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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Jan 30. 2022

잊지 못할 10주년 결혼기념일

큰 일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게 진정 맞나요? 

마음껏 행복하기만 할 순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5:5 혹은 6:4로 와야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닐까?


호주로 이민 와서 유학으로 인한 학비와 비자 변경 그리고 이사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리의 통장은 텅장이 된 지 오래이다. 어느 때는 급전이 필요하여 부득이하게 부모님들께 부탁을 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나이기 이제 불혹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호주에 사는 진정한 캥거루 족이 우리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 번 결혼기념일은 나름 우리에게 특별했다. 우리의 10번째 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특색 있게 보내고 싶었다. 돈 없다고 징징대지 말고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걸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사 노스쇼어로 여행을 갔다. 사진도 예쁘게 찍고 추억도 많이 남기고 싶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도착해서 그래도 몇 시간은 괜찮았다. 즐겁게 샴페인도 한 잔 씩 마셨고 수영도 했다. 사진도 많이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행복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는 게 아니겠는가. 초행길이었던 우리는 급히 짐을 싸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끊임없는 모래사장을 달리고 달리는데 갑자기 우리 차가 멈춰 섰다. 내려보니 엔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 번 경고음이 울리긴 했었는데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차를 너무 몰랐고 샌드 드리아빙은 더더욱 몰랐었던 게 문제였다.


우리 차는 망망한 모래사장 위에 멈추어 섰다.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 차 옆으로 차를 대고 상황을 살펴봐주었다. 엔진과열이 문제였다. 견인을 해야 하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와이파이나 통신은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총 두대의 4x4 차량이 우리 차를 견인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내일 출근할 일도 문제고 딸아이의 등교와 남편 출근까지.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우리 차는 결국 차량 두대와 연결되어 끌려나갔다. 우리의 결혼 10주년이었고 뒤에 앉아 있는 딸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왜인지 이 차의 신세와 우리가 같은 것처럼 느껴지며 마음이 정말이지 무척 착잡해졌다.


뭍으로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집으로 가려면 바지선을 타야 하는 상황이었고, 우리를 도와주었던 차들도 더 이상 우리를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우리 차를 그곳에 버려둔 채 우리 몸과 짐만 들고 일단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침 그 길을 지나던 다른 분이 다행히 태워주시는 행운이 함께 하긴 했다. 진정 우리 차량을 내어주고 히치하이킹에 성공하는 일을 주신 신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상황일까? 스스로에게 재차 되물었다.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집에 와서는 더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차가 그 먼 곳에 있다는 사실에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녁 8시가 넘어 견인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상황을 설명한 후 차를 일단 우리 집 앞으로라도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320을 지불하고 집 앞으로 밤 11시가 다 되어서 차를 가지고 왔다.


차마 무슨 말을 어떻게 서로 나누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리 부부는 그저 세차를 하고 내일을 위해 이것저것 정비를 했다. 당장 아이 학교와 남편 직장 때문에 집에 있는 다른 차량 하나는 남편이 쓰는 것으로 계획했고, 나는 아침에 버스를 타고 차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50분 만에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우리 차는 다음 날 무사히 정비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후 답변이 왔다. 우리는 차와 이별을 하기로 했다. 10주년 결혼 기념으로 폐차라니. 이런 힘들 일을 한 번씩 겪다보면 갑자기 이민 생활 전반에까지 영향이 미친다. 이 나라랑 우리가 뭐가 안 맞나? 


그래도 어쩌겠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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