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수업이 뭐라고..
첫 발표수업 주제가 발표되었다. 가족이 꼭 축하하거나 기념하는 날에 대한 것이었다. 생일이나 명절 등등 자신의 가족들이 특별히 기념하는 날이 언제이고, 그날은 무엇을 하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사람들이 초대되는지 등등 다양하게 그날에 대해서 발표를 하면 되었다.
그 안내문을 받아 들고 나는 내심 기대를 했다. 매 학기에 한 번씩은 꼭 하는 발표 수업이고, 작년에는 발표수업을 잘해서 상도 받았었고, 우리 아이는 늘 발표하는 걸 좋아하며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이기 때문에…….라는 이야기의 꼬리를 물어가며 이번에도 꼭 잘 해.내.서. 상도 꼭 받.아.내.리.라.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언제나 나는 아이보다 앞서는 게 문제였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어느새 저만큼 앞에서 아이를 재촉하는 내 모습이 다반사였다. 그걸 느끼는 순간엔 바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지만, 모든 걸 경쟁으로 느끼며 이기려고 하는 이 습성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싶었다. 나는 한국에서 30년을 교육받고 살았었으니까.
만 여섯 살 된 아이를 데리고 발표자료 준비하고, 양심상 달달 외우는 것까지는 좀 그런 것 같아서 수 없이 반복을 시켜가며(뭐다 다른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발표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나는 발표준비를 마쳤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발표 당일이 되어 아이에게 발표 시 유의 사항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며 두 손에 usb를 잘 쥐어 보냈다. 그날 나는 일을 하다가도 애가 발표를 제대로 했으려나, 우리가 하려던 말은 다 했으려나 생각하며 일에 온전히 집중이 안 되었다. 드디어 하교 시간이 되어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아이의 얼굴표정을 보니 잘한 것 같았다. 신이 나서는 가방도 제대로 안 챙기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과 눈인사를 하니 나를 보며 오늘 발표를 너무 잘했다고 했다. 집에 오는 길에 괜히 내가 더 신이 나서 오늘 발표를 어떻게 했는지 다시 해 보라며 애를 다시 재촉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우리가 준비했던 걸 어떻게 발표했는지 물어보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이야기가 좀 달라진 것 같고, 내가 묻는 말은 대답을 안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고. 나는 수상한 마음에 제대로 한 거 맞냐고 다시 되물었다. 그러자 딸아이가 나를 보며 대답했다.
엄마 미안해, 오늘 선생님이 컴퓨터가
안 된다고 해서 그냥 기억나는 것만 이야기했어.
사진은 못 보여줬고
노래하는 건 잊어버려서 못 불렀어
미안해 엄마.
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럼 넌 뭘 발표했다는 거야! 준비한 건 하나도 안 하고, 네가 생각나는 대로만 이야기하고 끝났다는 거야? 선생님한테 왜 컴퓨터로 사진 보면서 해야 한다고 이야기 안 했어! 네 거는 네가 챙겨야지! “
순간 나는 짐승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아이를 다그쳤고 아이의 얼굴은 이내 잿빛이 되었다. 모든 웃음기는 사라졌다. 그 며칠 그렇게 준비를 하고 엉뚱하게 발표를 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왜 아이는 자기 밥그릇을 못 찾는 것 같은지, 왜 선생님은 내 아이에게 성의껏 대하질 않는 것 같은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아이에 대고 나는 나무라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우는 게 다가 아니다 등등의 말을 붙여가며 아이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다음날까지도 뭐가 그리 분이 안 풀렸는지 등굣길 우연을 가장한 만남에서 나는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결론은 내가 만들어 보낸 ppt가 문제였다. 맥에서 작성한 내 파일이 윈도우에서 열리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실행을 못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생각을 더듬어 발표를 잘 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잘못은 내가 해놓고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며 얻어낸 진실이라고 할까?
아직도 나는 멀었다. 아이를 믿어주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경쟁 사회 속에 살아남는 게 너무 힘들어 이민 왔으면서 여기서 또 경쟁의 늪으로 기어들어가는 나라는 사람이 엄마라서 아이가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내려놓고 여유롭게 즐기며 살아보자.
그렇게 해보자 같이.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