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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가의 토토 Sep 06. 2024

나의 우울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내 안에 있는 나의 아빠

“엄마의 플레이 리스트는 우울하다 “고 했다.

숨기려고 부단히 도 애썼는데 예상치 않게 그런 부분에서 들켜버렸네.

아이들한테 나의 우울감이 전해질까 봐 아이들 앞에서 애써 연기를 했다.

다행히 유머 감각이 있는 엄마로부터 유머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가면을 쓰고, 아이들에게 최대한 밝은 기분을 선사하려고 연기를 한다.

아이들이 학교로 가면 난 비로소 가면을 벗고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남편은 나의 우울감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일 수도 있는데, 특유의 무심함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나의 우울감에 대해 대놓고 표현한 적은 없다. 그래서 남들은 나의 우울감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간 잘 연기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듣는 노래들은 어쩐지 다 우울하다. 마이너 감성의 음과 우울한 가사들에게 나도 모르게 끌렸었나 보다.



나는 혼자 있을 때면 나의 우울감과 자존감 바닥의 원인을 자주 찾곤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출연하는 유툽이나, 오은영 박사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를 대입해 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사실은 나는 이미 그 답을 찾고 있다.



나의 유년시절에는 엄마가 부재중이었다.

딸 넷에 아들 하나, 시골 깡촌에서 태어난 막내딸.

아빠는 그 시절 우리네 아빠 (최소한 내가 자란 그곳에서는 너무도 흔한 캐릭터)들처럼, 농사일이 끝나면 노름과 술에 찌들어 살았다.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 우리 집은 굉장히 부자였다고 한다.

특히나 홀로 되신 할머니는 인심이 그렇게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시골에 돌아다니는 보따리 장사들은 모두 우리 집에서 보따리 물건을 펼치고, 그 장사치들에게 무상으로 재워주고 먹여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집 논 밭에 붙어서 소작민처럼 농사짓는 사람도 여럿이었는데, 홀로 키운 할머니는 우리 아빠를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 예뻐라만 했지, 제대로 된 훈육을 할 줄 모르셨나 보다.

특히나 할머니 팔자에 자식이 없어서 아빠는 씨받이를 통해서 얻은 자식이었다. 모르면 몰라도 그 작은 시골 동네에서 소문이 쫙 퍼졌을 테니 어쩌면 훈육이 더욱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자칫하면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구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아무튼 아빠가 한참 클 때까지( 중학교 입학 할 즈음) 아빠는 본인의 엄마가 낳아주신 엄마가 아닌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하니 할머니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셨는지 대충은 알 것 같다.

후에 동네 어른이 (과한 친절로) 할머니가 친엄마가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셨고, 한참 예민할 나이에 아빠는 참으로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나의 우울감은 어쩌면 아빠의 흔치 않은 출생에서부터 기인됐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훈육 태도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까. 엄마의 사랑은 듬뿍 받았지만, 아빠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빠는 당연히 사랑을 주는 법도 몰랐다.‘아빠’라는 롤모델이 없었던 거다.

성격이 급하고, 열등감이 팽만한 아빠, 그래서 내가 너무 미워했던 그 아빠를 너무나 닮아버린 내가 지금 내 안에 있다. 내 뱃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려고 하면 자꾸 기어 나와서 나를 나락으로 잡아끈다.







내가 나의 불행했던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표면화시키고 객관화시키면서 내속에 있는 그 아이를 끄집어내려는 과정이다.

부디 내가 그 과정에서 넘어지지 않기를.

내 안의 그 아이에게 끌려내려가지 않기를.

내가 건강한 나로, 제대로 일어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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