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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Jul 02. 2023

자연이 아름다운 호주에서 먼지 알레르기 진단을 받았다.

계절이 바뀌고 기온이 차가워지는 때가 되면 아이 얼굴이 까슬까슬해지기 시작하며 극건성의 피부트러블이 올라온다. 이것이 도대체 어떤 원인으로 인해 시작되는 것인지 아이가 6살이 넘도록 아직도 알지를 못했다. 특별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바람이 불어와서 따라 날아온 꽃가루, 나무가루인지 혹은 면역력이 약해 기온이 떨어지면 피부가 반응하는 것인지. 하여튼 그 쯤 어디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올 때에는 얼굴이 붓기도 하고, 몸에 모기 물린 것처럼 붉은 점들이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동네 지피(의사)를 찾아가 보아도 호주에서는 늘 듣는 답은 한두 가지로 수렴되는 게 현실. 그 덕분에 우리 집에는 갖가지 항히스타민들과 스테로이드 연고, 보습에 특히 좋다는 프랑스제 바디크림들이 넘쳐난다.


알레르기 증상이 시작되면 이 모든 약들이 총출동되어 아이에게 발려지고 먹여지지만, 약 때문에 증세가 호전되는 건지, 시간이 흐를 만큼 흘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치유된 것인지조차도 아직 잘 모르겠다. 1살 무렵부터 시작된 아이의 이유 모를 알레르기로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주 방학이 시작되고 아이의 피부에 스멀스멀 그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테로이드 연고에 너무 의지를 하고 있어서인지 발라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던 찰나,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관한 포스팅을 읽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바로 스테로이드를 끊고 천연보습제인 포포크림과 수도크림만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증세가 쉽사리 좋아지지 않더니 토요일이 되어가던 새벽, 아이 얼굴이 두 배만큼 커지고 얼굴 전체에서 진물이 얼굴에 발려진 천연크림들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로 아이를 둘러업고 새벽 1시가 넘어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37km밖에 안 떨어진(?) 공립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간호사들이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우리에게 바로 베드를 안내해 주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리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주는 응급실도 노약자 우선이지만, 이렇게 다이렉트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들이 보기에도 너무 심했던 거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이의 얼굴을 보니 집에서 출발할 때보다 더 많이 붓고 진물은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태가 악화된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몇 년을 알레르기로 고생했지만 이 정도였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면역력이 생기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지피들의 말에 희망을 갖고 아이를 키워왔는데 이지경이라니, 참담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결국 아이는 즉시 먹는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얼굴의 진물들과 엉켜있는 포포와 수도크림들을 씻겨내 보라는 응급실 의사말을 들고 세수를 씻기다가 아이 눈두덩이의 살갗이 다 벗겨져 피가 났다. 진짜 최악의 상황이었다. 씻기고 나니 아이의 눈을 포함한 얼굴 전체가 부어있고 벌겋게 피부에 열감이 올라와있었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토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집으로 돌아와 조금씩 나아지면서 월요일에 다시 새로운 지피를 만났다. 늘 지피를 보려면 하루이틀 기다려야 해서 막상 지피를 보러 가는 날엔 아이의 피부가 좀 진정이 된 후였고, 그래서인지 항히스티민과 스테로이드연고 처방만 받아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응급실에서 받은 진단서와 아이의 상태를 찍어두었던 사진들 덕분에(?) 면역학 전문의에게 진료를 보도록 예약을 하게 되었다. 알레르기로 고생한 지 5년 만에.


한국에서 부모님은 왜 환경이 깨끗한 호주에 사는데 그러냐며 답답해하셨지만, 사실 호주에는 알레르기환자가 정말 많다. 숲과 나무들, 다양한 꽃식물 등등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들의 알레르기 때문에 봄가을에 항히스타민을 타이레놀만큼 쟁여놓고 사는 곳이 바로 이곳 호주이다. 멜버른은 헤이피버가 심하기로 워나 유명한 지역이고, 시드니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퀸즐랜드도 헤이피버가 좀 있는 편이다. 몇몇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른 주로 이동하는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경험에 따르면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이 호주 땅 맨 꼭대기에 있는 다윈 같은 곳은 알레르기가 덜 심하다는 것이었다. 습도가 높아서 환절기,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되어도 바람을 덜 타고 가루들이 날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애초에 알레르기에 예민한 사람은 친환경적인 자연숲보다는 빌딩숲이 더 나은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피의 소견에 따라 딸아이는 당분간 스테로이드연고를 제법 액티브하게 바르며 피부진정에 힘쓰기로 했다. 스테로이드로 인한 부작용보다 더한 부작용을 (예를 들면 아나필락시스 같은) 피하기 위함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페셜리스트를 예약한 지 딱 3주 만에 드디어 첫 진료를 볼 수 있었고, 그날 바로 여러 가지 알레르기 검사를 마쳤다. 그 결과 먼지진드기 알레르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솔직히 먼지진드기 알레르기 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항상 온도가 떨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불 때 증세가 심했었기 때문에 한랭 두드러기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추운 날씨 때문에 우리가 사용했던 담요류 등의 침구류, 잘 때 안고 자는 인형들 등등 털이 있는 섬유들 때문에 생긴 알레르기였다니. 물론 호주집집마다 깔려있는 카펫이 가장 큰 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집에 오자마자 곰인형들과 이별을 고했고, 겨울 침구류로 자주 애용하던 극세사 이불과 담요들을 모두 창고에 정리해 넣었다. 그리고 스페셜리스트가 추천을 해주었던 알레르기 환자 전용 이불을 구입했다. 그렇게 원인을 알고 환경의 변화를 준 이후, 지금까지 몇 달째 증세가 눈에 띄게 완화되었다. 언제 그렇게 두드러기가 심했었나 싶을 정도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그 지난날들의 사진들은 추억의 한 편으로 남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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