리며 집에 와 샤워를 하려니 발등에는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고, 양 어깨 위에는 붉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다음 날 어깨와 가슴 근육통으로 아팠다.
집에 와서 보니 멍과 손자국.... 그래도 재밌었다.
사실, 나는 약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엎드려 책 읽기를 좋아했기 때문인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10살 때부터 칠판이 흐리게 보여 안경을 썼고, 지금은 -10 디옵터 정도 되는 초고도근시다. 20년 간 운동을 하려면 렌즈를 착용하거나 도수 있는 수경을 맞추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살도 빼고 체력도 올리자며 큰맘 먹고 운동에 재미를 붙이는 시절도 있었지만, 인생 평균적으로는 운동을 싫어한다. 다른 이를 내 손으로 때려본 적도 없고, 체벌 외에는 맞아본 적도 없다.
그래도 자꾸 이 운동 저 운동해보며 조금이라도 재밌게 할 만한 운동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주짓수도 호기심만 갖고 있던 운동인데, 위밋업스포츠라는 여성 운동 플랫폼을 알게 되고 농구, 배구, 수영 등 다양한 운동 사이 주짓수 클래스를 보자마자 주저 없이 신청해버렸다.
몸은 약해도 마음만은 강인하다는 것이 자랑이었는데, 20대를 지나고 회사를 다니며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따라 약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체력이 조금 떨어져도 원체 높은 에너지 레벨 덕분에 과감한 선택과 도전 앞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젠 점점 귀찮고 버거워졌다. 이제야 "내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이기고 싶다면, 니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라"는 미생 속 대사에 사람들이 공감한 이유를 알았다.
재밌는 운동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운동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운동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자. 심신이 나약해져,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살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강인한 몸으로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를 내 손과 의지로 선택하고 조각해나가는 30살이 될 거니까. 하지만 주짓수는 몸이 조금 더 단단해진 뒤 다시 가려고 한다. 다음 운동은 킥복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